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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교’ 김고은, 하얀 캔버스에 하나의 획을 그었을 뿐
신인 배우 김고은은 눈에 확 들어오는 예쁜 얼굴이 아니다. 수수한 모습 속에 묘한 매력을 담고 있다. 굳이 표현을 하자면 백지 같은 매력이랄까.

최근 서울 논현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김고은과의 만남을 가졌다. 스튜디오 공기가 서늘한 탓에 추위를 느끼는 그의 모습에서, ‘작품 속 은교(김고은 분)를 바라보는 이적요(박해일 분)의 마음이 이러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스크린 밖에서 그를 대면하자 왜 정지우 감독이 왜 전혀 연기 경험이 없는 신예를 선택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 ‘은교’ 어려운 결정, 후회 없는 ‘확신’ 있었다

영화 ‘은교’는 박범신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위대한 시인 이적요와 패기 넘치는 제자 서지우(김무열 분), 열일곱 소녀 은교가 서로 갖지 못한 것을 탐하는 질투와 매혹을 다루고 있다.

70세 노시인과 여고생의 사랑이라는 다소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소재와 노출에 이은 정사신은 신인 배우 김고은에겐 장고의 시간을 안겨줬다.

“가장 먼저 가족이 마음에 걸렸죠. 영화를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항상 절 응원해주시고 지지해주시는 든든한 제 편인데, ‘은교’가 데뷔작이라고 말했을 때 매우 놀라셨어요. 더군다나 소설 ‘은교’를 읽은 상태라 어떤 내용인지 잘 아셨고요. 아버지께서 한참의 고민 끝에 허락을 하셨는데 그 사이에 아버지가 갑자기 늙어버리신 듯 했어요. 미안하고 감사할 따름이죠.”

예술과 외설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신인 김고은을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만들었다. 여기에 느껴지는 부담도 적지 않았을 터.

“제가 ‘은교’로 인해 주목을 받고 스타덤을 유지하면서 붙잡고 싶었다면 부담이 되고 힘들었겠지만, 거기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한 적이 없어요. 유지하고 관심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으려고 해요. 노출 장면은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작품에 대한 확신도 있을뿐더러, 각오를 단단히 하고 촬영에 임했었어요.”

예술과 외설에 대한 정확한 기준을 세우기는 어렵다. 다만 관객들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 ‘은교’ “욕심 부렸다”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아이 은교는 김고은에게 쉬운 캐릭터가 아니었다. 장편 영화에 대한 경험이 없는 그에게 주인공의 미묘한 감정선을 표현하기란 어려운 일인 것은 분명하다.

“처음에는 즐기자는 마음으로 생각을 깊게 안하고 시작했어요. 부담을 최대한 덜어내려고 노력했어요. 3회 차 촬영부터는 점점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어요.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같은 장면을 20~30번 씩 찍었어요. 정말 하루 종일 시달렸었죠.(웃음) 4회 차 때부터는 카메라에 대한 낯설음과 주변 환경에 대한 고민을 했어요. 뭐가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면서 마음을 비웠죠. 궁금한 점이 있으면 감독님께 가장 먼저 물어봤어요. 감독님은 물론이고 해일 오빠랑 무열 오빠랑 호흡이 정말 잘 맞았어요. 이야기를 하면서 감정선과 심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어요.”

김고은이 조금만 방심하면 은교가 튀어나왔다. 아직도 그는 은교에서 빠져 나오는 중이다.

“아직도 은교의 말투나 행동이 몸에 남아 있어요. 특히 애교 부분에 있어서요. 집에서 막내다 보니까 가족끼리 있다 보면 애교가 많은 편이에요. 대학교 친구들이 제 애교를 보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일부러 애교를 부리기도 해요.(웃음)”

그에게 은교의 어두운 모습, 연민을 느끼게 하는 분위기는 사라져있었다. 극중 정지우 감독과 김고은이 손꼽는 장면은 바로 은교가 수업 중 필통을 흔들며 연필이 부딪히는 소리를 듣는 모습이다.

“필통을 딸그락 딸그락 천천히 흔든다는 자체가 저에겐 가장 인상 깊었어요. 은교가 할아버지랑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부분이잖아요. 학교에서 혼자 필통을 흔들었다는 자체가 할아버지랑 나눴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었다는 거라고 생각해요. 은교가 남의 상처에 대해 듣고 싶고, 알고 싶어 하는 아이라고 생각돼 감동받았어요. 다른 장면보다 더 예민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김고은도 은교도 욕심쟁이다. 순간의 찰나, 두 사람은 관객들과 박해일, 김무열의 시선을 앗아가려 했으니까. 이렇듯 영화 ‘은교’는 원작 소설과는 다르게 은교의 시각에서 다뤄졌다.

트인 곳을 좋아해 옥상이나 높은 곳, 한강을 주로 찾게 된다는 김고은. ‘은교’가 필모그래피에 있어 첫 흔적인 만큼 그가 겪어야 할 캐릭터는 무궁무진하다.

“저에게 있어 어떤 특정한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는 건 아직 이른 것 같아요. 그저 많은 분들에게 ‘김고은이 나오는 작품이면 보고 싶다’고 생각 할 수 있는 배우로 남고 싶어요.”

하얀 캔버스 위에 김고은은 이제 하나의 선을 그었을 뿐이다. 배우로서 그가 앞으로 그려나갈 그림에 주목해 본다. 은교의 모습 만이 아닌 배우 김고은의 필모그래피를.

조정원 이슈팀기자 chojw00@ 사진 송재원 기자 su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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