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이해준의 희망가족 여행기(3)>계엄상태 티벳은 지금 몇시인가
【라사(티벳)=이해준 기자】티벳은 환상과 현실이 불연속적으로 교차하면서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땅이었다. ’세계의 지붕’에 자리잡은 오지이자 티벳불교의 성지라는 측면에서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이며, 중국 최대 고민인 소수민족 문제의 화약고라는 측면의 현실은 매우 엄중했다.

우리 가족은 티벳을 여행한 6박7일 가운데 첫 3일을 티벳의 수도인 라사(拉萨)에 머물며 포탈라궁(布达拉宫)을 비롯한 주요 유적들을 탐방했다. 후반 4일 동안은 티벳의 주요 도시들을 거쳐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네팔로 가는, 지구에서 가장 아름답고 환상적인 루트를 자동차로 여행했다. 그건 시시각각으로 찾아온 고산증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티벳 도착 다음날. 달라이 라마의 ‘여름 궁전’이라는 노블링카(罗布林卡)와 티벳 불교의 6대 사원 중 하나인 드레펑사원(哲蚌寺, Drepung Monastry), 승려들의 문답식 토론학습으로 유명한 세라사원(色拉寺)을 둘러보았다. 모두 티벳불교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곳. 과거의 영화와 함께 심하게 흔들리는 오늘날 티벳불교를 잘 보여주었다.



특히 세라사원의 문답식 토론은 여기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100여명의 승려들이 사원 마당에서 오후 햇살을 받으며 큰 소리로 문답을 주고받고 있었다. 문답은 1대1이나 1대 다수로 진행되었는데 질문자는 서서, 답변자는 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답변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질문자가 발을 구르고 손뼉을 힘껏 내리치며 다그쳤다. 먼지가 풀풀 나고, 얼굴이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토론을 지속했다.

가이드에게 이들의 문답 내용을 알 수 있느냐고 물으니, 난감한 표정으로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연기가 먼저냐 불이 먼저냐, 이런 질문을 던지고 토론을 한다”고 말했다. 이런 철학적 문제에서 부터 삶이란, 평화란, 행복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 문제들이 토론대에 올라가 있을 것임엔 틀림 없었다.

그러나 이들 사원은 중국 공산화와 티벳 점령 이후 급격히 위축되고 있었다. 드레펑사원의 승려는 한때 7000명을 넘었으나 지금은 200~300명으로 줄었다. 세라사원 역시 5,000여명에서 200여명으로 줄어들었다고 했다. 각 사원 입구에는 공안(경찰)들이 배치돼 엄중히 경비를 서고 있어 최근 다시 고조된 중국과 티벳의 긴장을 더욱 실감하게 했다.

티벳의 진상은 라사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세째날 포탈라궁과 조캉사원(大昭寺, Zhokang Monastry)에서 더 확연히 드러났다. 궁 앞의 포탈라광장에는 이른 아침인데도 순례객들이 많았다. 하지만 광장의 평화로움이 곳곳에 배치된 경찰과 군인들의 긴장감에 압도돼 있었다. 궁 정면에는 중국이 전국적으로 실시 중인 ‘소방의 달’ 캠페인 현수막이 ’오만’하다고 할 정도로 거창하게 걸려 있었다. 왠지 티벳 성지의 광장을 중국 경찰에 빼앗긴 느낌이었다.

포탈라궁에는 더욱 많은 순례자들이 눈에 띄었다. 일부는 경전을 외는 ‘코라’를 하고 있었고,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티벳인들이 ‘옴마니반메흠’을 외면서, 또는 작은 마니통을 돌리며 포탈라궁으로 향했다. 궁 입구는 가파른 계단이었다. 그때 마침 계단 한 모퉁이에 한 무리의 티벳인들이 구슬픈 노래를 부르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눈물까지 줄줄 흘리며 부르는 노래가 얼마나 마음을 울리는지, 사람들이 모두 서서 바라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나 상실과 관련한 기도가 아닐까 생각됐다. 한 할머니는 팔을 허공에 휘저으며 큰 소리로 간절한 통곡을 하고 있다. 무언지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강렬한 슬픔과 함께 경건하고 숙연함을 넘어 엄숙함마저 느끼게 했다.



