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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영석PD, 왜 청주를 못갔을까? <인터뷰>
국민예능 ‘1박2일’의 1막이 마감됐다. 4년6개월간 국민을 웃고 울린 리얼 여행 버라이어티가 지난 26일 시청자와 안녕을 고했다. 강호동 은지원 이승기 이수근 엄태웅 김종민 김C MC몽 등 ‘1박2일’ 멤버들은 마치 형제처럼 격의없이 지내며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하곤 했다. 마지막 방송을 마음으로 울면서 봤다는 맏형 강호동이 함께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지만 동생들은 의연하게 시청자와 이별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만나길 기약했다.

‘1박2일’이 국민예능급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형제처럼 잘 어울리는 멤버들의 활약 때문이지만 나영석 PD의 공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나 PD는 ‘1박2일’을 초기부터 지휘하며 프로그램의 색깔을 입혔던 인물이다. ‘1박2일’이 다소 촌스럽고, 보수적이면서 가족들이 함께 시청하기에 좋은 예능이 된 것은 나영석 PD 덕분이다.

나영석 PD는 멤버들에게 “안됩니다” “땡” “실패”라고 잘라말하는 버릇이 있다. 그가 인정사정을 봐주지 않고 독하게 굴어도, 게임에서 패하면 가차없이 찬물에 입수시켜도 시청자들은 다 안다. 나 PD가 인간 냄새가 물씬 나는 착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는 제작진과 멤버들이 팽팽한 긴장을 유지해도 기분 좋은 그림이 그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영석 PD는 한마디로 ‘촌놈’ 스타일이다. 스스로 세련된 코드보다는 투박하고 전통적인 아날로그 코드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런 그의 성향이 지난 5년간의 ‘1박2일’에 오롯이 묻어있다. 마지막 여행에서도 40년 된 정읍의 해장국 집을 가고, 극장도 그 흔한 복합상영관이 아니라 필름을 돌리는 옛날 영화관을 찾았다.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추억, 향수를 느끼게 해준다.

나는 2008년 2월 1일 기자로는 최초로 ‘1박2일’을 동행취재하는 행운을 얻었다. 전남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 상사마을의 한 고택을 동행 취재하며 ‘1박2일’ 여행지는 널리 알려진 명소가 아님을 알았다. 강호동 이승기 은지원 MC몽 이수근 김C(당시 멤버)가 돌아다니는 곳은 전국 방방곡곡의 평범한 시골장터나 농촌마을이었다. 보통을 주문해도 곱빼기 수준으로 나오는 짜장면, 그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인정 어린 곳이었다. 최근 나영석 PD와 다시 만나 ‘1박2일’에 대해 많은 걸 물어봤다.


-첫방송인 충북 영동편(2007년 8월 5일)이 기억나는가.

“하나하나 다 난다. 그다음 편은 기억이 잘 안나지만. 첫방이 제일 중요했다. 원래는 작은 해안가, 횟집이 하나 정도 있고, 뒤에 송림이 있는 곳을 가려고 했다. 동해안 부근에서 군대 생활을 한 최재영 작가가 며칠 동안 동해안을 뒤졌는데, 그런 곳은 없다고 했다. 해변은 모두 횟집으로 가득차 있다고 했다.

그래서 농촌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시골인데 고즈넉하고, 뒤에 큰 나무가 있고, 관광지가 아니었다. 첫날은 라면을 숨어서 먹다 들키는 장면을 담았지만 이튿날은 뭔가가 잡혔다. 한 팀은 낚시하고 한 팀은 다른 걸 했는데, 지상렬이 낚시가 안 되니까 근처의 쏘가리집에 가서 카드로 먹으면 되지 하고 나갔는데, 이 현장을 강호동에게 잡혔다. 강호동이 동료를 배신하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했다. 여기서 뭔가 되는 줄 알았다. 이것이 리얼이고 야생이구나. 그 전에는 리얼 버라이어티를 해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치고 나오는 건 예상하지 못했다. 이 점에서 강호동의 공헌도는 매우 높다. 원칙을 정하고 그걸 위배할 경우 제재를 가하면 되겠다 싶었다. 처음에는 여행 느낌이 아니었다.”

