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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이기 다룬 ‘인류멸망보고서’ · 외계인 공격에 맞선 ‘배틀쉽’…인류 생존위기에 대한 반성·과시 ‘두개의 시선’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북극의 빙하는 하루가 다르게 녹아내려가고, 계절과 날씨의 변화는 마치 오작동하는 시스템마냥 기괴하기 짝이 없다. 지진과 해일이 끊임없고, 편하자고 만들어놓은 인류 문명의 이기가 지구의 생존을 위협한 지 오래다. 핵폭탄이나 원자력발전소가 인류의 생존에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음을 목격한 것이 엊그제다. 다양한 형태와 근거의 ‘종말론’을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이유다.

서구의 철학이나 종교가 이미 목적론적인 세계관에 근거하고 있고, 종말론을 전제하고 있다는 학구적인 분석을 들지 않더라도 인류는 다양한 형태로 인류 최후의 날을 상상해왔고 귀를 기울여 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제작자는 종말론에 깃든 공포와 불안이 곧 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투모로우’ ‘2012’ ‘지구가 멈추는 날’ 등 인류의 종말을 다룬 수많은 작품이 관객의 지갑을 열었다. 이들 작품에서 지구의 운명을 위협하는 것이란 파충류를 닮은 외계인부터 노아의 방주 이후 최대의 물난리까지 다양하다. 인류 스스로가 핵전쟁을 일으켜 명을 재촉하기도 하고, 지구와 다른 행성이 충돌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영화도 인류 멸종을 재촉하는 거대한 재앙이라는 화두를 부여잡았다. 김지운 감독의 ‘천상의 피조물’과 임필성 감독의 ‘멋진 신세계’ ‘해피버스데이’ 등 40~50분 상영시간의 중단편 3편을 묶은 옴니버스 형식의 SF 판타지 영화 ‘인류멸망보고서<>’가 11일 개봉했다. 공교롭게 하루 전인 10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배틀쉽<아래>’도 개봉했다. 이 작품 역시 생존 위기를 맞은 인류와 지구를 그리고 있다.


무엇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가

인류의 위기는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내부로부터 오는가, 외부에서 비롯되는가. ‘인류멸망보고서’에선 인류 스스로의 문제가 지구의 종말을 재촉한다. 반면 ‘배틀쉽’은 지구에 침공한 외계인이 인류를 ‘박멸’하겠다고 나선다.

‘인류멸망보고서’ 속 ‘멋진 신세계’와 ‘해피버스데이’는 황당무계하거나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담은 코미디영화다. 충무로의 재능있는 젊은 감독으로 큰 기대를 받았지만 ‘남극일기’ ‘헨젤과 그레텔’ 등 연거푸 흥행의 고배를 마신 임 감독은 이 두 작품에서 한국사회의 ‘현재’에 대한 쓰디 쓴 농담으로 미래사회를 그려냈다. ‘멋진 신세계’에서 인류의 재앙은 데이트에 정신이 팔린 한 청년(류승범 분)이 음식물쓰레기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시작된다. 불순물이 섞인 음식물쓰레기는 사료로 재가공돼 소에게 공급되며, 결국 오염된 고기를 먹은 사람은 변종 인플루엔자와 결합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점차 좀비가 돼 간다는 내용이다.

전염병으로 사회가 혼란에 빠지자 북한의 음모로 보는 전문가부터 ‘정당의 선거득표율과 지역별 발병률이 같다’고 주장하는 시사평론가, 의학연구자인 ‘황박사’를 복귀시켜야 한다는 이들, 생화학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미국 등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우리사회에서 펼쳐지는 익숙한 풍경을 풍자한 대목이 웃음을 자아낸다.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윤제문 마동석 김무열 조윤희 류승수 등이 조연배우로 등장해 또 하나의 관전포인트를 제공한다.

‘해피버스데이’는 당구광인 아빠의 8번 당구공을 부숴뜨린 어린 소녀(진지희 분)가 몰래 인터넷으로 새 것을 주문했다가 2년 후 거대한 혜성으로 돌려받아 지구와 충돌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배틀쉽’은 ‘외계인=인류의 공적’이라는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설정을 반복한다. 여기에 ‘트랜스포머’에서 보인 ‘여자친구를 얻기 위한 소년의 성장모험담’이라는 얼개를 결합한다. 할 일 없이 맥주나 퍼마시고 여자 뒤꽁무니만 쫓던 말썽꾸러기 청년 알렉스 하퍼가 해병대 엘리트 장교인 형의 강압으로 역시 군복을 입은 후 다국적 연합군의 해상작전에 투입된다. 그런데 외계에서 침공한 괴물체가 바다로 떨어지고, 이것으로부터 대규모 공습이 벌어져 지구가 초토화될 위기에 처한다. 미 해병사령관의 딸을 얻으려는 하퍼가 지구의 운명을 구하기 위해 펼치는 활약이 ‘배틀쉽’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인류의 힘에 대한 반성이냐 과시냐

‘인류멸망보고서’에서 김지운 감독이 연출한 ‘천상의 피조물’은 로봇을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빼어난 작품이다.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목적으로 개발된 로봇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미래의 어느 때다. 그런데 한 사찰에 팔렸던 로봇이 문제를 일으킨다. 인간의 명령과 지시를 따라 허드렛일이나 대신해야 할 로봇이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것은 물론, 깨달음까지 얻어 승려에게 설법을 펴는 존재가 된 것이다. 스님은 RU-4에 인명스님이라는 법명을 붙여 ‘산 부처’로 추앙하고, 로봇기업 UR는 ‘오작동된 로봇’으로 규정한다. 해탈이냐 고장이냐, 산 부처냐 에러난 로봇이냐. 로봇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비롯해 영상의 완성도도 빼어나지만 특히 관객을 사로잡는 것은 고승의 선문답을 방불케 하는 대사의 품격과 수준이다.

‘인류멸망보고서’는 결국 인간의 힘, 문명의 이기에 대한 ‘반성’으로 SF 장르를 한국적으로 수용했다. 반면 ‘배틀쉽’에선 미국과 일본의 장교를 주축으로 연합군이 구성돼 거대 구축함이나 전함, 전투기 등을 총동원해 외계인과 대결한다. 할리우드의 화려한 영상기술뿐 아니라 인류의 과학에 대한 ‘과시’, 지구를 구하는 미국의 전쟁능력의 맹신이 ‘배틀쉽’의 근저에 깔린 태도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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