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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말의 ‘위험사회’
‘나꼼수’김용민의 대중 인기
정치논리로 이용한 야권
연예인 김구라의 과거발언에
도덕적 책무 요구하는 사회…

정치행위와 대중예술
양 영역에 대한 혼돈·혼동
정치적 자멸·문화적 자살로

말로 흥한 자, 말로 무너졌다. ‘나꼼수’로 인기를 얻은 김용민은 통합야권에 치명타를 안기며 총선에서 낙마했다. 화끈한 입심을 자랑하며 승승장구하던 개그맨 김구라도 퇴출 요구에 몰려 방송활동을 중단했다. 전 국회의원 강용석은 성희롱 발언으로 출발해 점입가경의 ‘저격탄’을 남발하다 총선에서 참담한 패배를 당했다. 정치계나 연예계나 입이 화근이었고, ‘막말’이 문제였다. 국민의 운명과 정치적 책임을 걸고 발언해야 할 정치인은 토크쇼나 SNS, 팟캐스트에서 연예인이나 할 법한 독설이나 ‘개그’를 쏟아냈다. 연예인들의 풍자는 자가당착적인 정치논리에 휩쓸리다 결국 가서는 안 될 선까지 막 나가고 엇나가 버렸다.

정치인이 풍자하고, 개그맨의 말이 정치행위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니 정치인보고 ‘코미디언’보다 더 웃기다고 하고, 개그맨보고 국회로 가라고 한다. 정치행위와 대중예술, 양 영역에 대한 혼돈과 혼동이 막말의 ‘위험사회’를 초래했다.

대중예술은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을 목표로 삼고, 엔터테이너와 엔터테인먼트산업은 이윤을 대가로 얻는다. 정치행위는 대중을 설득해 지지를 얻는 것이 목표다. 그것을 통해 정치가와 정당은 권력을 획득한다. 대중예술의 창작행위로서 풍자와 정치행위로서의 발언은 엄연히 구별돼야 한다. 양자가 혼동되면 정치가와 엔터테이너가 구별되지 않는다. 정치가에게 재미를 달라 하고, 연예인에게 공직자 이상의 엄중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기현상이 나타난다. 우리 사회가 그렇다.

근본적으로는 풍자와 폭로 영역에 있었던 ‘나꼼수’에 대한 폭발적인 인기를 ‘정치적 지지’로 해석한 야권은 김용민을 공천했고, 반대편은 김용민의 과거 발언을 일일이 들춰내 상대를 고꾸라뜨렸다. 정치색 논란에 늘 표적이 돼왔던 김구라는 10년 전 내뱉었던 ‘해선 안 될 말 한 마디’로 한순간에 몰락했다.

김용민의 낙마와 김구라의 활동 중단에 대해 많은 이가 “그럴 만한 과오”라고 했고, 대중의 심판은 엄혹했다. 그래도 왠지 모를 씁쓸한 입맛이 가시지 않는다. 들춰보자고 하면 훨씬 더한 막말로 자리와 밥줄을 내놓으셔야 할 책임 있는 공직자와 정치가들의 얼굴이 너무 많이 떠오르기 때문이 아닐까. 정치인과 기업가의 범법행위는 너무 쉽게 용서되고 잊히는 사회, 연예인들에게 종교인 같은 도덕적 책무를 요구하는 사회야말로 막말보다 위험하다.

‘풍자냐, 자살이냐.’ 풍자를 정치행위로 오해하면 정치적 자멸을 대가로 치르고, 연예인들의 독설과 풍자를 검열하자고 하면 대중예술의 ‘문화적 자살’을 불러올 것이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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