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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비’를 사랑하는 배우 박희순, 고종을 말하다
조선왕조가 수명이 거의 다해 갈 무렵 왕이 된 고종은 구국의 황제일까? 아니면 망국의 황제일까? 고종에 대한 평가는 아직까지 망국의 황제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영화 ‘의뢰인’ ‘혈투’ ‘맨발의 꿈’ 등에 출연하며 대중에게 배우 박희순이라는 이름 석 자를 각인시켜 준 그는 ‘가비’에서 기존의 고종의 이미지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예민하고 경계적으로 보이지만, 러시아와 일본의 틈 사이에서 조선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았던 고종의 모습을 연기했다.

“평소에는 영화 관계자들한테 어떤 평을 받을까 더 궁금했었는데, ‘가비’는 관객들의 반응에 더 신경이 쓰여요. 팩션으로 고종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상 인물들이 펼치는 내용을 다루는 것은 처음인 것 같아요. 어떤 반응일지 정말 궁금해요. 영화 끝나기 전에 화장실에서 먼저 기다려야 할까봐요. 하하”

꽃샘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봄날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말끔한 차림의 박희순과의 만남을 가졌다.


# 고종의 새로운 해석

작품 속 고종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붉은색 옷을 입고 있지 않다. 박희순은 고종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많은 공부를 했다.

“인터넷이나 문헌을 찾아봤더니 그때 당시에 고종이 담배를 즐겨 태우고 안경도 착용했다고 나오더군요. 어느 신에서 담배를 태워야 할지, 어떻게 잡아야 할지 등등 감독님과 의논을 많이 했었어요. 예전에는 담배를 곰방대처럼 잡지 않았을까요? 지금처럼 두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워서 태운다면 안 어울릴 것 같아요.”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 이후 일본군의 무자비한 공격에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는 1896년 2월 11일부터 약 1년간 조선의 왕궁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겨 거처하게 된다. 박희순은 유약한 군주의 모습이 아닌, 대한제국을 꿈꾸며 마지막 승부수를 준비했던 ‘외유내강’의 모습을 지닌 고종을 연기했다.

“작품 속 고종은 움직임도 거의 없고 오로지 커피 마시는 장면밖에 없기 때문에 말과 감정 표현으로만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하는 캐릭터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고종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더 많은 공부가 필요했어요. 또 그를 대변하는 마음이 많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민족주의로 해석해서 미화시킬 생각은 없었어요. 실제 상황을 보여 줄 수는 없지만, 이 왜곡된 이미지를 대변해주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죠. 애착이 많이 가는 캐릭터에요.”

“고종의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운율을 어떻게 살리며 운용할지 고민했죠. 대사 자체가 고어도 아니고 현대어도 아닌 ‘~다’로 끝나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아요. 하하”


# 나를 힘들게 한 고종

대화를 나누는 내내 이 배우에게 느껴지는 고종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게 다가왔다. 촬영 중 그를 가장 힘들게 했던 장면은 무엇일까.

“공사관에서 일리치(주진모 분)하고 만나는 장면이 가장 힘들었어요. 대사를 하는데 명성왕후도 생각나고, 따냐(김소연 분)도 생각나고, 백성들도 생각나고...정말 만감이 교차했어요. 대사 자체는 감정과잉이 일지 않았는데, 마음 속에서 저절로 그러한 감정이 일어났어요.”

“오히려 대사 자체는 그렇게 표현이 안됐었는데 눈물이 계속 나왔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면 더욱 좋을 것 같은 장면이었거든요. 다섯 차례나 다시 찍었는데도 마찬가지길래 어쩔 수 없이 오케이를 하고 말았죠. 나중에 어떻게 됐냐고요? 영화로 확인해 주시길 바랍니다. 하하”

작품을 통해 인간 고종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그가 되고자 했던 배우 박희순의 마음이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 박희순과 ‘가비’

조선 최초 커피 애호가로 알려진 고종처럼 박희순도 커피를 즐겨 마신다.

“커피 기계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즐겨 마셔요. 콘삭 커피, 그러니까 일명 다람쥐 똥 커피라고 하나요? 선물 받아서 접하게 됐는데 굉장히 좋더군요. 처음에는 작은 에스프레소 잔을 들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보고 ‘저 쓴걸 왜 마셔?’라고 할 정도로 커피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어요. 하지만 아는 지인의 추천으로 정말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접하고 난 뒤 커피 마니아가 됐죠.”

커피를 둘러싼 삶과 죽음, 인생에 관한 이야기 ‘가비’는 사랑과 눈물이 있고, 감동이 있다.

“요즘에는 팩션 사극이 유행이잖아요. 굉장히 트렌디하고 가벼움이 있어서 쉽게 접근할 수 있다면, 이 영화는 역사의 왜곡되거나 폄하된 부분을 재발견 하는 의미가 더해지면서 그 시대의 아프고 사랑스러웠던 두 커플의 이야기까지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감정이 옮겨갔을 때에 대한 충돌에서 오는 시소싸움을 그린 영화 ‘가비’. 이 영화의 장점은 인물들의 심리 묘사에 대한 충돌을 세세하고 차분하게 담았다는 것이다.

끝으로 박희순은 ‘가비’에 이어 180도 다른 모습을 선보이게 될 ‘간기남’에 대한 짧은 소감도 남겼다.

“‘가비’의 고종은 좋게 봐주셨으면 하고, ‘간기남’의 강선우는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012년 박희순의 새로운 고종 해석 영화 ‘가비’. 많은 팬들이 그가 그리게 될 고종의 모습을 기다리고 있다.

조정원 이슈팀기자 / 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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