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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수 기자의 상수동 이야기 2> ‘Why 동네 빵집?’
[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몇 글자 차이 나지 않는 말이지만 그 간극은 실로 대단하다. 상수동 이야기를 결심한 이후 벌써 슬금슬금 ‘하고 싶은 일’이 ‘해야 하는 일’로 변할 조짐이 보인다. 반성 중이다.

여행 얘기로 시작해볼까 한다. 삶의 가장 큰 즐거움은 ‘무계획’에서 온다고 믿는다. 무작정 떠나는 여행, 아무런 정보 없이 만나는 이질감, 그 느낌이 좋아 어린 시절부터 자주 대책 없이 여행을 떠나곤 했다.

무작정 남쪽을 향하는 기차에 올라 처음 만난 이에게 “제가 어딜 가면 좋겠소”라고 물었던 순간은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기차 안에서 지도를 펼치고 때아닌 갑론을박을 벌인 끝에 도착했던 해남, 보길도, 완도. 아무런 준비 없이 첫 만남을 가진 남해의 보물들. 이름부터 모든 게 처음이었고 그래서 더욱 감동이었다. ‘무계획’ 여행만이 선사해주는 기쁨이다.

이렇게 대책 없이 여행을 떠날 때마다 필자가 겪는 가장 큰 고민은 다름 아닌 ‘먹을거리’다. 특히 해외에선 항상 골치가 아팠다. 배는 고픈데 어느 레스토랑에 들어가야 할지 몰라, 같은 거리를 몇번이나 배회한 적도 많다. 

그럴 때 KFC나 서브웨이라도 하나 발견하면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빈티 나는 주머니 사정, ‘패즉사(敗卽死)’의 순간에서 ‘최소한’ 실패할 확률은 없으니 말이다. 프랜차이즈의 강점이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기본빵’은 한다는 것. 선택의 순간에서 프랜차이즈는 비록 미지의 맛을 탐구한다는 ‘기대감’은 반감시킬지언정, 선택에 따른 ‘리스크’는 최소화해준다.

자 다시 상수동으로 돌아오자. 상수동의 재밌는 점 중 하나는 프랜차이즈가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 흔한 별다방도, 배스킨라빈스도, 피자헛도 없다. 대신 오밀조밀 특색 있는 커피전문점, 아이스크림 집, 화덕피자집이 즐비하다. 처음 상수동을 방문한 이들이라면, 배고픔을 어디서 해결해야 할지 고민될 듯싶다. 그게 상수동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 중 하나다.

빵집도 마찬가지다. 비록 상수역 바로 옆에 파리바게뜨가 자리 잡고 있지만, 상수동 유명 빵집은 따로 있다. 몇평 남짓한 공간에 아기자기한, 독특한 빵들이 가득한 동네빵집이 그 주인공이다. (파리바게뜨 사장님 부디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길. 꾸벅)

상수동 주차장 골목 인근에 자리 잡은 ‘브래드 05’는 필자가 처음 접한 상수동 빵집이었다. 알고보니 롯데백화점 본점 식품관에도 들어가 있는 빵집이라고 한다. 베스트셀링 메뉴는 앙버터와 카페마롱. 각각 3500원인데,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할 만큼 크기도 상당하다. 

느리지만 건강하고 특색있는 빵을 만드는 것. 브래드 05가 밝힌 경쟁력이다. 브랜드 05 관계자는 “이스트를 최소화하고 건강한 빵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비록 시간은 더 걸리지만 고객들이 그런 노력을 더 좋게 봐주는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무엇보다 눈이 즐거운 빵이 가득하다. 상수동을 찾았다면 꼭 한번 방문해보시길. 단, 앉아서 먹을 자리가 없으니 테이크아웃은 필수다.

상수역에서 합정역 방향으로 걷다 보면 상수동 빵집의 터줏대감격인 ‘쿄 베이커리’가 나온다. 몇달이 멀다하고 쉼없이 새 간판이 들어서는 이곳에서 쿄 베이커리는 5년째 상수동을 지키고 있다. 게다가 큰 도로 바로 옆에 있으니 상수동을 찾는다면 한 번쯤 마주쳤을 집이다.

평범한 ‘외향’과 달리 문을 열고 들어서면 수많은 종류의 빵이 반전처럼 다가온다. 빵 종류로는 상수동 동네 빵집 중에서 가장 많을 듯싶다. 제빵사를 포함 1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고 하니, 중소기업급 빵집인 셈이다.

쿄 베이커리에서 눈에 띄는 건 독특한 빵 이름이다. 새롭게 빵을 선보이면 직원이 함께 이름을 고민한다고 한다. 빵 안에 들어간 재료를 주로 사용하지만 ‘쿄 휘날리며’와 같은 톡톡 튀는 이름도 적지 않다.

수많은 경쟁을 뚫고 ‘내가 제일 잘나가’ 영예(?)를 수상한 빵은 ‘먹물 연유 바게트’. 쿄 베이커리 측은 “독특한 맛을 원하는 고객이 많다는 게 상수동의 특징”이라며 “프랜차이즈를 찾기 어려운 점도 그 때문인 것 같다”고 전했다.

또 하나 소개하고 싶은 상수동 동네빵집은 악토버(October)다. 주차장 골목에서 합정역 방면으로 가다보면 큰 길가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이스트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천연발효종만 이용해 빵을 만들어낸다. 대중적인 빵맛에 길들여져 있다면, 악토버의 빵은 상당히 이질적인 느낌을 줄 수 있다.

때문에 명성만 듣고 악토버를 찾는다면 의외로 실망할 수 있다. 필자 역시 악토버의 건강한 맛에 익숙하기까지 몇 번의 갸우뚱을 거쳐야 했다. ‘대중적인 빵을 만들지 않는다’, 악토버의 고집스러운 장인정신이자 건강함을 전해주겠다는 자신감이다. 적응 기간이 필요하지만, 한번 악토버의 빵맛을 ‘깨우치게’ 된다면 빵 세계의 신기원을 접하게 될 것이다.필자가 알고 있는 상수동 동네빵집은 이 정도이지만, 골목 곳곳마다 더 많은 빵집이 자리잡고 있으리라. 획일적인 빵맛을 거부하고, 개성과 마음이 담긴 그들만의 빵을 구워내는 곳. 빵만 파는 게 아니라, 제빵사의 자부심을 선보이는 곳.프랜차이즈 홍수 속에서 상수동 동네빵집이 보란 듯이 살아남은 비결이다.

오늘은 한번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해보자. 예측 가능한 프랜차이즈 빵맛 대신 고르는 재미가 살아 있는 동네빵집을 향해보는거다. 그리고 그 모험의 장이 상수동이라면 더욱 기쁘겠다.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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