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무엇이든 사고파는 ‘더러운’시장
정자마케팅·공해배출권…효용성이란 미명아래 상업화

도덕적·공동체적 가치 훼손…건강·교육·자연·예술

시장과 거리 둬야하는 영역…공개적 숙고의 장 필요


‘정의란 무엇인가’로 정의 돌풍을 일으킨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이번에는 ‘시장은 옳은가’란 도발적인 물음을 갖고 돌아왔다. 정의와 시장은 서로 다른 주제처럼 보이지만 샌델의 논리로 보면 둘은 근본적으로 같다. 정의가 불평등과 차별을 해소하는 것이라면,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시장지상주의를 다시 보자는 건 곧 정의란 무엇인가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샌델이 시장의 윤리성에 발언하게 된 것은 금융위기와 관련이 있다. 애초 금융위기는 시장지상주의의 종말을 고할 것으로 예고됐으나 이를 해결하는 과정은 실망스러웠다. 시장지상주의에 대한 공적 토론 대신 자본주의와 경제구조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에만 논의의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샌델은 이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될 수 없으며, 제도적인 개선 이전에 시장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효용성이란 이름으로 이뤄진 모든 시장거래가 공동체적 가치와 도덕적 가치, 전통적인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을 훼손한 게 문제의 핵심이란 얘기다.

샌델에 따르면, 시장경제와 시장사회는 다르다. 시장경제는 생산활동에 관한 문제이지만 시장사회는 시장가치가 인간의 활동 전 영역에 스며들어간 일종의 생활방식이다. 가령 영리를 추구하는 학교, 인공수정용 맞춤 난자와 정자 마케팅, 공원이나 대중적 공간에 이름을 붙이는 권리의 판매, 공해배출권 거래 등 전통적으로 비시장 규범이 지배하던 삶의 영역이 시장가치로 바뀐 것이다. 샌델은 지난 30년간의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혼란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즉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적었을 때는 부의 차이가 크게 문제되지 않았지만 무엇이든 사고파는 세상에서는 돈이 모든 차별의 근원이 된다. 이는 불평등과 공정성에서 나아가 부패와 연결된다.

샌델은 시장에 속한 영역이 무엇인지, 시장과 거리를 둬야 할 영역이 무엇인지 판단하려면 해당 재화, 즉 건강 교육 가정생활 자연 예술 시민의 의무와 같은 재화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은 샌델이 제시하는 시장만능주의 사례들로 가득하다.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모든 것이 시장의 지배를 받는 현상은 부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삶이 점차 분리되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살고 일하고 쇼핑하며 논다. 우리 아이들은 서로 다른 학교에 다닌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스카이박스화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는 민주주의에 좋지 않으며 만족스러운 생활방식도 아니다.” (본문 중)

2003년 미 국방부는 해외의 어느 지도자가 암살되거나 권좌에서 내려올지 또는 테러리스트들의 다음 공격 목표가 어디일지를 놓고 도박하는 ‘테러리즘 선물시장’ 웹사이트를 개설하려다 반대에 부딪혔다. 2007년 미시간대는 학교의 상징인 스타디움에 스카이박스 증축을 포함해 2억2600만달러가 들어가는 보수계획을 발표했다가 일부 동문의 항의가 있었지만 81개의 호화특별석을 증축했다. 기업 광고판을 단 순찰차, 성적표에 등장한 맥도널드 광고, 해변 모래밭 광고 등 공적 영역으로 침투해 들어온 상업화는 우리에게도 이젠 낯설지 않다.

샌델은 가정생활과 우정 성 건강 교육 자연 예술 시민정신 등 많은 영역에 어떤 규범이 합당한지를 놓고 이젠 의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반대에 부딪힐까 봐 두려워 자신의 도덕적ㆍ정신적 확신을 공공의 장에 내보이길 주저하는 사이, 시장이 우리 대신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난 30년간 우리가 얻은 교훈이다. 시장지상주의 시대는 공공 담론에 도덕적ㆍ정신적 실체가 상당히 부족했던 시대와 일치한다. 시장을 제자리에 놓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 관행과 재화의 의미에 관해 솔직하게 공개적으로 숙고하는 것이다.”

샌델의 이번 주제는 정의란 무엇인가와 마찬가지로 명쾌한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그 특유의 열린 토론을 유도하는 사고의 틀을 제시하는 데에 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살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어째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의 문제다. 이 책의 내용은 2012년 봄 학기부터 ‘시장과 윤리(Markets & Morals)’라는 이름으로 하버드대 철학 강의로 개설돼 폭발적인 호응을 끌어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