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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로 패션’, 최후까지 생각한 ‘착한’ 디자인
[헤럴드경제=박동미 기자]‘패스트 패션’이 대세다. 세계적인 컬렉션에서 선보인 디자인이 일주일 뒤면 매장에 깔린다. 자라, 망고, 에이치앤엠 등 SPA(제조ㆍ유통 일괄형)브랜드가 이를 주도한다. 빠르고 멋지며, 저렴하다. 소비도 빨라진다. 쉽게 사고, 자주 사고, 많이 산다. 지난해 11월 유니클로가 명동에 아시아 최대 매장을 열면서, 국내 패션업계에서도 ‘SPA 광풍’이 불었다. 혹자는 “이러다 모두 체하겠다”고 했다. ‘그 수많은 옷들은 결국 어디로 갈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하면, 이는 명백히 반환경적인 소비행태이기 때문이다.

오는 22일 ‘지구의 날’을 앞두고 ‘슬로 패션’이 화두에 오르고 있다. 소재 선정부터 제작ㆍ유통 등 모든 과정에 ‘친환경’을 표방하는 패션이다. 그래서 이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환경을 지키는 일종의 ‘착한 소비’다. 오랫동안 ‘친환경 패션’은 예쁘지 않다는 고정관념이 강했지만 이것도 곧 옛 이야기다. ‘촌스러운’ 디자인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 이 시대에 친환경 패션은 꿋꿋하게, 더욱 기발하게 진화하고 있었다. 


▶신문지 가방ㆍ진흙 염색…친환경 디자인도 멋지다= 김은정 ‘슬로우 바이 쌈지’ 디자이너는 “그동안 친환경 옷이나 소품들이 서투르고 촌스러워 보였던 게 사실이다”며 “친환경 제품인 걸 몰라도 소비자들이 ‘멋지다’고 느껴서 사도록 하는 게 디자이너의 역할이다”고 말한다. 그래서 영국 록밴드 U2의 보컬 보노가 선보이는 의류 ‘이든’과 그린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가 컬렉션마다 선보이는 옷들은 의미가 크다. 보노처럼 멋지고, 매카트니처럼 세련된 이미지가 ‘친환경 패션’을 떠오르게 할 테니.

1990년대 한국적인 미를 잘 살린 잡화 브랜드로 인기를 끌었던 ‘쌈지’는 2000년대 경영위기를 겪은 후 최근 ‘슬로우 바이 쌈지’로 재탄생했다. 환경 친화적인 제품들을 생산ㆍ판매하며 ‘착한 소비’를 이끄는 사회적 기업으로 변모했다. 이 회사는 기존 ‘쌈지’가 갖고 있는 디자인력을 십분 활용한다. 환경보호ㆍ소비문화 등 거창한 개념을 들이대지 않아도 ‘사고 싶은’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버려진 신문지를 활용한 가방, 염색과 금속을 최소화한 ‘베지터블 레더(Vegetable leatherㆍ식물성 염료로 가공한 가죽)제품 등은 공정과정을 모르는 소비자들도 충분히 선택할 만큼 ‘멋지다’.


자매회사인 ‘리틀파머스’ 홍대점에는 옷, 패션 소품, 문구 용품들뿐만 아니라 인디가수들의 음반도 판매한다. 거대자본이 유입된 유통과정을 거부한다는 개념 자체가 ‘친환경’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지난 해 170억원 매출을 올리며 최근 5년간 급성장한 국내 대표 친환경 의류브랜드 ‘이새’도 사람과 자연에 좋은 옷을 넘어서, ‘보기에도 좋은’ 옷을 디자인하는 데 전력을 쏟고 있다. 특히, 한국적인 디자인에 관심을 기울여온 이 브랜드는 최근 한복 소매 모양을 의미하는 ‘저고리 슬리브’를 특허출원 냈다.
정경아 이새 대표는 “일본의 ‘기모노 슬리브’가 패션용어로 정식 등록된 것에 적잖은 영향을 받았다”고 전했다.

천연염색으로 유명한 이새는 지난달 26일부터 29일까지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프리뷰 인 차이나 (Preview in China)’에서 진흙으로 염색한 소재를 선보이기도 했다. 실크를 식물 뿌리로 붉게 물들인 후, 다시 진흙을 덧바르고 말리는 과정을 6개월간 반복해서 완성된다. ‘슬로 패션’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또 남은 잔여물은 불쏘시개로 사용되기 때문에 염색 공정 현장에 아무런 쓰레기도 남지 않는다. 


▶‘리디자인(Redesign)’ㆍ‘워터리스(Waterless)’…‘친환경 패션’의 진화= 친환경 패션브랜드들이 대중적인 디자인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동안 기존 패션 업체들도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착한 소비’ 혹은 ‘윤리적 소비’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지자, 친환경 콘셉트를 통한 제품 출시로 브랜드 이미지도 높이고 환경보호에도 기여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단순한 재사용이나 재활용을 벗어나 재미와 예술성을 고려한 독특한 발상이 돋보인다. 코오롱FnC는 지난달부터 출시된 지 3년 이상된 옷들을 전혀 다른 옷으로 재탄생시키는 ‘래코드(RE; CODE)’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신제품으로 판매되던 의류들은 이월상품이 되면 상설할인 매장 등으로 이동하고, 여기서도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3년차 재고들을 보통 소각된다. ‘래코드’ 프로젝트는 이렇게 버려지는 ‘멀쩡한 옷’들을 분해한 후, 독립 디자이너들을 통해 새로운 디자인으로 변신시킨다. 남성 상의가 여성용 베스트가 되고, 점퍼는 가방이 된다. 심지어 텐트가 옷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코오롱FnC의 한 관계자는 “사실 기업 입장에선 돈이 안 되는 일이지만,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은 만큼 계속 추진할 예정이다”고 전했다.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는 청바지 제작과정의 친환경 활동을 제품명에 반영했는데, ‘워터리스 진(Waterless Jean)’이 대표적이다.

리바이스 측에 따르면 청바지 한 벌을 만들 때 보통 60ℓ의 물이 사용되는데, 최근 개발한 ‘워터리스 공법’은 물을 28~96%까지 아낄 수 있다. 2010년 ‘워터리스 진’이 미국에서 출시 된 후 현재까지 1억7200만ℓ 이상의 물이 절약됐다. 종이컵 143만3333잔에 해당하는 수치로 한 해 동안 약 15만7000명의 사람이 충분히 마실 수 있는 물의 양이다.

리바이스코리아 마케팅팀의 한 관계자는 “올봄에 국내 수입된 제품 중 50%가량이 ‘워티리스’ 제품이다”며 “물 부족이라는 심각한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pdm@heraldcorp.com 

[사진제공=슬로우바이쌈지ㆍ이새ㆍ리바이스ㆍ몽삭ㆍ코오롱F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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