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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신’에 빠져들고 싶지만 안되는 이유들!
SBS가 ‘뿌리깊은 나무’로 조선시대의 한글창제라는 카드를 꺼내들자 MBC는 ‘무신’을 통해 고려시대의 팔만대장경 조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대장경 천년 특별기획 ‘무신’이 방송되는 동안 팔만대장경 조성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몽고는 50부작 중 6회가 돼서야 짧은 분량으로 등장했고 6회까지 분량의 대부분은 김준이 격구대회에 출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김준이 격구왕(?)으로 등극하는 과정이 그려졌다. 그리고 격구대회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김준(김주혁 분)은 승려들의 반란에 연루돼 무신정권에 끌려가 갖은 고초를 당하고 아버지가 노비였다는 이유로 ‘무상스님’에서 ‘노예 김준’으로 전락했다. 김준은 노예의 신분으로 공역장에 끌려가지만 때마침 격구대회에 출전하게 되면서 공역장에서의 비참한 죽음은 피하게 되고 월아(홍아름 분)를 구해낼 수 있는 희망도 찾게 됐다.

‘무신’에서의 격구대회는 장시라는 도구를 통해 공을 상대편 구문에 통과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공격하고 제압해야 하는 경기다.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서 장시로 상대의 머리를 가격하기도 하는데, 심지어 지난 ‘무신’ 4회에서는 장시로 사람의 목을 베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고려시대에 격구대회가 성행했던 것은 사실이나 우리 민족의 기예와 접목했던 놀이가 노예들이 살기 위해 출전하는 살육의 대회로 전락된 것과 외국의 영화와 드라마가 계속적으로 오버랩되는 현상들은 김진민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까지 퇴색하게 만들었다.

물론 김진민 감독이 ‘무신’의 제작발표회를 통해 외국의 작품을 참고했다고 밝힌 바가 있으나 둥근 막대로 사람의 목을 베고 동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김준이 창살 안에서 지켜봐야 하는 장면들은 그 수준을 넘어섰다고 보인다. 또한 외국작품을 참고한 장면들은 ‘무신’에 크게 도움이 되지도 않고 ‘호불호’에 대한 논란만 키우고 있다. 



당시 무신정권이 북방의 거란족과 몽고족과 싸우기 위해서는 장병들의 뛰어난 승마실력이 필요했으며 이를 대비하기 위한 일환으로 격구대회를 열었다고 봐야 한다. 장시로 사람의 목을 베었다는 기록의 유무를 떠나서,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라는 여론은 차치하더라도 논란의 여지는 크다.

김준이 격구대회에 출전하게 되는 계기는 월아라는 가상의 인물을 구하기 위해서다. 김준이 두 번째 격구대회에 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송이(김규리 분)라는 인물은 최씨라고만 알려진 최우의 맏딸로 ‘무신’에서 김준과의 관계는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각색을 거친 내용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극은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허구의 인물이나 사건을 개입시키기는 경우가 많다.

김준이 가상의 인물 월아를 구하기 위해 격구대회에 출전하고, 다리에 깊은 부상을 입은 후 최우의 딸 최씨에게 찾아가 “사내답게 살기 위해서다”라고 외치며 다시 한번 격구대회에 출전하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과는 다른 허구다. 이왕 시청자들에게 재미있는 ‘무신’을 보여주기 위해 허구의 내용을 담고자 했다면 격구대회보다 명궁대회를 열었으면 어땠을까?. 물록 ‘극적 소재’로 격구를 사용했다는 것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김준이 활을 잘 쏘아서 최우의 눈에 들었다는 역사적인 사실과 맞아들어 시청자들의 공감은 더욱 커졌을 수 있다.

노예였던 김인준(김준이 개명하기 전의 이름)이 고려 무신정권 시대에 문하시중이라는 권력의 정점까지 오르는 과정은 소용돌이 같은 역사 속 한 인간의 흥망성쇠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노예에서 권력의 최정점에까지 오르는 김준의 신분 상승과정은 충분히 대리만족을 줄 수 있어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소재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극 초반 역사적 사실에서 크게 벗어난 설정과 함께 격구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전개는 몽고항쟁과 더불어 팔만대장경을 조성해낸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시청자들에게 알리는데 한계를 느끼게 한다. 만약 격구대회가 드라마에 흥미를 높이기 위한 장치였다고 하더라도 좀 더 빠른 전개로 ‘무신’이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에 힘을 쏟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나아가 자신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은 몇몇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도 ‘무신’에 빠져들 수 없게 만드는 요인 중에 하나다. 김규리는 그저 눈만 크게 뜨고 대사를 읊조려 진정성은 전달되지 않았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놀라운 비유법을 사용하곤 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이야기에 생명력을 담기 위함이고 독자들이 작품 속에 담고자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배우들의 연기력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감동과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 아직은 초반이라 자신이 맡은 인물에 대한 몰입이 더딜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소설가의 유려한 비유법 같은 배우들의 연기를 기대하는 것은 시간을 들여 드라마를 시청하는 시청자들의 당연한 권리이며 마땅한 요청이다.

무엇보다 많은 시청자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기 위해 대규모의 예산까지 쓰였다면 지금의 상황은 ‘무신’에게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 일이다. 지금이라도 김준이 권력의 정점에 오르기 위한 도약과 몽고항쟁에 이은 팔만대장경 조성에 대한 이야기로 화두를 옮기는 건 어떨까?.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야기와 배우의 노련한 연기가 함께 어우러져 ‘무신’에 빠져들 수 있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랄뿐이다.


이슈팀 홍수연 인턴기자/ 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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