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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반짝이기 위해 혼자 서 있는 거야”
제5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 김이윤의 ‘두려움에 인사하는 법’
암으로 시한부 인생 싱글맘
딸의 얼굴조차 모르는 아빠
고교생 외동딸의 홀로서기
이별의 상투적 접근 피하며
담담한 필치로 건네는 위로

청소년소설이 큰 시장을 형성한 건 제1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김려령의 ‘완득이’이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60만부가 팔린 ‘완득이’는 청소년층뿐만 아니라 전 연령대에 고루 읽히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2회 수상작인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 역시 3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올해 제5회 수상작인 김이윤(48) 씨의 ‘두려움에 인사하는 법’ 역시 이전 수상작들의 미덕을 품고 있다. 청소년 성장기를 배경으로 이해와 교감,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을 뛰어넘는 건강한 자의식과 유머가 있다.

소설은 여여의 활달한 일기로 시작된다. 고등학교 2학년인 주인공 여여는 페미니스트 사진작가인 엄마와 단둘이 산다. 어느 날 엄마가 말기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둘의 일상에 변화가 온다. 시골집에서 살고 싶다는 엄마는 파주로 거처를 옮기고 여여는 혼자생활하는 법을 익혀나간다. 엄마가 곧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아빠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는 본능을 부추긴다. 

여여는 정화이모를 찾아가 아빠가 A그룹 서동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단짝친구 세미에게 털어놓고 둘은 마침 청소년 경제 캠프에서 강연하는 서 이사의 프로그램을 신청한다. 

학교에서 ‘멘토 만들기’라는 과제를 내주자 여여는 서 이사를 멘토로 삼는다. 그리고 엄마와 마지막 여행. 엄마가 세상을 떠나자 여여는 악몽에 시달리는 등 힘든 시간을 보내며 멘토인 서 이사로부터 위로를 받지만 자신이 딸이라는 사실을 끝내 털어놓지 않는다.

주인공 여여의 캐릭터는 인상적이다. 웬만한 어른보다 낫다.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은 뒤 여여는 일기장에서 다짐한다. “엄마가 아프기 전과 똑같이 행동할 거야. 내가 먼저 엄마가 아프지 않다고 믿어야 안 아플 거야.” 

제5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이윤 씨. 김 씨는 “34살 때 엄마가 돌아가셨다. 마음이 자라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억울하단 느낌이 남아있었는데 이 소설을 쓰면서 치유된 느낌이다”고 말했다.

여여 역시 불만이 없는 건 아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일일이 챙겨주고 뒷바라지해주지 않고 날라리처럼 꾸미고 사진 찍으러 돌아다니는 엄마한테 퉁퉁거리고 때로 속을 긁지만 자신의 상황을 있는그대로 받아들인다. 주위의 시선에 주눅들지도 않는다. 깊은 슬픔 속에서도 “나는 반짝이기 위해 혼자 서 있는 거야”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드럼도 배우고 데이트도 하고 혼자 설날도 준비하면서 일상을 산다. 엄마 역시 여여에게 끈끈한 모성애를 보여주지 않는다. 기존의 엄마상과 다르다. “엄마는 평범하고 우유부단하잖아. 엄마 자격도 없는 사람이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엄마가 되어서 미안하지만 할 수 없지 뭐. 어떻게 해. 덕분에 여여는 꼬마 철학자가 되었잖아”는 식이다.

소설은 여여가 외부와 갈등하는 대신 여여의 내부에 집중한다. 누구나 겪게 되는 죽음과 정체성의 문제, 일상적이면서 흔히 비일상으로 치부하는 주제를 과잉을 경계하며 적당한 무게와 보폭으로 우리 눈앞에 부려놓는다. 거기에 소란스런 갈등이나 극적 장치는 오히려 불필요해 보인다. 아빠의 부재 혹은 미미한 존재감과 새로운 모녀상 속에 우리 시대가 투영된다.

김이윤 씨는 MBC 라디오 ‘여성시대’ 등 라디오 작가로 20년 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아이들을 키우면서 생일 등 기념할 만한 때 소설을 써 아이에게 선물해왔다고 한다. 그렇게 쓴 단편, 장편이 합쳐 20여편이 된다.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은 그중 세상에 내놓은 첫 소설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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