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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국화’ 재결성이 가요계에 일으킬 바람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한국 록음악의 한 획을 그은 전설의 밴드 ‘들국화’가 오랜 공백을 깨고 다시 뭉쳤다. 들국화 원년 멤버인 보컬 전인권(58), 베이스 최성원(57), 드럼 주찬권(57)이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앞으로의 활동을 공개했다.

키보드인 허성욱은 이미 고인이 됐고, 지난해 솔로 앨범을 발표한 창단 멤버인 기타리스트 조덕환(59)이 빠진 상태라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원년 멤버 세 명이 함께 음악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깊다. 전인권은 “오랜 기간 미국에 있던 조덕환과 같이하려고 했는데, 여러 가지 상황이 안 맞는 것 같다”면서 “하지만 언제든지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들 셋은 오는 7월 7일 전국투어 콘서트로 재출발을 알렸다. 지난달 25일 대구와 서울 콘서트의 예매 티켓이 오픈 30분 만에 매진돼 여전히 변치 않는 저력을 과시한 셈이다.


1980년대를 풍미한 록그룹 들국화는 한국 최초의 록밴드는 아니지만 한국 최초로 언더그라운드 밴드라는 말을 쓸 만한 밴드다. 당시 주류에 있는 가수들은 TV에 가급적 많이 나오기 위해 방송국에서 예능 PD를 만나면 깍듯이 인사를 하며 자세를 낮춰야 했다. 최성원은 “우리는 죽어도 이런 걸 못하는 사람이다. 이걸로 세 명이 의기투합했다”고 말했다. 전인권은 “우리가 1981년 작은 카페 같은 곳에서 뭉쳤는데, 뿌리는 당시 정부에 저항하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이들이 TV에 나오지 않고 음악을 알리는 길은 자신들이 직접 연주하며 노래하는 라이브 공연이었다. 81~82년 전인권과 허성욱이 소극장에서 공연할 때는 록그룹이 아니었으며, 베이스 최성원과 기타 조덕환, 드럼 주찬권이 합류하면서 록그룹으로 바뀌었다.



▶대중음악사 최고 명반으로 꼽히는 ‘들국화’ 1집

1985년 1집이 나왔다. 난리가 났다. 수록곡 9곡이 모두 히트하는 전무후무한 이변이었다. 전인권의 절규하는 목소리로 오래 기억에 남아있는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과 ‘세계로 가는 기차’ ‘사랑일 뿐이야’ ‘매일 그대와’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더 이상 내게’ ‘축복합니다’ ‘오후만 있던 일요일’은 TV로는 볼 수 없었지만 라디오나 다운타운가에서는 계속 흘러나왔다.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서 최고 명반으로 꼽히는 1집은 무려 60여만장이 판매됐다.

1987년에는 멤버들이 흩어졌고 일부는 솔로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 전인권은 ‘사랑한 후에’ ‘돌고 돌고 돌고’를 히트시켰고 최성원은 ‘제주도의 푸른 밤’을 불러 노래제목처럼 제주에 정착해 생활을 이어갔다. 1995년 마지막 정규앨범인 3집 ‘우리’를 발표한 뒤 활동이 뜸했다가 1998년에는 그룹이 일시적으로 재결성되기도 했다. 최성원은 지난해 영화 ‘기타가 웃는다’에 출연하면서 OST에도 참여하고 분당에서 록카페를 운영하는 주찬권은 최근 솔로 5집 ‘로(Low)’를 발표했다. 들국화는 해체를 해도 멤버들이 모두 자작곡을 낼 수 있을 정도로 실력파 그룹이다. 전인권은 “우리는 음악이나 돈 때문에 헤어진 적은 한 번도 없다. 성격 때문에 헤어졌다”면서 “셋 다 유별나다. 사실 뭉치면 대단한 힘이 될 수 있다”고 했다.