포탈라궁은 7세기 티벳의 전성기를 이룩한 전설적인 왕인 송첸캄포(Songtsen Gampo)가 처음 지었다. 이후 종교 지도자가 정치 지도자를 겸하는 제정일치에 결정적 역할을 한 15세기 때의 5대 달라이 라마가 현재 규모로 확장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후 1959년 달라이 라마의 망명 이전까지 250여년간 이 궁전은 ‘살아있는 부처’로 티벳의 정신적 지주이자 영적 지도자이면서 정치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 주거 및 업무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이곳은 티벳인들에게 가장 신성한 곳이다. 순례자들은 역대 달라이 라마의 스투파(사리탑)와 불상을 돌며 조심스럽게 머리를 갖다대거나, 작은 지폐나 야크 버터를 시주하거나, 또는 흰 천을 전각이나 불상에 두름으로써 소원을 빌었다.

주인을 잃은 지 50년이 넘은 궁과 곳곳에 배치된 경찰과 중무장한 군인들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엔 독립을 주장하는 티벳 승려의 분신까지 겹쳐 초긴장 상태였다. 사실상의 계엄상태를 방불케 했다. 가이드는 대규모 독립시위가 있었던 2008년 이후 라사 시내와 주요사원에 군과 경찰이 배치됐다고 설명했다. (최근까지도 승려 분신사태는 이어지고 있다.)

티벳은 중국과 종교나 언어, 문화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중국은 티벳(Tibet)을 시장자치구(西藏自治區)라며 티벳이란 표현을 금기시하지만, 티벳인들은 티벳의 수도가 라사라고 말한다. 우리가 묵은 호텔 주인이 “중국인들은 ’고맙다’는 말을 ‘쉐쉐’라고 하지만, 티벳인들은 ‘투제체’라고 한다”며 티벳은 중국이 아님을 은근히 강조했다.

우리가 본 티벳과 중국은 물과 기름 같았다. ‘티벳을 봉건적 억압에서 해방시켜 모국의 품에 안긴다’며 1950년 강제 병합한 중국이 지금은 티벳의 독립 또는 자치 확대 움직임을 억누르면서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궁 입구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던 티벳인들은 무엇을 그렇게 절절히 기원했을까. 중국 정부는 그들의 기원을 읽고 눈물을 닦아줄 준비가 돼 있는 것일까. 끝없는 의문이 교차했다. 그렇다고 티벳이 과거의 제정일치 사회로 돌아간다면 더 행복해질까, 티벳인들은 독립국가를 만들어갈 준비가 돼 있는 것일까, 끝없는 의문을 품은 채 궁을 내려왔다.

포탈라궁에 이어 구시가지(Old Street)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조캉사원으로 향했다. 송첸캄포가 티벳 출신의 왕비(赤尊公主)와 중국 당나라 출신의 왕비(文成公主)를 위해, 포탈라궁에서 잘 보이는 라사시 한 가운데의 호수를 메우고 지은 아름다운 사원이다. 석가모니불을 비롯해 역대 달라이 라마의 유적이 곳곳에 보존돼 있었다.

뭐니뭐니해도 조캉사원 관람의 핵심은, 사원 앞에는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과 사원 둘레를 돌면서 경전을 외는 사람들의 행렬(코라)이 만든 장관이었다. 오늘의 ‘티벳’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았다. 우리도 사원을 천천히 한바퀴 돌았다. 마니통을 돌리며 걷는 사람에서 부터 염주를 돌리며 걷는 사람, ‘옴마니반메흠’을 외는 사람, 손자 손을 잡고 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이를 업거나 안고 가는 사람, 지팡이를 짚은 사람, 가족의 부축을 받아 어렵게 걸어가는 노인 등 유형도 다양했다. 티벳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에서 부터 최신 유행 청바지에 파카를 입은 사람, 머리를 길게 땋은 사람, 짧은 머리의 세련된 젊은이까지 모습도 다양했다.

