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데뷔앨범은 리키 마틴과 함께 폭발한 전 세계의 라틴열풍과 거의 같은 시기에 나왔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선택’을 시작으로 ‘부담’ ‘대시’ ‘새드 살사’ 등 현란한 라틴리듬에 맞춘 그녀의 육감적인 율동에 허스키한 목소리가 더해져 애잔함과 흥겨움과 에로틱한 느낌을 선사했다. ‘댄싱퀸’이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그러다 2000년 말 백지영에게 더 이상 언급하기도 싫은 일생일대의 사건이 터졌다. 그래서 댄스곡을 부를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2006년 박근태가 작곡한 발라드곡 ‘사랑 안해’로 완벽하게 재기에 성공할 때까지 댄스곡을 안 불렀던 건 아니다.
2003년 4집 ‘미소’에서 라틴 댄스 리듬을 담은 음악을 내놨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 당시 골반춤을 추며 노래하는 백지영을 본다는 건 안쓰러운 일이기도 했다. 입술을 깨물고 악바리처럼 연습했을 모습을 연상하면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뜰 수는 없는 일. 백지영이 2006년 5집 타이틀곡이자 발라드곡 ‘사랑 안해’로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동정어린 시선이 아니라 상처받은 여심(女心)을 표현한 그녀의 감성이 대중의 정서를 확실하게 건드려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다시 댄스곡 ‘굿보이(Good Boy)’로 돌아왔다. ‘굿보이’는 한두 번 들어서는 감이 잘 오고 계속 들으면 중독성이 조금씩 생긴다. 3년 전인 클럽이나 파티에 어울리는 ‘내 귀에 캔디’라는 댄스곡이 히트했지만 이건 발라드 가수의 다양성 품목 중 하나에 불과했다. 백지영은 2008년 발라드곡 ‘총 맞은 것처럼’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드라마 ‘아이리스’의 수록곡 ‘잊지말아요’와 시크릿가든 ‘그 여자’ 등 백지영이 불러 크게 히트한 OST곡들은 죄다 발라드곡이었다.
그런데 백지영은 댄스곡으로 컴백한 이유에 대해 ‘고쇼’에서 “지난번 발라드곡 ‘보통’은 공개 열애 사실이 알려진 직후라 애절하게 불러도 잘 안 먹혔다. 그래서 보통밖에 못했다”고 털어놨다. 또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는 “발라드를 하게 되면 나이가 있어 처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무리인 줄 알면서도 댄스를 했다”면서 “나이가 더 들면 또 발라드를 하겠지만 체력이 되는 한 춤추면서 노래하는 게 좋다”고 전했다.
하지만 기자의 견해는 백지영과 조금 다르다. 백지영의 8집 정규 앨범 ‘보통’ 활동을 4주밖에 못하고, 소위 ‘망한 앨범’이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본다. 백지영의 발라드는 호소력이 있고 드라마에서는 남녀주인공의 멜로적 상황을 더욱 애절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지만 시종 흐느끼는 듯한 그녀의 창법이 이젠 조금 진부하게 느껴진다. 백지영은 ‘나가수’에서도 나훈아의 ‘무시로’는 새롭게 재해석했지만 너무 흐느낀다는 반응이 많았다. ‘사랑 안해’는 백지영 발라드 열풍의 시발점이 됐지만 2007년에도 ‘사랑 하나면 돼’라는 노래로 ‘사랑 안해’와 유사한 방식을 써먹었다. 백지영의 애원하는 듯이 흐느끼는 발라드 방식은 급속도로 소비됐다. 누구든지 한 가지 방식을 계속 보여주면 싫증을 느끼게 되는 건 당연한 이치다. 백지영도 예외가 아니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