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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행동경제학의 문을 연 경제학자의 행복의 공식
지난 10년은 그야말로 행동경제학의 시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류경제학이 경제의 주체로 완전하고 합리적인 개인을 상정한 반면,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생각과 행동이 비합리적이고 편향과 오류 투성이라는 걸 보여주며 우리가 믿고 있던 것들의 허상을 깨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런 행동경제학의 이론적 토대가 된 선택이론을 내놓은 이가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이다. 그러나 일대 행동경제학 붐 속에서 정작 카너먼의 저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번에 나온 카너먼의 첫 대중교양서, ‘생각에 관한 생각’(김영사)은 대가다운 면모가 보인다. 카너먼은 행동경제학이 주목한 인간의 행동과 생각이 어떻게 따로, 또 같이 움직이며 세계를 형성하는지 마치 인형극 연출자처럼 능숙하게 조종하며 보여준다.

카너먼은 인간의 모든 행동과 생활, 즉 인생의 근원인 생각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즉, 직관을 뜻하는 빠르게 생각하기와 이성을 뜻하는 느리게 생각하기다.

빠르게 생각하기에는 직관적인 사고의 변형들, 달려드는 자동차를 피하는 순발력이나 러시아의 수도 이름을 떠올리는 것처럼 완전히 자동적인 개념과 기억의 정신활동들이 포함된다. 



반면 242×751처럼 머릿속에 즉시 답이 떠오르지 않는 문제나 전문적인 식견을 요하는 문제들에 대해 사고하는 방식은 느리게 생각하기에 해당한다.

카너먼은 빠르게 생각하는 자아를 시스템 1, 느리게 생각하는 자아를 시스템 2로 명명하고 이 둘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세밀하면서 폭넓게 살펴나간다. 또 인간이 통계적으로 사고하기 어려운 이유, 인간의 과도한 자신감과 무지, 우연과 운의 역할, 선택의 비논리성, 경험자아와 기억자아의 차이 등을 찬찬히 설명해 나간다.

결론적으로, 시스템 1은 자동으로 작동하고, 시스템 2는 편안한 보통상태에서는 별 노력을 요하지 않고 역량의 일부만 가동한다. 시스템 1은 시스템 2를 위해서 인상, 직관, 의도, 느낌 등을 지속적으로 제안한다. 시스템 2의 승인을 받으면 인상과 직관은 믿음으로 바뀌고 충동은 자발적 행위로 변한다. 이런 상호작용은 매우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그러나 시스템 1이 어려움에 빠지면 시스템 2에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구체적이고 확실한 처리 지원을 요청한다. 시스템 1이 답하지 못하는 질문에는 시스템 2가 가동된다. 또한 시스템 1이 유지하는 세상의 모델을 위배하는 특정 사건이 감지되면 시스템 2가 활성화된다. 놀랄 때마다 의식적으로 집중력이 극대화하는 경험은 바로 이런 상호작용의 결과다.

시스템 2는 우리의 행동을 지속적으로 감시한다. 분노했을 때도 공손하게 행동하고 야간 운전 시 긴장하게 만드는 통제 역할이다. 오류가 발생하려는 순간을 감지할 경우 시스템 2의 감시활동은 더욱 강화한다. 무심코 불쾌한 발언을 할 뻔했다가 자제력을 회복하는 경우가 그렇다.

카너먼이 시스템의 작용에서 특히 주목하는 것은 시스템 1이 특정 상황에서 일으키는 오류와 편향이다.

일례로 한 가지 일에 자제력을 발휘한 뒤라면, 다음 도전이 닥쳤을 때 자제력을 발휘하려 하지 않거나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줄어든다. 이런 현상을 자아고갈이라 부른다. 그 일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었는데도 이미 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럼 이런 오류와 편향, 인지적 착각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카너먼의 결론은 좀 의외다. 쉽게 교육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 전이나 연구 후나 직관적 사고의 과신, 극단적 예측, 계획 오류 같은 데 여전히 쉽게 빠진다고 고백한다. 다만, 그저 오류 발생 가능성이 높은 상황을 인지할 수 있을 뿐이라는 얘기다.

여기서 카너먼은 탈러와 선스타인의 ‘넛지’에 주목한다. 자유를 포기하지 않고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방식, 가령 디폴트 옵션으로 퇴직연금을 적립제도에 가입하게 만드는 식의 강요하거나 그릇된 방향지시나 책략을 쓰지 않고도 효과를 얻는 것이다.

이 책에는 그동안 심리학과 행동경제학에서 다뤄져온 연구 성과들이 망라됐다.
‘몰입’으로 잘 알려진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의사결정 전문가인 세인 프레드릭, 마시멜로 실험으로 심리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실험을 실시한 월터 미셸 스탠퍼드대 교수, 맥베스 부인 효과, 점화 효과, 닻내림 효과, 프레이밍 등 그동안 심리학에서 다뤄온 주제들을 새롭게 만날 수 있다.

카너먼은 궁극적으로 우리 안에 있는 두 자아를 잘 이해함으로써 치우침이 없는 자아를 형성하고 행복지수를 높이고 인생이 풍요로워지는 걸 지향한다. 두 자아의 불편한 동거와 긴 여정의 대단원이 훈훈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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