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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 눈’ 윤석화 “고난, 역경, 열정? 뿌린 만큼 거두는 것” (인터뷰)
25년 만에 김태균 감독의 영화 ‘봄, 눈’으로 돌아온 윤석화. 그는 흐르는 세월을 거스르지 않았다. 염색을 하지 않은 희끗희끗한 흰 머리칼이 그의 수십 년 연기 생활을 증명하는 듯 했다.

그에게 “왜 염색을 하지 않느냐”고 묻자 “이 나이에 어울리는 데 뭘 그러나. 순옥의 흔적이다”라며 웃어 보였다. 천진난만하게 웃는 그의 모습은 마치 때 묻은 곳 없는 어린 소녀와도 같았다.

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윤석화는 카리스마가 담긴 여배우와 자상한 어머니의 면모를 모두 갖춘 사람이었다.

-눈물의 힘, 윤석화를 스크린에 들이다

윤석화는 영화보다는 연극과 뮤지컬 무대가 더 익숙한 배우다. 그는 스스로도 “신인배우나 다름 없다”며 겸손함을 보였다. 특히 지난 2007년에는 학력위조 논란에 휩싸이며 많은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가 ‘봄, 눈’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일까.

“사실 제 목소리로 연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영화를 할 수 있는 여력도 없었고요. 몇 번의 시나리오가 들어왔지만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봄, 눈’ 원제가 ‘눈물이 아름다워’였죠. 보자마자 제목에 매료됐어요. 눈물은 우리를 정화시켜주고, 위로해 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눈물’의 힘을 믿고 있던 그는 시나리오를 읽고 작품 속 메시지에 또 한번 매료됐다고. 이후 그는 김태균 감독과 자신이 묵고 있는 런던에서 만남을 가졌다.

“감독님을 뵙고 이야기를 나눴죠. 왠지 이 영화를 잘 만드실 것 같은 확신이 들더라고요. 시기도 너무 어려운 시기였던 만큼, 가장 낮은 자세로 임하려고 노력했죠.”

작품 속 윤석화가 선보이는 감정 연기는 상당하다. 암에 걸린 순옥의 모습을 슬프게만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남편과 자식, 또 자신의 노모에게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내색하지 않는 희생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온화한 미소로 그려낸다. 눈물과 미소가 공존하는 순옥의 모습은 찬란한 아름다움이다.

“이야기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는 않았어요. 제가 엄마로 살아가다보니 가족들에게 엄마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 잘 알 수 있었죠. 순옥은 누군가를 비춰주는 ‘달’ 같은 존재라는 걸 알 수 있죠. 이 영화의 백미기도 하고요. 저도 순옥을 연기하면서 돌아가신 제 어머니가 더욱 그립고, 살아계실 당시의 제 모습에 대해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삭발 신? 김태균 감독이 먼저 울더라”

극중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순옥의 삭발신이다. 암에 걸린 순옥은 자신의 머리칼을 스스럼 없이 잘라내며, 눈물 짓고 또 다시 웃는다. 윤석화의 열연이 가장 빛나는 장면 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작품을 통해 삭발을 경험한 그이지만, 여배우에게 ‘삭발’이란 늘 어려운 과제일 터.

“쉽지 않다고 생각하면 참 쉽지 않은 일이죠. 하지만 자신의 업이 연기고, 머리카락 하나 잘라내는 것인데, 뭐 그리 어려울 게 있나요. 제가 먼저 감독님에게 삭발을 하겠다고 자청했어요. 차마 감독님이 먼저 말씀을 못하시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영화의 진실성을 위해서라도 꼭 머리를 삭발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실제로 김태균 감독은 그의 삭발 투혼에 먼저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이런 김태균 감독에게 윤석화는 “참 좋은 사람”이라며 거듭 칭찬했다.

윤석화에게는 ‘가슴으로 낳은’ 9살 난 아들과 5살 딸아이가 있다. 어린 아이들에게 ‘엄마’의 삭발은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딸은 워낙 어려서 삭발에 대해 잘 몰라요. 아들에게는 ‘엄마가 영화 때문에 머리를 잘라야 된다’고 설명해줬죠. 그랬더니 아들이 ‘엄마가 스크린에 나오냐’ 묻더라고요. 그렇다고 했더니 ‘굿’이라고 한마디 하는데 너무 귀여웠어요. 오히려 아들이 제 머리를 쓰다듬어줬죠. 딸아이는 ‘엄마는 긴머리가 예쁘다’며 투덜댔고요.(웃음)”

그는 자신의 딸과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갔다. 이 모습은 마치 극중 아들 영재와 미선을 극진히 생각하는 순옥의 모습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는 순옥이 자신보다 좀 더 “부드럽고 여린 엄마”라고 표현했다.

