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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시카고’ 2000년 이후 국내 6번째 무대…음악감독 박칼린의 깜짝 연기도 작은 즐거움
미국 중서부 도시 시카고는 20세기 초 재즈의 중심지이자 갱단의 도시였다. 어둠침침한 조명과 담배 연기, 재즈음악과 갱단의 총소리마저 극적 소품으로 만들어버린 이 도시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다.

1920년대 미국의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시카고’는 배우로서의 출세욕 가득한 사람들의 공명심, 돈을 밝히는 사람들의 물질만능주의, 자극적인 가십거리에만 집착하는 언론의 모습 등 극적 요소를 호소력 짙은 노래와 화려한 춤에 담아 뮤지컬의 정석답게 담아냈다.

지난 1975년 브로드웨이에서 첫선을 보인 이래 전 세계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아온 이 작품은 지난 2000년부터 신시컴퍼니에 의해 국내에 소개된 후 지금까지 12년간 6차례 무대에 올려진 신시의 대표 레퍼토리다.

▶화려한 캐스팅, ‘시카고’의 새로운 무대 디큐브아트센터= 무엇보다 이번 ‘시카고’에서 주목할 점은 록시 역의 아이비, 윤공주의 더블 캐스팅이다. 지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록시 역으로 꾸준히 무대에서 얼굴을 보이며 옥주현을 뮤지컬 배우로서 한층 더 성장시킨 ‘시카고’는 2012년 오디션을 통해 새롭게 선발한 록시를 통해 또 한 명의 뮤지컬 스타를 만들어낼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2010년 뮤지컬 ‘키스 미, 케이트’에서 비앙카 역을 맡으며 뮤지컬을 시작한 아이비는 방송에 복귀하며 ‘시카고’에 대한 강한 열의를 가졌다. 그는 이번 오디션에서 외국 스태프들로부터 “연기가 신선했다”는 평을 받았다.

2001년 뮤지컬 ‘가스펠’로 데뷔한 11년차 배우 윤공주는 오디션에서 “타고난 춤꾼”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뮤지컬의 3요소인 춤, 노래, 연기 중 각자가 가진 장점을 십분 발휘해야 하는 무대에서 더블 캐스팅인 두 사람이 한 사람은 춤으로 다른 사람은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김태훈의 연출로 무대에 올려진 이번 시카고 무대의 매력은 신인과 베테랑의 대결. ‘시카고’의 터줏대감 인순이, 최정원, 성기윤은 무대를 탄탄히 받쳐준다. 무대에서 폭발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인순이는 일찌감치 벨마 역으로 꾸준히 ‘시카고’와 함께했다. 최정원 역시 2000년 록시 역에서 2007년부터는 벨마 역으로 한 번도 빠지지 않으며 한국 ‘시카고’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성기윤은 초고속 신분상승의 전형이다. 2000년엔 시카고의 앙상블로 시작했지만 2007년부터 빌리 플린 역을 맡으며 주역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10일 서울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시카고’는 오는 10월까지 이어간다.

이번 ‘시카고’ 공연은 기존 도심과 강남권을 중심으로 한 수요를 서남권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인천, 경기지역의 수요와 함께 서울 서부지역 관객까지 끌어들인다는 전략이다. 티켓 가격도 전보다 조금 낮췄다.

여섯 명의 여자 죄수가 부르는 노래, ‘셀 블록 탱고(Cell Block Tango)’.                                            [사진제공=신시컴퍼니]

▶영화 ‘시카고’와 또 다른 재미, 뮤지컬 ‘시카고’= 10년 전, 뮤지컬을 모티브로 한 영화 ‘시카고’가 인기를 끌었다. 영화 ‘시카고’는 무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다양한 화면전환으로 표현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영화와 달리 뮤지컬도 공간적, 표현의 한계 속에서도 그 나름의 재미를 찾을 수 있다. 극중 헝가리 출신 여자 죄수 허냑의 교수형 장면을 영화는 공연 무대와 실제 교수대를 모두 보여주며 묘사했다면, 뮤지컬에선 줄이 공중에서 떨어졌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으로 관객들에게 상상의 여지를 준다.

영화에서 밴드 리더를 맡은 사람은 흑인 남성배우 타이 딕스다. 영화 초반 그가 낮고 빠르고 힘차게 “5678”을 외치는 모습을 뮤지컬 ‘시카고’에선 강력한 카리스마의 소유자 박칼린 음악감독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뮤지컬에선 들을 수 있지만 영화에선 들을 수 없는 노래도 있다. 뮤지컬에서 록시는 아이를 가졌다고 밝힌 후 노래 ‘나와 내 아기(Me and My Baby)’를 익살맞고 깜찍하게 부른다.

뮤지컬의 깜짝 캐스팅도 눈여겨봐야 할 점이다. ‘시카고’에 나오는 신문 이브닝 스타의 기자 ‘메리 선샤인’은 나이 든 여성이다. 영화에선 배우 크리스틴 바란스키가 연기하지만 뮤지컬에선 깜짝 놀랄 만한 반전이 존재한다.

▶알고 보면 즐거운 소소한 재미=뮤지컬 ‘시카고’. 찬찬히 뜯어보고 알고 보면 더 소소한 재미가 있다. 1920년대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 ‘시카고’에 나오는 재즈 음악은 당시의 시카고 재즈가 아니다. 1975년 만들어진 뮤지컬 ‘시카고’의 곡들은 실제로 1920년대의 시카고 재즈보다 현대적인 리듬과 감성이 더 가미된 노래들이다.

남무성 재즈평론가는 뮤지컬 ‘시카고’의 음악에 대해 “전반적인 반주는 활력 넘치는 브라스 빅밴드 재즈라고 보면 되고, 1920년대 재즈를 반영하면서도 탱고나 소울, 클래시컬한 요소들이 퓨전된 음악으로 시대를 초월하는 느낌을 준다”고 평했다.

음악감독을 맡은 박칼린의 연기를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이후 요즘 들어 연기에도 욕심을 보이고 있는 박 감독은 극 중간 배우들의 연기에 감초처럼 슬쩍 양념을 뿌려준다.

배우들의 드레스 타이밍을 관찰하며 의상의 변화를 챙겨보는 것도 재미. 록시와 벨마는 시커먼 옷만 입고 전혀 갈아입지 않고 연기하는 것 같지만 실제 찬찬히 뜯어보면 그렇지 않다. 록시는 관객들이 미처 알아채지 못하게 재킷을 입고 벗으며 어느 순간, 화려하고 번쩍이는 옷에서 수수하고 밋밋한 옷으로 바뀐다.

여죄수 여섯 명의 노래, ‘셀 블록 탱고(Cell Block Tango)’ 속 배우들은 모두 자신만의 스토리를 몸으로 표현한다. 동작 하나하나로 자신의 사연을 표현하는 배우들의 춤을 통해 관객들은 노래를 듣지 않고도 그들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여기서 언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노래 ‘아이 캔트 두 잇 얼론(I Can’t Do It Alone)’에서는 배우 최정원의 텀블링을 볼 수 있다. 원래 텀블링을 하지 못했다는 최정원은 벨마 역을 맡고 각고의 노력 끝에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제대로 된 텀블링을 선보일 수 있게 됐다. 알고 보면 더 재밌는 뮤지컬 ‘시카고’. 마니아들은 ‘시카고’가 새로 무대에 오를 때마다 공연장을 또 찾는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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