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사랑 기반으로 새성장 동력 창출
현대·포스코 등 신규채용에도 활용
삼성코닝정밀소재, 노숙인 인문학 과정
돈보다 실질적 삶의 변화 이끌어
7년간 107명 배출…당당한 재기 성공
우리시대 나눔이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면서 ‘인문학’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부(富)의 사회적 책임’을 뜻하는 리세스 오블리주(Richesse Oblige)의 한 축인 기업에서도 최근 인문학 신드롬이 일고 있다. 학계에선 ‘부의 인문학’을 정립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유는 명확하다. 기존 경제학이나 경영학ㆍ기술공학 등은 ‘수익경영’에 유효하지만, 시대 흐름인 나눔경영의 당위성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애정과 본성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와 통찰력만이 우리시대 나눔의 존재 가치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 소양은 특정층의 전유물이 아닌 보편적 가치로 대두됐다. 여기에 건강한 부자, 아낌없이 나누는 부자가 많아지기 위해선 올바른 가치관에 바탕을 둔 ‘부의 인문학’이 태동, 발화해야 한다는 학계의 주장도 나오고 있다. 바야흐로 새 나눔세상은 ‘인문학 신드롬’과 함께 날개를 펼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는 왜 나눠야 하는가. 해답은 바로 ‘인문학’에 있다.
‘인문학 명문’인 미국 윌리엄스 칼리지의 애덤 포크 총장은 지난해 방한 강연을 통해 “인문학은 죽지 않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지금처럼 세계 경제와 정치의 불확실성이 만연한 시대에 정의ㆍ도덕ㆍ자유 같은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를 탐구하는 인문학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사망한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과 융합된 기술이야말로 인간에게 감동을 준다’고 한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인문학은 비판적 사고력을 길러주고 창의적 문제 해결 방법과 도덕적 규율을 갖게 하며, 자신과 이웃 나아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품성을 길러준다”고 강조했다.
성과와 결과물에 집착하던 시대를 벗어나 주변과의 배려가 중시되는 시대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근본 가치인 인문학이 매우 중요하고, 오히려 더 위력을 떨칠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인문학이 신(新)리세스 오블리주의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기업이 성과 위주의 경영에서 벗어나 주변과 교감하고 나눔경영을 하려면 철학적 배경이 필요한데, 수익경영에 유효했던 기존 경제학이나 경영학ㆍ전자공학 등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기업이나 기업인이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를 배경으로 한 ‘인문학적 소양’으로 무장할 때 진화형 나눔경영을 완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흐름에서 기업 최고경영자(CEO)나 임원, 직원은 최근 인문학 배우기 열풍에 기꺼이 동참하고 있다. 삼성 등 주요 그룹 사장단은 고전이나 동서양 철학서 등을 통한 인문학 열공에 푹 빠져 있다. 서양철학ㆍ인문학 강좌를 운영 중인 포스코 등의 직원들 배움 열기도 뜨겁다. 특히 지난해 금융권 탐욕을 비판하는 분위기 속에서 뭇매를 맞은 보험업체는 새해 들어 사내 온라인 강좌에 인문학 코너를 잇따라 신설하고 있다.
통찰력이 풍부한 인문학 접목을 통한 새 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창조경영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이같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밀알로써 인문학을 나눔경영에 접목하려는 게 궁극적인 움직임이다.
▶다시 보자, 인문학=기업이 인문학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나눔이 미래경영의 한 축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눔은 경영을 하다가 남으면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경영에서 뺄 수 없는 요인이 됐다. 그래서 CEO와 임직원, 직원의 ‘인문학적 소양’의 크기에 따라 나눔을 실천하는 일류기업이 될 수 있느냐 혹은 없느냐가 갈린다는 것이다.
최근 삼성과 현대기아차, LG, SK, 포스코, GS 등 주요 그룹이 신입사원 선발 시 인문학적 감성을 매우 중요시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10대 그룹 인사 담당자는 “주변과의 나눔은 미래경영 중 가장 세련된 전략이 요구되는 분야”라며 “인간에 대한 본질적 탐구 능력과 인간애(愛)를 갖춘 이들만이 나눔경영을 자연스럽게 꽃 피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인문학적 재능의 인재가 중요시되는 시대”라고 말했다.
굳이 인문학도 출신일 필요는 없다. 기업이 인문학 강좌를 통해 인문학적 소양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포스코의 서양철학 인문학 강좌, LS전선의 인문학 지식 겸비 인재 육성을 위한 창조학교, 롯데백화점의 인문학 문화센터, SK케미칼의 조조 인문학 강연회, 휴넷의 모바일 행복한 인문학당 등이 바로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재계단체도 예외는 아니다. 전경련 국제경영원은 5월까지 CEO 대상의 CLIG(Creative Leadership Innovation Growth) 최고위과정을 연다. 동서양의 역사 이야기라는 인문학을 통해 리더십과 경영의 묘를 익히는 과정이다.
흥미로운 것은 인문학이 나눔의 촉매제이기도 하지만, 직접적인 나눔 지원 대상이라는 것이다. 삼성코닝정밀소재와 성공회 다시서기 지원센터가 함께 7년간 진행한 국내 최초의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과정’이 바로 그것이다.
노숙인에겐 당장 잠자리나 돈이 중요하지만, 재기를 위해선 인문학적 소양이 더 유효하다는 철학이 이 과정의 핵심이다. 7년간 107명의 인문학도를 배출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이들이 당당히 재기했다.
7기 졸업생 김석원(48ㆍ가명) 씨는 “인문학을 배우고 글을 쓰면서 내 자신과 내가 걸어온 삶에 대해 되돌아보며 나도 뭔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노숙인의 자존심 회복과 실질적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이 과정은 서울시도 벤치마킹해 2008년부터 운영 중이다. 인문학의 재발견이자, 위력이다.
삼성코닝정밀소재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인 노숙인 인문학과정 7기 수료식에서 이헌식 사장이 노숙인 인문학과정 졸업생에게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삼성코닝정밀소재] |
▶인문학은 미래경영 잣대=인문학은 경영에 관한 한 CEO에 끊임없는 영감을 줬다.
스티브 잡스는 “우리가 아이패드를 만든 것은 애플이 항상 기술과 인문학의 갈림길에서 고민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인문학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굳이 외국 예를 들 필요는 없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새로운 삼성을 인문학에 베팅했다. 그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창조적 개발자를 찾으라”고 주문한 것은 발상을 깨는 창조적 리더만이 미래경영을 이끈다는 신념과 무관치 않다.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에 15%가 넘는 인문학 전공자가 있어 커뮤니케이션 매개 역할뿐 아니라 다양한 지식을 융합, 창의적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구본걸 LG패션 회장은 패션 브랜드에 인문학적 감성을 담을 것을 강조한다. “패션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그 안에 이야기가 있어야 하며, 인문학적인 소양을 쌓고 스토리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문학과 자연학이 조화된 통섭(統攝ㆍConsilience)형 인재를 중시하는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나 올바른 역사관이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주창하고 있는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역시 인문학 예찬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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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상ㆍ도현정 기자 @yscafezz> / ys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