나영석 PD는 연출자와 출연자가 지향하는 바가 비슷하면 좋은데, 강호동과 자신은 톤이 맞았다고 했다. 



-그동안 100곳이 넘는 여행지를 다녔다. ‘1박2일’의 지향점은?

“어디 가서 뭘 먹고는 여행 정보의 기본이다. 이것저것을 보여주지만 여행은 설렘, 어떤 일이 일어날까, 누구를 만날까다. 보편적인 감정이요, 향수적 감성이다. ‘복불복’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점이 여행과 맞아떨어진 면이 있어 시도했다. 여행지보다는 사람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단순히 여행을 하는 모습이 아니라, 여행을 하면서 예기치 못한 감성을 느껴보자는 것이었다. 백두산 천지에 가서 윤동주의 흔적을 찾고, 용정의 동포를 보면서 콘서트를 열었다. 사람을 만나고, 동포를 위해 무엇을 할까를 생각하다 내린 결론이었다. 자연스런 감정의 흐름이다. 이게 여행의 포인트였다.”


-특히 섬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섬은 일반인들이 큰 맘을 먹지 않으면 가기 힘들다. 그래서 대리만족이 큰 편이다. 자연이 잘 보존된 가거도, 거북손을 따먹었던 만재도, 여서도, 무인도 등 기억나는 섬들이 많다.”


-단순한 게임이 대단한 힘을 발휘하던데?

“원래 버라이어티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족구 탁구 배드민턴 낚시 등산이다. 초기 자유여행으로 이외수 선생님 댁에 갔을 때 탁구대가 있어 그냥 해본 것이다. 이승기와 엠씨몽이 저질탁구를 선보였고, 그래서 이들이 병풍 뒤에서 맞고 오고, 이런 식으로 풀리니까 족구도 한 번 해보자고 한 거다. 거기다 작은 내기를 걸면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윤기가 돌았다. 같은 게임도 거는 상황이 다르니까 지루하지 않았다. 병마개 멀리 보내기, 낙엽 멀리 던지기 등도 즉흥적으로 했던 게임이다.” 



-‘1박2일’은 팬과의 소통력이 좋았다. 루머나 오해가 생기면 PD가 즉각 사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직구장 논란, 엠씨몽이 담배피우는 장면 등은 재빠른 사과가 논란을 잠재웠다.

“초기 밀양편할 때 이수근 등 멤버들이 아궁이에 참깨를 떨고난 나무와 빨래판을 집어넣어 네티즌에게 민폐 끼치려고 시골에 갔냐는 등 욕을 많이 먹었다. 그 집의 할머니는 나의 외할머니다. 태우기 위해 일부러 내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을 겪으면서 느낀 바가 있었다. 내 기준이 아닌 시청자의 기준과 관점을 잘 살펴야겠다. 비난에 대해서는 억울한 점도 있었지만 자세히 설명하지 못한 내 잘못도 있다. 그렇게 이해하면 바로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이다.”


-멤버들에 대한 이야기도 좀 해달라.

“이수근은 소심해서 나서지 않는 성격이다. 주로 남을 받쳐주는 스타일이지만 (시즌2에서) 나서야 하면 한꺼풀 벗고 도약할 기회를 맞이할 것 같다.

