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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류가객 사석원,산(山)의 심장 ‘폭포’에 도전하다
< 이영란 선임기자의 아트 & 아트 >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전국의 대폿집 순례며 아프리카순례 같은 ‘여행’은 누구 보다 좋아하지만 ‘등산’에는 유독 약한 작가 사석원(Sa Sukwon). 그는 지난 수년간 전국의 폭포 100여곳을 찾아다니느라 고생깨나 했다. 특히 2010년은 전국 곳곳의 ‘좋다’는 폭포는 모두 섭렵했다. ‘한국의 명폭 100곳을 화폭에 담겠다’는 야심찬 계획 때문이었다.

그런데 자고로 폭포란 건기(乾期)에는 신통찮고, 우기에 힘찬 위용을 보여주기에 (등산실력이 허름하기 짝이 없는 작가는) 젖은 흙에 미끄러지고 넘어지길 다반사였다. 그래도 어렵사리 찾아든 심산유곡의 장대한 폭포는 그의 심장을 멎게 했다.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폭포의 흰 포말 옆에서 마시는 냉막걸리 한잔은 최고의 풍류였다. 자칭타칭 ‘풍류가객’ 사석원이 폭포 그림을 들고 우리 앞에 왔다.


화가 사석원(52)은 동물을 잘 그린다. 당나귀, 호랑이, 소, 말, 부엉이를 그린 그의 그림은 원시적 생명력과 해학이 흘러넘친다. 그런 그가 이번엔 폭포의 쩌릿쩌릿한 기운이 절로 느껴지는 신작 40점을 모아 5월 11일부터 6월 3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사석원-산중미인(Secret Paradise)’전을 연다.

‘폭포그림전(展)’은 사석원에게 오랜 숙제였다. 풍류를 즐기고, 그 풍류에서 비롯된 흥을 바탕으로 자연과 생명의 경외감을 표현해온 그에겐 ‘산(山)의 심장’인 폭포는 오래 전부터 꼭 그려보고 싶었던 소재다. 그래서 금강산을 예닐곱번이나 갔고, 설악 오대 덕유 백두산 등을 부지런히 훑었다. 그리곤 지난 2년간 강한 붓질과 두터운 마티에르(질감)로 명폭들을 신명나게 화폭에 담아냈다.

사석원의 폭포그림은 그 갈래가 매우 다양하다. 신선들이 노닐었다는 계룡산 은선폭포는 짙푸른 녹음 속 폭포의 경관이 사실적으로 담겼고, 주왕산 달기폭포는 굵은 검은 선이 흰 포말과 격렬하게 부딪힌다. 연화산 미인폭포는 흐드러지게 핀 오방색 꽃무리 사이로 굽이굽이 흐르는 물줄기가 날렵하며, 금수산 용담폭포에는 싸움소를 그려 넣어 그 절경이 생동감있게 다가온다.


그의 폭포 연작에는 미인(여성)이 딱 한번 등장한다. 폭포수에 발을 담근채 긴 머리채를 매만지는 통통한 몸매의 누드다. 그런데 왜 ‘산중미인’이란 부제를 단 걸까?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산 속을 헤집고 들어가 폭포를 ‘딱’ 마주하면 천상에서 내려온 미인같더라. 그 어떤 미인이 더 아름답겠는가. 산이 몰래 감춰뒀던 미인이 폭포라 생각한다. 그래서 ‘산중미인’이라고 달았다"고 했다.

그런 아찔한 느낌 때문일까? 두근거림을 찾아 떠난 여정을 통해 빚어진 사석원의 폭포 그림에선 수직으로 꽂히는 낙수의 포말이 금방이라도 화면 밖으로 튈듯 생생하다. 각기 다른 기백을 지닌 우리의 명폭들에 낯익은 동물을 자유롭게 곁들인 그림 또한 호방하다. 부엉이의 두 눈동자에 오대산 구룡폭포를 좌우 대칭으로 집어넣은 시도는 더없이 흥미롭다.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살아 꿈틀대는 생명성은 ‘날 것’으로서 우리 민화가 지닌 힘과 매력 때문이다. 사석원은 민화의 꾸미지않은 야생성을 오늘에 불러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의 그림의 특징인 강렬한 색의 운용, 힘찬 기세, 신명나는 해학은 민화의 야생성에서 비롯됐다.

사석원이 이번에 도전한 폭포는 조선시대 풍류문화가 중심을 이뤘던 장소이기도 하다. 옛 묵객들은 붓을 들고 앞다퉈 폭포를 그렸다. 사석원의 폭포 연작은 이같은 사대부의 풍류문화에, 가장 서민적이랄 수 있는 민화가 함께 만난 게 특징이다. 높은 곳에서 수직강하하는 폭포의 장대한 물줄기가 중심을 이루고, 그 주위로 조선시대 민화를 연상케하는 질박한 동물들(닭, 소, 호랑이, 토끼, 말, 독수리, 부엉이)이 흥겹게 등장한다. 민화에서처럼 유치찬란하고, 해학적인 모습으로 말이다. 현대 산수의 역동성에, 민화의 서민적 생명력이 신명나게 조우하고 있는 셈이다.


어찌보면 서로 상극일 법한 두 문화를 거침없이 뒤섞을 수 있는 게 사석원의 재능이다. 그래서 그의 폭포그림은 근엄하지 않고, 삶의 환희로 가득 차 있다. 지극히 사석원스럽다.

캔버스에 유화물감을 3~4cm로 두껍게 올리며 질감을 강조하는 그는 "겨울철에 두꺼운 이불을 덮는 것처럼 따뜻한 정감을 불러일으키고 싶어 물감층을 높이 올린다"고 했다. 겹겹이 오일을 올리긴 했지만 특유의 생략기법을 구사해 화면은 유쾌하고 즐겁다.


동물 중에서도 부엉이를 특별히 좋아하는 사석원은 이번에 가로 45cm, 세로 53cm(10호) 크기의 부엉이그림을 줄기차게 그렸다. 그 중 100점을 골라 가나아트센터 2층 전시장 벽면에 ‘부엉이 백마리’라는 타이틀로 출품했다. 100점의 작품마다 제각각 부엉이들이 서로 다르게 묘사된 이 연작은 남다른 상상력과 표현력을 지닌 작가의 재기발랄한 성정을 속속들이 엿볼 수 있다.

국내외 명폭이란 명폭을 죄다 섭렵한 그에게 “올여름 휴가철에 가볼만한 폭포를 꼽아달라”고 하자 “비온 뒤 잠깐 모습을 드러내는 제주도 엉또폭포도 멋지지만 역시 설악산 천불동계곡 꼭대기에서 내려오는 오련폭포야말로 죽기 전에 꼭 봐야할 폭포”라고 답했다. 천하제일이라는 명폭들 앞에서 그저 "좋다, 참 좋다!"란 말 밖에 되뇌지 못했다지만 그의 대형 캔버스에는 찬란한 대자연의 에너지가, 오색의 사랑스런 동식물이 펄펄 살아 움직이고 있다. (02)720-1020.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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