▶TV 보면 너도나도 레전드라고 한다

들국화의 재결성은 주찬권의 제의에 의해 이뤄졌다. “모든 팀은 어려움이 있다. 우정과 재미로 극복하자”는 주찬권의 말에 모두 동의했다. 하지만 전인권이 마약 후유증에 의한 건강 쇠약으로 목소리가 돌아올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전인권은 “뼈와 치아가 좋지 않았는데 이제 건강해졌다. 옛날에는 마약 먹고 연습하기도 했지만, 다시는 마약 같은 거 하지 않겠다. 아내의 사랑으로 다시 태어났다. 절망보다 더한 곳까지 갔는데 그게 힘이 됐고 노래가 됐다”고 말했다. 기자가 목소리가 확실히 좋아졌다고 하자 홀리스(The Hollies)의 ‘히 에인트 헤비 히스 마이 브러더’(He Ain’t Heavy He’s My Brother)의 몇 소절을 멋들어지게 불렀다.

최성원은 “내가 살고 있는 제주도로 인권이가 찾아왔다. 들리는 얘기로는 상태가 안 좋았다. 내가 피아노 반주로 노래 한 번 들어보자고 해 인권이의 노래를 들었는데,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면서 “20년 들었던 인권이의 목소리 중 가장 훌륭한 소리였다. 부챗살처럼 음이 쭉뻗어나갔다”고 말했다.

80년대까지 큰 사랑을 받은 팀인데 음악을 하지 않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멤버들이 공유했다고 한다. 멤버들 스스로 우정과 의리가 있는 팀이라 했다. 최성원은 “모든 (그룹 사운드)팀은 해체하게 되는 운명이다. 롤링스톤즈는 멤버들이 친하지 않아도 흥행이 잘된다”면서 “우리도 화합하는 길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지금 음악에 만족하지 않는다. ‘나가수’와 ‘탑밴드’에 나오는 세대가 우리 음악의 전부인가”고 반문했다. 최성원은 이어 “TV를 보면 너도나도 레전드라고 하고 카리스마라고 하는데, 이런 건 원치 않는다”면서 “음악 앞에 순수한 소년이 되기 위해 뭉쳤다”고 했다. 전인권은 “지성만 가지고는 안 되고 야성이 섞여야 성공한다”고 말했다.



▶왜 꼭 신곡을 내놔야 하나

싫증과 불만이 창의력의 원동력이라 했던가. 들국화는 현재 음악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전인권은 “후배들에게 독립정신을 가져달라고 얘기하고 싶다”면서 “ ‘나가수1’은 임재범의 개성을 살려주고, 가수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하게 해주었는데, 시즌2는 가수들이 모두 도살장에 끌려온 것 같다. 나가수는 존경과 지성과 야성이 제작진에 의해 잘려나갔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가 희망이 되는 팀인지 보고 싶다”는 말도 했다.

들국화에게 신곡은 언제쯤 들을 수 있겠느냐고 물어봤다. 최성원은 “새 음반작업은 6개월 정도는 걸릴 것”이라면서도 “왜 꼭 신곡을 내놔야 하나. 우리는 비틀즈와 핑크 플로이드가 좋은데 사람들은 왜 신곡 신곡 하죠. 신곡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감동 있는 음악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고, 전인권은 “유튜브에 올리면 세계에서 평가받고 리바이벌된다”고 말했다.

들국화는 앞으로도 방송 출연 없이 공연과 인터넷, SNS로 존재이유를 증명하겠다고 한다. 최성원은 “우리는 방송에 안 나갔기 때문에 우리 공연을 본 사람은 10만여명밖에 안 된다”면서 “노래는 국경과 나이가 없다. 들어서 좋으면 좋은 거다. 빅뱅과 합동공연도 해보고 싶다”고 의지를 보였다. 전인권은 “우리는 권력지향이 아니라, 사랑지향적이다. 사랑을 지향하며 열심히 노래하겠다”고 전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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