엄태웅은 높게 평가한다. 그는 진중한 이미지의 연기자다. 리얼 예능을 하고 연기를 한 이승기와는 다르다.‘1박2일’을 하다보면 약점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우리야 깔깔 웃고 말지만 본인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은지원은 리얼 예능의 보석 같은 존재다. 사실 은지원은 잠을 잔다, 불성실하다고 욕을 많이 먹기도 했다. 하지만 눈치 안 보고 행동하는, 때로는 버릇 없기도 한 그런 친구 한 명 없다면 어떻게 리얼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은지원은 관계의 긴장이나 갈등을 야기시켜 이야기를 풀려나가게 한다. 천재적인 두뇌플레이는 놀라울 정도다. 미션만 시작되면 기막힌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건 시청자분들이 보신 그대로다. 은지원은 상황 속에서 힘을 받는 캐릭터다.

오랜 기간 부진하다 활기가 살아난 김종민은 마지막 정읍 극장이벤트의 하이라이트였다. 김종민은 한번도 속에 있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껍질이 두꺼운 친구다. 그동안 드러내지 않았지만 얼마나 고민이 많았겠는가. 괴로워도 이야기 안하는 김종민이 카메라가 도는데도 속에 있는 말을 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걸 보니 이제야 가벼워졌구나, 자기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기 시작했구나 하는 걸 느꼈다. 또 막내 이승기는 시청자들이 보신 대로 하는 짓이 귀여워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나 PD는 ‘1박2일’은 멤버들이 잘못해도 오래 기다려준다고 말하자 “가난한 자식도 데리고 가야 한다. 일단 다른 친구들로 그 여백을 메울 수 있다. 잘 안될 때는 아무것도 안해도 망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주어야 하고, 이렇게 버텨주는 동안 다른 멤버들이 해낼 수 있다”고 협동정신의 의미를 강조했다. 나 PD는 “통영에서 만난 어머님께서 잘난 자식은 국가의 자식, 돈 많이 버는 자식은 사돈의 자식, 빚 있는 자식은 내 자식이라고 말씀하셨다. 나이가 들면 철학자가 되는 것 같다”면서 “그래서 지방의 동네에 가면 할아버지한테 이야기를 던져본다. 인생이 묻어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강호동이 나이 든 분께 말을 거는 것도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다”고 전했다.



-3월 첫주부터 방송될 시즌2의 최재형 PD가 만드는 ‘1박2일’은 어떨까?

“(망설이다가) 최 선배도 나처럼 촌스런 스타일일 것 같다. 다큐보다는 예능적 측면에서 접근할 것 같다.”


-‘1박2일’을 끝내고 새롭게 하고 싶은 프로그램은?

“많았는데 요즘은 없어졌다. 좀 더 쉬면서 생각해보겠다. ‘1박2일’ 코너 몇 개를 분화하는 스핀오프도 가능할 것 같다. 유홍준 교수와 여행하는 것을 프로그램으로 만들 수 있겠다. ‘1박2일’에서 파생된 지역 음식도 스핀오프로 만들어볼 수 있다.

명사특집도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원래 명사특집의 기획의도는 원빈(정선), 고두심 씨(제주) 같은 사람을 모시는 거였다. 문근영도 광주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해 초청하고 싶었다.

이런 사람들이 1박 멤버와 고향을 가 여기가 내가 놀던 곳인데, 흔적이 묻어있는 초등학교와 당시 친구도 만나고. 여기서 게스트의 마음을 열고 감화를 받을 수도 있고, 원래는 이랬는데 박찬호가 섭외돼 공주로 가서 추억을 더듬어 본 것이다. 일반 대중에게 감화를 줄 수 있는 분을 찾으려 했다.”

나영석 PD는 ‘1박2일’팀을 이끌고 청주를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자신의 고향이라서 못 갔다. 공영방송 PD로서 지켜야 될 입장이었다. ‘1박2일’을 끝낸 나영석 PD는 1~2달 휴식을 취하고 외국에도 단기연수를 다녀올 예정이다. 소파에 누워 DVD를 보는 것과 만화방에 가서 만화보는 것이 그가 추구하는 최고의 휴식이자 호사다.

<서병기 선임기자> wp@heraldcorp.com 

<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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