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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든 넘어도 단골 옷 직접 만드는 내 패션은 청춘”
장밋빛 인생’회고전…한국 패션의 전설 노라노
50년대 기모노로 원피스 만들고 60년대 엄앵란 등 연예인 의상 제작
70년대 ‘최고의 유행’ 미니스커트·판탈롱 바지도 모두 그녀손에서
40대부터 짧은 머리·검은색 옷 고집…블랙은 여성의 자유를 의미하죠


1940~50년대 전쟁의 폐허와 빈곤 속에서도 멋을 낼 줄 아는 여성들은 군수품 속에서 찾아낸 천으로 밀리터리룩을 만들어 입었고, 버려진 낙하산 소재로 블라우스가 제작되기도 했다. 그러다 한국식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 양장)의 시대, 즉 패션사(史)가 시작된다.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 버려진 기모노를 해체해 원피스를 만들어 입던 한 소녀에 의해서다. 국내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84) 씨다.

5월 23일부터 서울 신사동 호림미술관에서 패션 회고전, ‘라 비엥 로즈(La Vie en Rose:장밋빛 인생)’를 선보이고 있는 노 씨를 지난 22일 전시장에서 만났다.

“1940년대까지는 국내에 ‘패션’ 이라는 개념도 없을 때죠. 어린 제가 처음 접한 국제적인 패션은 중국 상하이에서 댄서로 일하다 들어온 여성의 옷이었죠.” 당시 스미스 식산은행장의 비서로 일하던 노 씨는 그의 추천으로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귀국 후 1956년 반도호텔에서 국내 최초의 패션쇼를 개최한다. 그로부터 60년. 여든살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옷을 짓고 있는 그녀의 삶은 고스란히 대한민국 패션사의 한축을 장식한다.

“1950년대는 국민소득이 10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주로 영화나 연극, 쇼 의상 등을 제작했어요. 배우들의 옷을 사람들이 따라 입으면서 ‘유행’하기 시작했죠.” 서울 명동과 충무로를 중심으로 아리사, 송옥, 노블 등 수많은 양장점들이 생겨났다. 그속에서 노 씨가 운영한 ‘노라노의 집’이 특별히 명성을 얻었던 계기는 1959년 미스코리아 진 오현주가 미스 유니버스대회 참가 때 입은 한복 개조 드레스 때문이다. 오현주는 노 씨의 옷을 입고 이 대회에서 의상상을 받았다. 1960년대에 TV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생기면서 노 씨는 당대 최고의 배우들에게 의상 협찬을 했다.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1960~70년대 최고의 스타들에게 직접 디자인해 입혔던 옷들을 잠시 ‘빌려’ 왔다. 배우 엄앵란 이 노 씨의 옷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 

한국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 씨의 삶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 여성 패션의 역사이기도 하다. 노 씨가 다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제작한 의상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입었던 ‘헵번 원피스’가 대유행했던 시절이죠. 엄앵란 씨는 57년 반도호텔에서 열린 패션쇼에서 모델로 서주셨죠. 이번 전시회에는 64년 영화 ‘배신’에 나왔던 갑사소재 원피스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영화 ‘배신’은 엄앵란이 신성일과 함께 촬영하면서 실제 연인 사이임이 밝혀지며 더욱 화제가 됐다.

국내 패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미니스커트와 통이 넓은 판탈롱 바지의 유행도 그녀의 손에서 시작됐다. 1967년 윤복희가 ‘웃는 얼굴 다정해도’를 부르며 입었던 에이(A)라인 미니드레스도 노 씨가 제작했다. 늘씬한 판탈롱 바지로 대표되는 펄 시스터즈의 무대 의상도 늘 노 씨 담당이었다. 1970년대 기성복이 등장하던 시기에도, 노 씨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디자이너 기성복 패션쇼인 파리 프레타포르테에 3년 연속 진출했다. 코오롱, LG반도패션, 삼성물산 등 패션기업들이 나오면서 대부분의 양장점이 문을 닫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저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세계 패션계는 1980년대 디자이너 중심으로 돌아갔는데, 뉴욕 7번가에서 능력을 발휘하며 50대에 전성기를 보냈죠.”

1990년대 고도의 경제성장 속에 지구촌 패션계도 새로운 변화를 맞는다. 소비자들이 실용적인 옷을 선호하면서 캐주얼 쪽으로 패션 경향이 기울어진 것. 국내에 ‘패스트 패션’ 열풍이 분 것은 최근의 일이지만, 이미 선진국에서는 제조ㆍ유통 일괄형(SPA) 브랜드들이 시장을 점령하고 있던 때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어요. 요즘 글로벌 대자본이 패션계를 지배하고 있고, 젊은 디자이너들도 ‘대기업 코드’에 맞추려고 애써요. 하지만 이런 추세도 언젠가 꺾일 거예요. 패션은 돌고 도는 거니까요.”

마지막으로 ‘장밋빛 인생’이라는 전시회 제목과는 대조적인 그녀의 검은색 의상에 대해 물었다. 노 씨는 40대부터 짧은 머리에 검은색 옷만을 고집하고 있다.

“검은색은 여성의 자유와 독립을 의미해요. 능력 있고, 강한 여자는 대부분 검은색을 좋아하죠. 난 계속 일을 할 것이고, 변함없이 검정 옷을 입을 겁니다.”(웃음) 


박동미 기자/pd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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