“순옥과 제가 속한 환경부터 다르죠. 전 배우의 길을 걷고 있지만 순옥은 한 남편의 아내로서 엄마로서 지극히 평범하게 사는 여자니까요. 거룩하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다만 저와 닮은 부분을 꼽으라면, 긍정과 사랑의 힘을 믿는다는 것이죠.”

- 母子 호흡 임지규, 그리고 아끼는 후배들

윤석화와 임지규는 이번 영화를 통해 ‘모자지간’의 정을 슬프고도 행복하게 그려냈다. 실제로도 어머니와 아들처럼 꼭 닮은 두 배우. 연기 호흡 역시 환상적이었단다.

“지규는 정말 아들같고, 자세가 된 배우에요. 참 성실하고 착하죠. 배우의 덕목을 갖춘 친구라 더 기특해요. 솔직히 잘생기고 스타일이 좋아서 젊은 여성팬들이 많은 스타도 필요하지만, 진정성으로 연기를 오랫동안 할 친구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자신의 노하우를 임지규에게 알려주고 싶어했다. 그만큼 그와 임지규는 ‘누구도 끊지 못할’ 굵은 인연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지규가 어린 친구는 아니니까, 오래 갈 수 있는 배우의 길을 조금 더 알려주면 지금보다도 더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윤석화의 후배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연기를 바라보는 폭넓은 시야를 갖춘 이 배우는 아끼는 후배들도 다양했다. 박건형, 연극 배우이자 연출가인 우현주, 이시영, 서우 등 각양각색이다. 뮤지컬, 연극,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어선 그의 화려한 연기 스펙트럼만큼.

“뮤지컬 쪽으로는 최정원과 박건형을 예뻐해요. 워낙 연기도 잘하고 예의도 바르니까요. 또 연극계에서는 우현주라는 아주 예쁜 후배가 있죠. 연출의 능력도 갖춘 친구고요. 아 참, 저는 이시영과 서우의 연기도 좋아해요. 배우로서 매력이 있더라고요.”

-고난과 역경, 뿌린 만큼 거두는 것

누구나 자신의 길을 걸으며, 수많은 고난과 역경에 빠진다. 이 과정에서 자신에게 부는 비바람을 참지 못하고 포기해 버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꿋꿋한 힘으로 감내하는 사람이 있다. 윤석화의 ‘외유내강’한 모습은 후자에 가까웠다.

“고난이 참 많았죠. 너무 많았어요.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처럼 말이죠. 하지만 열정이 없으면 시련도 없다고 생각해요. 뭔가 꿈을 갖고 한 걸음 자신의 길을 걷다보면 뿌리도 깊어지게 되죠. 또 뿌리가 깊어지면 가지가 많아지고, 자신이 견뎌야 할 일도 많아지게 되죠. 가지가 많으니 바람이 불면 더 아프게 흔들려죠. 하지만 뿌린 만큼 거둔다고 했듯이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실제로 자신이 ‘거두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죠.”

그는 배우뿐 아니라 현재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 제작자로도 활동 중이다. 끊임없는 도전 중인 그는 두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치밀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고.

“미리부터 계획을 세우는 건 저에게 익숙하지 않아요. 뭐든지 제 마음대로 안될 때도 있고 미흡할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자책도 하지만 저는 제가 더 성숙해 지는 시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기도의 힘이 없었다면 아마 무모한 도전을 계속하지 못했을 겁니다.”

인터뷰를 하기 전, 그는 카리스마가 넘치며 사람을 압도하는 힘을 가진 영락없는 천상 여배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그가 소녀같이 여리고 맑은 사람이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혼신의 힘으로 연기하는 배우 윤석화의 진정성이 관객들의 가슴에 고스란히 전달되기를 바래본다.

양지원 이슈팀기자 jwon04@ 사진 백성현 기자 stha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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