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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영화제 결산③〕칸의 어록, 시대의 심장을 쏘다
〔칸=이형석 기자〕“저는 영화가 우리 시대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킬링 미 소프틀리’ 주연 브래드 피트)

“세상을 바라보면 우울해집니다. 저는 때때로 이 세상이 말끔히 청소되고 세탁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코스모폴리스’ 주연 로버트 패틴슨)

“부정부패와 썩은 권력은 비단 한국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전세계적인 것이다.”(‘돈의 맛’ 감독 임상수)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아 처음 공개된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영화 ‘코스모폴리스’는 “쥐가 통화의 일부가 됐다”(a rat becomes the unit of currency)는 인용구로 시작했다. 브래드 피트가 제작하고 주연한 앤드류 도미니크 감독의 ‘킬링 미 소프틀리’ 중엔 “미국은 나라가 아니라 하나의 비즈니스”라는 대사가 나온다.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은 칸영화제 기자회견에서 “내가 하는 작업은 위험한 시대를 살고 있는 인간들의 삶에 대한 것“이라고 밝혔고, ‘킬링 미 소프틀리’의 앤드류 도미니크 감독은 “범죄영화는 자본주의 막장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폐막을 하루 앞두고 경쟁부문 작품 중 가장 마지막에 공개된 ‘돈의 맛’의 임상수 감독은 26일 열린 현지에서의 기자회견에서 “내 영화는 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코멘트를 하고 있다”며 “‘돈의 맛’엔 지금 한국사회가 갖는 가장 큰 문제가 들어있다”고 밝혔다. 

제 65회 칸국제영화제가 폐막과 화려한 시상식만을 남겨두고 종착역에 다다랐다. 올해 경쟁부문엔 특히 한국의 ‘돈의 맛’을 비롯해 자본주의의 탐욕과 윤리에 대한 성찰을 담은 작품들이 잇따랐다. 심각한 불황과 위기를 겪는 시대상을 반영한 영화들이다. 칸영화제의 개막 초반은 미카엘 하네케의 ‘아무르’와 크리스티안 문주의 ‘비욘드 더 힐스’(언덕 너머), 자크 오디야르의 ‘러스트 앤 본’(재와 뼈) 등 거장들의 영화가 화제의 중심에 섰으며 후반부에 이를수록 사회 비판 드라마가 강세를 보였다.

그 중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코스모폴리스’는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최고의 청춘스타 로버트 패틴슨을 ‘월스트리트의 뱀파이어’로 내세워 공개 전부터 뜨거운 화제를 일으킨 영화였다. 돈 델리오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젊은 나이에 금융계 최고의 거물이 된 남자를 주인공으로 해서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뉴욕을 묵시록으로 그린 영화다. 성공하거나 좌절한 욕망의 거대한 쓰레기장이 된 뉴욕의 풍경엔 광기가 어렸고, 호화로운 금융가의 뒷거리에는 악취가 진동했다. 1%를 위해 99%가 빼앗겨야 하는 부조리한 제로 게임의 금융자본주의는 ‘코스모폴리스’에서 막다른 골목으로 묘사된다.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가 자본주의의 흡혈귀로 변했다면 할리우드의 거물급 제작자이자 톱스타인 브래드 피트는 서로 물고 물리는 범죄세계에서 적들을 처단하는 인간 청소부가 됐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느와르영화 ‘킬링 미 소프틀리’는 1974년작인 조지.V 히긴스의 소설 ‘코건의 거래’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시대 배경을 2008년 부시 정권의 말기로 옮기고 버락 오바마의 선거 캠페인도 등장시킨 이 작품은 자신의 이해를 위해 서로 물고 물리는 범죄를 통해 자본주의의 추악한 본성을 드러낸 작품이라는 만장일치에 가까운 평을 받았다. ‘코스모폴리스’와 ‘킬링 미 소프틀리’는 세계적인 이슈인 금융자본의 부패상과 월스트리트 점거운동 등 시대상을 반영한 영화라는 것도 공통된 반응이다.

‘돈의 맛’도 공교롭게 이러한 추세에 합류했다. 이 작품은 대한민국 최상류층 재벌가의 부도덕성을 적나라하게 그린 영화로 돈과 권력을 향한 욕망을 풍자하고 비판하며 반성하는 작품이다.

세계자본주의의 위기는 다양한 작품에 그늘을 드리웠다. 영화제 내내 최고의 평가를 받으며 이슈가 된 자크 오디야르 감독의 ‘러스트 앤 본’은 불법 내기 싸움을 벌이는 가난한 복서와 여성 고래 조련사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돈이 없어 둥지조차 제대로 틀 곳이 없고 여기 저기를 떠올아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로, “경제위기가 사람들을 끊임없이 해고와 실직의 벼랑으로 밀어내는 유럽사회의 현재에 관한 영화”라는 평을 얻었다. 존 힐코트의 ‘무법’(Lawless)는 1930년대 대공황을 배경으로 폭력범죄조직을 피해 암거래업에 나선 두 형제의 이야기를 그렸다. 존 힐코트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시대는 다르지만) 오늘날의 경제, 정치적 위기와 많이 닮아있다”고 말했다.

/suk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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