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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년후 ‘오늘’이 달라졌다…서태지와 아이들이 있었기에…
교육·통일·검열·세대충돌 등 X세대 감성 용광로…K-팝 이전의 K-팝에 한류DNA 심어…그들의 현재는 또다른 세대의 초상
미국에 1년째 체류 중인 서태지는 본지의 인터뷰 요청에 21일 서태지컴퍼니를 통해 “아직 때가 아니다”는 답신을 보내왔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데뷔 20주년을 기념한 인터뷰는 반드시 할 것”이라는 약속도 덧붙였다. 20년 전 무슨 일이 있었을까.

1992년 3월 23일 20세의 미소년 서태지와 압구정 ‘날라리’ 이미지의 22세 양현석, 불량기 가득한 문제아 분위기의 25세 이주노로 구성된 댄스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이 1집 앨범 ‘난 알아요’를 세상에 내놨다.

그해 3월 29일 KBS 쇼프로그램 ‘젊음의 행진’에서 이들은 일명 ‘회오리춤’을 동반한 타이틀곡을 처음 공연했다. ‘데뷔 무대’로 오해된 MBC ‘특종! TV연예’ 출연은 4월 11일이었다. 그리고 서태지와 아이들은 20년 후 ‘오늘’의 한국 대중음악과 대중문화, 세대지형을 온통 바꿔놓았다. ▶관련기사 27면

돌이켜보면 강렬한 헤비메탈 사운드에 얹은 랩과 힙합은 나른한 사랑 타령과 기계적 댄스음악에 날린 통렬한 KO펀치였고, 허공을 향해 주먹을 내뻗은 회오리춤은 기성세대에 날리는 어퍼컷이었으며, 상표를 노출시켜 뒤집은 원색의 힙합 패션은 모범생을 원하는 권위와 미디어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들이 보낸 위험 신호를 먼저 알아챈 것은 보수적 시선이었다. 그해 10월 국회 문광위의 대정부 질문에선 이수정 문화부 장관을 앞에 세우고 “요즘 청소년 비행이 문제되고 있는데, 서태지와 아이들 같은 가수의 공연을 막을 생각이 없느냐”는 국회의원의 지적이 나왔다. 



독자 레이블 설립으로 이어진 ‘음반사ㆍ매니저와의 권리 소송’(1집), ‘불량두발, 복장 가수 공중파 출연금지’(2집), ‘사탄설’(3집), ‘반사회적 가사 방송금지’ (4집), 공윤 사전심의 폐지로 이어진 ‘시대유감 논란’(5집)까지 이어진 서태지와 아이들과 기성사회 간 길고 긴 싸움의 서막이었다.

1995년 1월, 타임 지는 “정치, 사회 문제를 다룬 노래는 대중의 인기를 끌 수 없다는 통념을 깨고 무거운 주제의 음악을 성공시켰다”며 서태지와 아이들을 한국음악의 ‘비트’를 바꾼 가수들로 조명했고 해외진출의 야심을 숨기지 않았던 서태지와 아이들은 일본 음악페스티벌 참가 및 앨범 발매를 이어갔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한국적 사운드에 서구의 장르를 이종교배해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며 K-POP 이전의 K-POP에 한류의 DNA를 심었다.

서태지와 아이들로 하여 권력의 가위질에 장발과 미니스커트뿐만 아니라 필름과 악보를 맡기곤 너덜너덜해진 머리와 치마, 영화와 음반을 잡고 울분을 삼켜야 했던 고분고분한 청년세대는 종언을 고했다. 교육( ‘교실이데아’), 통일( ‘발해를 꿈꾸며’), 검열( ‘시대유감’), 세대충돌( ‘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등 한국 청년문화에 비판과 저항, 도전, 연대의 ‘언어’를 각인시킨 것도 이들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20년간은 곧 ‘X세대’의 성장기와 성인기였으며 그들이 창조한 음악과 문화는 386과 결별하고 사회진보의 집단적 이상과 개인적 욕망의 행복한 합일을 추구한 X세대의 거대한 감성적, 이념적 용광로였다. X세대는 본지가 규정한 대로 오늘의 ‘F세대(Forgotten generationㆍ잊혀진 세대)’가 됐고, ‘유일무이한 문화대통령 서태지’ 대신 ‘미국에서 음반 작업을 하는 한 명의 뛰어난 뮤지션’과 ‘결혼 및 이혼 스캔들에 쌓였던 중년의 정현철’이 남았다. ‘아이들’은 가고 한류의 최전선에 선 유력 제작자(양현석)와 ‘부부토크쇼’에 출연하는 사뭇 평범해진 유부남 연예인(이주노)이 있다. 그것 역시 서태지와 아이들이 상징하고 함께 살아왔던 한 세대, 한 시대의 초상이다.

1996년 1월,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를 했고 마지막으로 남긴 앨범엔 ‘&’가 새겨진 재킷 속 ‘굿바이’라는 노래가 담겼다. 그들 화법대로 서태지와 아이들과 X세대가 일으킨 문화 혁명은 다시 차세대로 넘어간 ‘미완’이자 ‘현재진행형’으로 남았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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