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이형석의 상상력 사전> 손끝의 스침만으로도… ‘에로티시즘’은 완성된다
에로티시즘
‘돈의 맛’ ‘은교’ ‘후궁’…요즘 한국영화에 넘쳐나는 ‘섹스신’
도덕적 부패 비추는 수단으로…권력을 향한 본능의 표현으로…
극중 흐름의 타당성·관객의 심리적 공감 없다면 그건 ‘포르노’일뿐


프랑스의 철학자 조르주 바타이유는 에로티시즘을 “죽음까지 파고드는 삶”이며 “단순한 성행위와는 달리 정신적인 요구이며, 죽음 속에서조차 긍정하는 삶”이라고 했다. 그는 “에로티시즘에서의 욕망은 금기에 대한 승리”라고도 했다. 미국의 급진적인 페미니스트 안드레아 드워킨은 “에로티시즘은 단지 고급 소비자들을 위해 더 세련되고 더 감각적이며 더 잘 구성된 상류층(high-class)의 포르노그래피일 뿐”이라고 규정했다. 미국의 에로틱 작가이자 레즈비언 이론가인 수지 브라이트는 “ ‘에로틱’하다는 단어는 마음뿐 아니라 육체의 충동을 일으키는, 우월한 가치의 시각예술이나 미학을 뜻한다”고 했다. 메리엄 웹스터 사전은 “일반적으로 성적 자극의 상태 혹은 지속적인 성적 충동, 욕구, 사고에 대한 기대나 사유 패턴이며 욕망, 관능, 낭만적인 사랑의 미학과 관련된 철학적 개념”이라고 정의했다.

한국의 한 유명 촬영 감독은 “카메라를 잡는 입장에서 보통의 영화에서 정사신은 합을 맞추고, 유기적인 영상을 구성하는 침대 위에서의 ‘다찌마와리신’(격투 액션신)”이라며 “형식적인 섹스신을 넘어서 에로틱한 느낌을 자아내는 진정한 요소는 인물의 ‘얼굴’”이라고 말했다.

회화, 조각, 소설 등 예술에서 끊임없는 논란을 몰고 왔던 ‘에로티시즘’은 세계 영화사에서도 늘 뜨거운 이슈였고, 이에 관한 한 스크린은 사회적 금기와 위반의 욕망이 충돌하는 ‘전쟁터’가 돼왔다. 에로티시즘은 물리ㆍ시각적으로는 ‘신체의 노출’(nudity)과 ‘성행위(sex)’에 가장 긴밀한 연관이 있으며, 개념적으로는 인간 본능과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미학, 철학, 심리학, 사회학의 주제가 돼 왔다.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

최근 강렬하고 파격적인 노출과 정사신을 다룬 한국영화가 이어지고 있다. ‘은교’와 ‘돈의 맛’ ‘후궁: 제왕의 첩’은 모두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로 노출 수위과 성적 묘사의 강도가 높다. ‘돈의 맛’의 난교파티 장면에선 재벌가 회장의 벌거벗은 몸을 또아리를 틀 듯 감싼 전라 혹은 반라의 여인들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재벌가의 안주인이 젊은 비서를 유혹하는 장면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누드와 섹스가 도덕적 부패와 지배-피지배관계를 드러내는 수단이다. 임상수 감독은 “내가 가장 섹스신을 많이 찍어본 감독 중의 하나일 것”이라며 “늘 이제까지 없었던 섹스신을 만들어내려고 했고, 전작 ‘하녀’에선 누군가 볼까 살 떨리는 느낌을 살렸다면 이번에는 코믹하고 아이러니한 정사신을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거장의 노시인과 그의 뮤즈가 된 여고생, 스승을 질투하는 젊은 제자를 통해 늙은 육체 속에 유폐된 젊음이라는 인간 근원의 비극을 보여주는 ‘은교’는 극중 17세 여고생으로 설정된 여배우의 신체를 카메라가 클로즈업하고, 두 남녀가 벗은 몸으로 희열에 떠는 장면을 ‘풀 쇼트’로 보여준다. ‘은교’의 정지우 감독은 “에로티시즘 혹은 에로틱한 느낌을 자아내는 요소는 극중 인물의 시선”이라며 “그것을 벗어나 전지적 시점으로 성행위만을 보여주는 것은 포르노그래피”라고 말했다. “‘은교’에선 거장의 노시인 이적요(박해일 분)의 시선을 성적인 욕망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들려고 했다”며 “한 여고생을 둘러싼 두 남자의 경쟁구도나 결국 ‘언제 (섹스를) 하느냐’에 맞춰지는 것이 영화의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대승 감독의 ‘후궁 : 제왕의 첩’

‘후궁’은 한 여자(조여정 분)를 탐한 최고권력자(김동욱 분)와 권력을 위해 사랑을 버린 여인, 모든 걸 빼앗긴 남자의 야심을 그린 궁중사극. 특히 올해 가장 관능적인 장면과 정조의 작품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대승 감독은 “영화는 항상 궁지에 몰린 인간들의 태도를 그린다”며 “에로티시즘 역시 극한 상황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성적인 본능과 반응”이라고 말했다. 그는 “색감, 조명, 카메라워크 등 에로틱한 느낌을 자아낼 수 있는 기술적인 방식도 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인물 사이의 관계와 피사체인 배우”라며 “어떤 상황에서 어떤 아름다운 몸을 가진 배우들이 연기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은교’처럼 노출신과 정사신이 영화의 목표에 타당해야 에로틱한 감정도 자아내고, 실제 연기를 하는 배우들도 설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지우 감독은 가장 에로틱한 장면 중 하나로 왕자웨이 감독의 ‘화양연화’ 중 두 남녀가 택시 안에 나란히 앉아 있는 장면을 꼽았다. 노출도 없고 성행위도 없다. 정 감독은 “가만히 있거나 손만 스칠 뿐인데도 뜨거운 기운이 느껴진다”고 했다. 결국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영화 속 ‘에로티시즘’은 하드코어 포르노와 소프트 코어, 에로틱 무비의 다양한 수준이 있으며, 어떤 것을 관능적으로 받아들이느냐는 관객의 개인적 경험이나 사회 문화적 배경이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그렇다면 포르노의 ‘삽입’에서 ‘화양연화’의 살갗의 스침, 그 사이 당신의 에로티시즘은 어디에 있을까. 당신 인생에서 가장 에로틱한 순간은 언제였을까. 


suk@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