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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중장부 쓰고 현금만 받고…원장 손에서 놀아난 정부
어린이집만 배불린 무상보육…현장은 지금
정책 농락하는 어린이집
영어교육비 따로 올리고
식대 등 3개월치 한번에 청구
항의하는 학부모들
블랙리스트 만들어 공유

책임 떠넘기는 정부·지자체
“정부 정책 아무리 잘 짜도
지자체 집행·감시 의지없어”
“180개 보육시설 6명이 관리
현장실사 年 1회도 힘들어”


최근 서초구 방배동 ‘O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 강성회(39ㆍ가명) 씨.

그는 최근 어린이집으로부터 두 번의 서로 다른 교육비 내역서를 받았다. 입학설명회 때 이미 들어 알고 있는 일이었다. 당시 원장 A 씨는 “정부가 정해준 교육비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보내는 청구서는 그냥 찢어버리고, 나중에 보낸 좀 더 비싼 청구서로 결제하면 된다”고 말했다. 대놓고 이중장부 관리를 얘기하고 있었다.

강 씨는 “아예 가정통신문에는 현금으로 결제하라는 걸 보며 어린이집들이 정부 머리 꼭대기에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항의하는 학부모는 단 한명도 없었다. 당장 아이를 맡겨야 하기 때문. 복지국가의 근간이라며 실시한 정부의 ‘무상보육’ 정책은 이미 현장에선 무용지물이었다.

▶국가 보육정책, 원장들 손아귀에=이런 상황은 O어린이집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다. 인근 ‘Y유치원’은 지난해 월 30만5000원이던 기본 교육비를 정부 규정에 맞춰 27만5000원으로 3만원 인하했다. 그대로라면 5세 자녀를 둔 가정에선 정부 지원금 20만원에 별 부담없이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진짜 보육료는 지금부터다. 3개월치를 한꺼번에 받는 행사견학비 25만원, 점심값 23만원, 미술재료비 7만5000원 등에 냉난방비 8만원까지 청구됐다. 영어교육비는 지난해 월 15만원에서 25만원으로 60% 넘게 인상됐다. 5세 아동 기준 월 교육비는 84만원으로 껑충 뛴다. 이 유치원은 영어교육비를 별도 법인 수익으로 회계처리해 실제 구청 등에는 이보다 훨씬 적게 신고하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교육료는 올리면서 일부 어린이집ㆍ유치원들은 보육교사 숫자를 줄이는 등 수익률 올리기에만 열을 낸다. 서초구의 ‘U유치원’의 경우 7세반 교사 1명이 29명의 어린이를 맡고 있었다. 최근 초등학교도 한 반에 25명 선임을 감안하면 매우 열악한 상황.

하지만 학부모들은 이에 대해 제대로 된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6세 아이를 둔 맞벌이 학부모 김현주(33ㆍ여ㆍ가명) 씨는 “기존 유치원에서 올해 갑자기 인상된 가격에 보육환경 악화까지 겹쳐 이에 항의했다가 아이가 교사로부터 차별대우를 받는 것을 알고 그만뒀다”며 “구내 인근 유치원들끼리 한번이라도 항의를 했던 학부모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하는 바람에 다른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도 아이를 받아주지 않아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ㆍ지자체 서로 남 탓만=정부는 당초 보육료 지원 정책을 발표하면서 국가가 책임지는 유아교육ㆍ보육의 비전 구현이 취지라고 밝혔다. 올해부터 만 5세 아동에게 지원되는 보육료를 현 정부가 예산을 편성하는 내년부터는 아예 3, 4세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론상으로 이 같은 정부 정책은 복지혜택을 늘리는 차원에서 출발해 덤으로 출산율 상승과 물가 잡기까지 부수효과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집행된 예산이 어디로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전혀 관리되지 않고 있었다. 한 사립 유치원 원장은 “정부의 보육료 지원 덕에 집이나 놀이학교 등에 있던 유아들이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 쏠린다”며 “이미 교육비는 정부 지원금만큼 올렸는데 찾아오는 사람은 많아져 올해는 사실상 대박이 터진 셈”이라고 말했다.

정부 예산이 보육시설 원장들 주머니로 들어가는 현상에 대해 오히려 정부는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기획재정부 한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정책을 아무리 잘 짜면 뭐하냐”며 “제대로 집행하고 감시해야 하는 지자체가 전혀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자체 입장에서는 학부모들보다는 보육시설 원장 연합이 훨씬 두려운 존재”라며 “정치적 이유로 단속이 이뤄지지 못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지자체는 전혀 다른 주장이다. 서초구청 담당자는 “180여개에 달하는 보육시설을 6명이 담당해 1년에 한 번 현장 실사를 하기도 어려운 수준”이라며 “정부 보육료 지원금이 사실상 헛사용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증거 확보는 힘든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현실성 없는 정책 때문에 오히려 지자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하소연도 함께했다.

지난 4ㆍ11 총선 준비과정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가족행복 5대 공약’의 핵심으로 현행보다도 보육료 지원을 대폭 늘리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국 단위의 보육료 실태 조사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늘리는 국가 지원금이 고스란히 보육시설 원장들 차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윤정식 기자>
/yjs@heraldcorp.com


[반론 보도문: '서울 방배동 Y유치원 교육비' 관련]

본지는 지난 4월 18일자 1면 ‘무상보육 어린이집만 배불렸다’, 3면 ‘이중장부 쓰고 현금만 받고…원장손에 놀아난 정부’ 제목으로 서울 방배동 소재 Y유치원이 정부 보조금 지급 이후 영어교육비 등 추가 항목을 인상해 학부모들의 부담을 증가시켰다는 취지의 보도를 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서울 방배동 소재 Y유치원 원장은 “유치원의 영어교육비는 수업시간이 늘어나고 신규 교재비가 추가되어 인상된 것이고, 전년대비 유아교육비가 인상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혀왔습니다.

위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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