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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인의 날, ‘유니버설 디자인’과 ‘배리어프리영화’를 아십니까?
“사람의 시력이나 청력이라는 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그것은 우주의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뿐이다/때가 되면 그들은 주인에게로 돌아올 것이다”(이상 영화 ‘달팽이의 별’ 중 시청각 중복 장애인 조영찬)

“드리스가 옆에 있으면 내가 장애인인 걸 잊어. 나를 보통 사람으로 대해주거든. 그는 나에게 연민이나 동정따위를 보내지 않지.”(프랑스영화 ‘언터쳐블: 1%의 우정’ 중)

‘유니버설 디자인’과 ‘배리어프리 영화’를 아십니까. 20일은 장애인의 날. 최근 국내에서도 장애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탈피해 새로운 생각과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사회, 문화적 움직임이 활발히 일고 있다. 건축과 산업 부문에서의 ‘유니버설 디자인’과 영화계에서의 ‘배리어프리 영화’ 운동이 대표적이다. 장애를 단순히 신체적인 문제로 제한하지 않고 성, 인종, 연령, 국적 등 영역에서의 소수자,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사회구성원 모두의 ‘보편적 접근권’의 시각에서 다가가려는 노력이다. 이와 함께 장애를 다루거나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나 TV드라마 등 대중문화 콘텐츠도 최근 들어 부쩍 늘었다. 

이들 작품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신체적 장애나 질환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비장애인들에게 교육과 정보 제공의 역할을 한다. 아울러 신체적인 것뿐 아니라 정신, 심리적 문제를 포괄하는 ‘장애의 보편성’에 주목해 장애/비장애의 구분을 넘어 관객들에게 감동을 자아낸다. 현대사회에 와서 장애는 유무가 아니라 정도와 차이의 문제라는 과거와 ‘다른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일찌기 보편적 접근권에 대한 관련법규와 사회 전반의 공감이 이루어진 서구사회에 비해 국내엔 이동권 보장을 비롯한 장애인들의 권익 확대가 여전히 미흡하고 장애인들의 불만과 비판의 목소리가 높지만 문화 영역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확산되고 있다. 


국내 최초로 설립된 경성대의 유니버설 디자인연구센터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특별한 개조나 특수한 설계를 하지 않더라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차별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이용가능하도록 처음부터 계획하고 제품, 환경, 서비스를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징애 뿐 아니라 성, 연령, 국적 등의 차이를 뛰어넘어 보편적 이용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다. ‘저상버스’는 대표적인 사례다. 


‘배리어프리영화’는 시청각 장애인들도 즐길 수 있도록 자막과 음성해설이 함께 제공되는 일종의 장애인 영화관람권 운동으로 미국, 일본에서 먼저 시작됐다. 국내에선 지난 3월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가 설립돼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최근엔 시청각 중복 장애인과 척추장애인 부부의 이야기를 담아 해외에서 호평받은 ‘한국 다큐멘터리영화 ‘달팽이의 별’과 전선마비 환자를 주인공으로 한 프랑스영화 ‘언터쳐블’이 개봉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특히 사회적 편의시설이나 건축물에서 장애와 비장애인, 성인과 노약자ㆍ임신부 등의 이용 공간을 별도로 구획하지 않고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디자인을 가리킨다. 건물에서 장애인이 출입하는 별도의 이동통로를 만들지 않고 계단과 슬로프를 같은 공간에 만들어 장애인 뿐 아니라 노인, 어린이, 임신부 등이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대표적인 사례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발상은 ‘정상=비장애 성인 남성’이라는 편견과 근대적 사고를 부정한다. 