코라 주변은 엄청난 시장이었다. 양털을 비롯해 티벳 고원에서 난 재료로 만든 전통 의류에서 부터 청바지, 파카 등 최신 의류, 신발, 모자, 장갑, 전통 앞치마 등 악세사리, 각종 제기류, 생활필수품은 물론 불상과 염주, 마니통, 탕카(불화) 등 종교 제품, 야크 우유로 만든 다양한 모양의 치즈를 비롯한 먹을거리를 파는 가게 등이 끝없이 이어졌다.

척박한 산악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티벳인들이 겨울철에 주요 사원을 순례하면서 필요한 옷과 신발, 가방, 생활필수품 등을 장만해 다시 초원으로 돌아가는 듯 했다. 순례를 온 이들에게는 하나의 축제이면서 축복인 셈이다.

사원 앞은 손과 발, 배와 가슴과 머리를 조심스럽게 땅에 갖다 대며 소원을 비는 ’오체투지 광장’이었다. 코라를 돌고, 오체투지를 하는 티벳인들의 얼굴엔 숙연함, 경건함, 진지함이 넘쳤다. 동시에 무언지 모를 희열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끝없는 순례자들을 보면서 이제야 티벳에 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세계에서 가장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들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영혼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검게 탄 얼굴에다 솜이불 같은 옷에 잔뜩 묻은 흙먼지 등 ’문명인’의 입장에서 보면 촌스러울 수 있지만, 이들이야 말로 가장 평화로운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 해 일을 마무리하고 가족이나 부족 단위로 성지 순례를 하는 이들의 얼굴엔 문명인들이 그토록 갈구하는 평화와 행복이 가득했다.

티벳을 중국과의 정치적 이해관계나 경제적인 성장 여부, 또는 다분히 서구적 기준이 적용된 ‘개발’ 또는 ‘문명화’ 정도를 놓고 평가한다면, 핵심을 크게 빗나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티벳인들에게는 그들만의 고유한 생활양식이 있고, 그것은 그것 자체로 존중돼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것을 몸으로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 오늘 여행의 본질이 아닐까...

정말 티벳을 알고자 이곳에 오고자 한다면, 다음의 세 가지를 실천하면 될 것 같았다. 첫째는 비행기로 오지 말고 칭창열차를 타고 티벳으로 올 것. 그래야 티벳의 척박함과 자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 둘째, 관광객이 흘러 넘치고 라사가 상업의 도시로 변하는 여름철이 아니라 티벳인들이 성지순례에 나서는 겨울 또는 초겨울에 올 것. 그래야 진짜 티벳을 만날 수 있다. 셋째는, 주요 관광지에서 사진만 찍지 말고 조캉사원 앞에서 함께 오체투지를 하거나 코라를 돌아볼 것. 그래야 그들이 갈구하는 그 간절함과 우리의 삶을 한 번 더 성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 가족은 이 세가지 조건을 충족하고 티벳을 여행했으니, 일단 기본은 갖춘 셈이다. 그럼에도 지구상 최고 오지 중의 오지인 티벳 라사가 준 영적 신비로움과 엄중한 현실의 부조화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긴 여운을 남겼다.

/hjlee@heraldcorp.com



<사진설명>

티벳 라사의 세라사원에서 승려들이 오후에 내리쬐는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문답식 토론학습을 열띠게 진행하고 있다.

광장에서 바라본 포탈라궁으로 정면에 ’소방의 달’ 캠페인 현수막이 걸려 있고, 군과 경찰이 광장을 엄중히 경계하고 있었다.

라사시 한복판에 있는 조캉사원을 향해 오체투지를 하는 티벳인들로, 그들의 얼굴에 평화와 기쁨이 넘치는 듯하다.

티벳인들의 영적 고향인 조카사원이 엄청난 순례자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가운데 경찰들도 이들을 감시하느라 여념이 없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