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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김용택 시인의 어머니와 日 국보작가 이노우에의 어머니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인생의 지독한 쓴맛을 뒤로한 채 고향을 떠나던 날, 나는 입을 옷도 운동화도 없었다. 돈은 물론 있을 리 없었다. (중략) 태산 같은 걱정을 앞세우고 강길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어머님이었다. 어머님께서 강길을 따라 뛰어오고 있었다, 어머님도 울고 계셨다. 어머님은 마른 풀잎처럼 서서 울고 있는 내 손에 무엇인가를 쥐여주었다. 참으로 까칠한 손이었다. 가시덤불 같은 손으로 내 손에 2천원을 쥐여주시며 어머님은 눈물 바람으로 ‘용택아, 어디 가든지 밥 잘 먹고 건강혀야 한다. 꼭 편지하고, 알았쟈’ 하셨다.”(김용택 ‘김용택의 어머니’ 중)

“나는 스물셋의 젊은 어머니가 아기인 나를 찾아 헤매며 심야의 달빛이 쏟아지는 길을 걷는 그림을 눈 속에 그리고 있었다. 내 눈 속에는 또 하나의 그림이 있었다. 그것은 환갑을 넘은 내가 여든다섯 살의 늙은 어머니를 찾아 같은 길을 걷는 그림이었다. 하나는 차가운 무언가에 젖어서 빛나고, 다른 한 장에는 무언가 황량함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이 두 장의 그림은 곧 내 눈꺼풀 위에서 겹쳐 한 장이 되었다.”(이노우에 야스시 소설 ‘내 어머니의 연대기’)



전자는 김용택 시인이 팔순이 넘은 노모의 삶을 오롯이 복원해낸 ‘김용택의 어머니’(문학동네)이고, 후자는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일본 국보급 작가 이노우에 야스시가 치매 어머니에게 바친 사모곡 ‘내 어머니의 연대기’(학고재)이다.

김용택 시인은 자신의 어머니를 시의 원천으로 종종 얘기한다. 학교에 다니지 않았어도 땅과 자연, 사람살이에서 저절로 생득한 언어의 날카로움과 생생함이 자신의 언어를 뛰어넘는다고 여겼다. “꽃만 저렇게 하야다 지면 뭐 헌다냐. 꽃도 사람이 있어야 꽃이다”, “야아, 꾀꼬리 울음소리를 듣고 참깨 싹이 나온단다”고 말하거나, 베어버린 나무 밑동과 산 나무를 새끼줄로 한데 엮어 목숨을 건네주는 어머니의 모습은 이 땅 어머니의 원형이다.

시인은 그런 어머니를 18세 재고 야무졌던 봄처녀에서 지금 팔순을 넘긴 겨울 마른 나무 같은 모습까지 자연의 흐름을 따라 어머니 삶을 그려나간다. 험하고 자갈밭 같은 인생길이지만 어머니는 그런 길가의 돌멩이들을 주워 꿈과 소망의 돌탑을 쌓고 평평한 길을 만들어 오셨다. 이젠 쇠약하고 가벼워진 노모를 보는 일이 시인에겐 아슬아슬할 뿐이다.

역사소설 ‘둔황’ ‘풍도’ 등으로 잘 알려진 이노우에 야스시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노년을 응시하며 죽음과 인간사를 담담하게 써내려 간다. 노모의 변화와 심리의 미묘한 파장을 예리하게 포착해내 의사가 환자의 관찰 기록을 써가듯 기술하지만 그런 건조한 글은 오히려 비감을 자아낸다.

‘보내지 못한 선물’ ‘일곱 살 소녀 시절 좋아했던 요절한 친척 수재소년 순마’ ‘늘 끼고 다닌 부의금 노트’ 등 어머니의 엉뚱한 행동을 놓고 가족들이 갑론을박하며 어머니를 이해하려는 모습은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이노우에는 이 작품에 대해 스스로 “수필도, 소설도 아닌 형식”이라고 소개하며 자신이 죽은 후 30년이 지나도 사람들의 마음에 남을 작품으로 꼽았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감동은 이노우에의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따뜻한 시선이다. 어머니가 옛일을 기억해 내려는 표정과 고개를 기울이거나 얼굴을 숙이며 무릎 위로 시선을 떨구는 모습을 보며 이노우에는 어머니에게 옛일을 기억시킬 권리가 자신에게 없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의 표면에 새겨진 어릴 적 눈 내리는 집의 기억 속에 혼자 살고 있는 어머니를 보며, 이노우에는 인간의 원초적 고독에 닿는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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