‘유니버설 디자인’이라는 단어와 개념을 처음 제안한 사람은 미국의 건축가이자 교육자인 로널드 메이스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기도 했던 그는 1974년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의뢰받은 ‘배리어프리’ 보고서에서 “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한 제품과 디자인을 위해서는 특별한 비용을 필요로 한다”는 개념을 부정하며 새로운 생각을 발표했다. 유니버설 디자인연구센터에 따르면 미국에선 이미 1990년 건축시설에서의 장애인 이용권, 장애인 고용, 제품과 서비스의 보편적 접근권 등을 담은 ADA(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라는 장애인법이 마련됐으나 국내에선 아직 ‘유니버설 디자인’의 적용은 법제화되지도 않았고, 사실상 연구 단계 및 일부 사례에 불과한 ‘걸음마 수준’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의 TV는 청각 장애인을 위한 자막기가 필수이지만 국내에선 별도 구입 제품이다. 휴대폰의 경우에도 해외의 인기제품에는 시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다양한 편의장치가 기본으로 장착돼 있지만 국내 브랜드의 것은 그렇지 않다. TV도 국내 기업의 해외수출용엔 자막기가 포함됐지만 국내에선 별도로 판매된다.

‘배리어프리영화’는 당초 시청각 장애인 관람권 확대를 위해 출발했지만 현지 언어가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ㆍ다문화 가정, 영화 이해나 청력, 집중력이 떨어지는 어린이ㆍ고령자층, 다운증후군 등 지적 장애인 등 다양한 관객층을 위한 서비스로 확대되고 있다. 배리어영화위원회의 이은경 대표는 “‘배리어프리영화’는 ‘유니버설 디자인’ 운동과 맥을 같이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배리어프리영화가 단순히 영상에 부가된 기존의 자막, 음성해설과 다른 점은 ‘비장애인을 위한 작품에 걸맞는 온전한 예술작품의 요소’로서 예술가의 연출의도 아래 새롭게 창작ㆍ감상되는 행위로 본다는 것이다. 배리어프리영화로는 ‘블라인드’ ‘마당을 나온 암탉’ ‘달팽이의 별’ ‘마이 백페이지’ ‘도가니’ 등이 제작돼 개봉했다. 영화진흥위원회와 CJ CGV는 최근 ‘장애인의 영화 관람환경 개선을 위한 업무 협약식’을 맺고 이달부터 매월 셋째주 화요일을 장애인 무료 관람일로 정해 전국 극장에서 배리어프리영화를 상영하기로 했다.

대중문화 콘텐츠에서도 장애에 대한 관심은 부쩍 늘었다. 최근 방영된 KBS의 인기 수목드라마 ‘적도의 남자’에선 극중 시각장애인을 하는 엄태웅에게 이보영이 영화를 ‘음성해설’ 해주는 장면이 등장했다. 지난해 개봉했던 ‘오직 그대만’에선 소지섭이 시각장애인 역할의 한효주에게 TV 드라마를 같이 보며 영상을 일일이 설명해주는 대목도 있었다. 


장애가 등장하는 국내외 영화 100편을 분석해 ‘비욘드/블랙’ ‘영화와 예술로 보는 장애인 복지’ 등의 저서를 발표한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한국 TV 드라마와 영화에선 장애나 장애인이 일종의 금기시된 소재나 주인공으로 여겨져 2000년대 이전엔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며 “영화 ‘말아톤’의 흥행 성공 이후 다양한 대중상업영화가 만들어지고 장애인 인식 개선에도 큰 몫을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기존 영상미디어와 콘텐츠는 장애를 소수자의 영역으로 다루는 한계를 가져왔다”며 “하지만 장애는 누구나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경중의 문제, 사실상 장애는 물리적인 신체의 장애만이 아니라 정신이나 마음의 장애까지 포괄하는 인문학적인 주제”라고 말했다. 아울러 “증상과 행동의 정확한 묘사, 즉 ‘리얼리티’를 요구하는 장애인들의 목소리와 은유와 상징, 보편성, 알레고리가 중요한 문화예술의 관점은 끊임없이 긴장을 빚겠지만 양자 사이에서 균형감각을 갖춘 TV드라마나 대중상업영화는 앞으로도 많이 제작되고 관객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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