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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핵약’이 말기암 특효약? 말기 암 환자들 희망 앗아간 돌팔이 의사 구속
[헤럴드경제=박수진 기자]오랜 기간 간암을 앓아 온 A씨. 국내 의료기관에서는 “더 이상 손 쓸 방법이 없다”는 진단은 그에게 청천벽력과 같았다. 마지막 희망을 찾던 중 그는 중국에서 획기적인 암 치료제가 개발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중국 북경 소재 병원에서 운영하는 암전문센터에서 만든 일명 ‘핵약(核藥)’으로, 제조자인 한국인 의사 B(45)씨는 지상파 방송이나 인터넷 사이트 등에 여러차례 소개된 인물이었다.

지난 해 3월, 상담을 위해 B씨를 찾아간 A씨는 “많이 늦었다. 빨리 핵약을 먹어야 한다. 먹으면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희망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2000만원 상당의 핵약을 구입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복용한지 약 2주가 지나자 A씨의 얼굴 빛은 점점 어두워졌다. 얼굴색은 쥐색으로 변해갔다. 내장기관에 고통이 느껴지고 하혈과 각혈도 잦아졌다. A씨는 B씨에게 책임을 물었지만 그는 “나에겐 책임이 없다”며 변명만 늘어놨다. 이후 상황이 악화된 A씨는 ‘핵약’을 처음 복용한지 5개월 만인 지난 8월 사망했다.

중국에서 암 전문의 행세를 하며 말기 암 환자들에게 가짜 항암제를 만들어 판매해 수십억원을 챙긴 의사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3일 중국 북경의 한 병원에 무허가 암센터를 차려놓고 말기암 환자들에게 이른바 ‘핵약’이라는 무허가 항암제를 제조ㆍ판매해 수십억원을 챙긴 혐의(사기 및 불법의료행위)로 의사 B씨를 구속했다. 경찰은 또 중국 현지 암센터 상담실장 C(32ㆍ여)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간암 말기 환자였던 A씨 등 암 환자 112명에게 2010년 1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약 2년여 동안 “핵약은 말기 암도 치료할 수 있는 특효약”이라고 속여 약 값으로 1500만~2800여만원을 받는 등 약 값과 검사비 등의 명목으로 모두 22억여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말기 암 환자들에게 ‘특효약’이라고 속인 ‘핵약’은 사실 법적 허용 기준치를 훌쩍 넘는 납성분이 함유돼 건강을 해칠 수 있는 가짜 약이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성분 분석을 의뢰한 결과 핵약의 주성분은 소금이며 법적 허용 기준치의 4배에 달하는 납성분까지 함유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B씨 일당은 또 암 환자가 사망해 유가족들이 민ㆍ형사상 이의를 제기할 것을 대비해 “유명병원에서 환자지원용으로 조성한 기금”이라며 유가족에게 100만~630만원을 주고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기금수령 확인서’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의사 B씨는 중국 산동성 내에서만 진료를 할 수 있는 의사자격증만 취득해 다른지역에서는 의료행위를 할 수 없었지만 북경시 소재 유명 병원의 사무실을 임대해 ‘핵약의학암센터’라는 무허가 진료소를 차려놓고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국내 암환자들을 다수 모집한 뒤 가짜 항암제를 판매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내 의료행위는 정당했다”고 주장하며 여전히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핵약을 복용한 환자들 중 완치된 환자는 전혀 없고 오히려 환자의 상당수가 이미 사망했거나 상태가 악화됐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들을 상대로 핵약제조 및 환자유치 경위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를 벌이는 등 여죄를 수사하고 있다.

sjp1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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