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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진화하는 재벌정책
재벌 정책 변화에 따라

업계에 미치는 영향 지대

면밀한 시장구조 분석과

충분한 공감대 형성 필요


지난해 초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워싱턴포스트(WP) 찰스 피시먼 기자의 ‘월마트 이펙트’는 우리 정책담당자들의 문제의식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월마트 이펙트’에서 지적한 많은 문제점이 우리나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사업자와 하청업자, 대형유통업체와 중소납품업체 간 거래에서 나타나는 문제들과 매우 유사한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월마트는 많은 판매품목에서 전국 1위의 판매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장난감 구매량의 21%, 건강용품과 미용용품 시장의 23%, 가정용품 구매량의 27%가 월마트에서 판매하는 상품이다. 월마트가 시장을 움직이고 있다.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생각은 망상에 불과하다. 월마트의 공급업체들은 월마트와 거래하지 않으면 큰 힘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월마트와 거래하기 시작하면 월마트의 요구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이처럼 월마트는 어느 지역에서건 고객들에게 최저가로 상품을 공급하고, 경쟁을 부추겨 기존의 상품가격을 떨어뜨린다. 긍정적 효과다. 반면 지역 내 재래 소매상의 생존을 위협하고, 납품가격 인하로 제품 공급업체의 경영을 어렵게 하며, 노동자들의 낮은 임금과 환경 악화 등 부정적인 효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는 그동안 미국의 경쟁당국이 그렇게 관심 있게 다뤄왔던 문제들이 아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상황하에서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며 월마트가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대형유통업체의 불공정한 거래행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적극 개입하는 편이다. 게다가 지난해 말 국회에서 ‘대규모유통업법’이 제정됨에 따라 앞으로 공정위 조사에 더욱 탄력이 붙게 됐다. 하도급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별도 규제수단을 갖고 대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을 법적 규제로 시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사업기회 자체가 사라질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아무리 위법행위가 있더라도 신고조차 하지 못한다.

올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재벌 문제가 또다시 이슈화하고 있다. 사회 양극화 문제와 맞물려 선거판의 최대 현안이 될 전망이다. 기업 생태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정책과 제도들이 정치적 이슈화로 충분한 검토 없이 도입될까 우려되기도 한다.

재벌정책처럼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도 드물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그동안 두 번이나 생겼다 없어졌다 했는데 또다시 재도입 주장이 나오고 있다. 왜 그런가. 힘의 구조적 불균형에서 오는 문제를 행태적 규제로만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인력, 기술, 기업환경 등 중소기업의 경영 인프라 개선을 과감히 지원해 나가는 길밖에 없다. 그리고 대규모 기업집단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해 나가야 하는데, 이는 시장 감시와 자율 규제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문제가 심각할 경우 예외적으로 자산매각, 계열분리, 회사분할 등 구조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두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먼저 시장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시장집중도나 일반집중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는 비교자료부터 만들어야 한다.

시장 상황에 따라 재벌 문제도 진화하고 있다. 한때 금융기관 여신 집중, 비업무용 부동산 문제가 이슈화하기도 했고 선단식 경영과 문어발식 확장, 계열사 간 부당지원행위, 재벌의 소유·지배구조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일감 몰아주기, 영세사업자 시장 잠식, 납품업자의 단가 인하 등 월마트 이펙트와 유사한 이슈들이 새로이 부상하고 있다. 시장 상황에 맞는 새로운 정책 개발을 위해 종합적인 시장분석과 토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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