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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폭행 피해자에게 또 다시 성폭행하는…대한민국 현주소
지난 10일 서울 은평구에 사는 A(14)양은 어울려 놀던 친구의 선배 B(19)군 등 2명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가해자들은 구속됐고, 구속기간이 끝난 지금은 불구속 상태에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A양의 가족들은 끔찍한 성폭행의 기억 뿐 아니라 계속해서 집을 찾아오는 가해자의 친구, 그 가족들 때문에 불안에 떨고 있다. 가해자를 처벌한다 해도 살던 마을 안에 가해자의 지인들이 남아 있어 안심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A양의 아버지 C(47)씨는 “동네 안에서의 인간관계가 완전히 무너져 버렸음을 느낀다”녀 “이 동네를 떠나고 싶지만 이사할 형편은 안돼고, 지금 현재 잠시 자리를 피할 수 있는 장소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에 발생한 고려대 의대생 성폭력 사건 역시, 피해 여성이 사건이후 가해자들과 함께 시험을 보는가 하면, 학과 교수들이 “가해학생들은 다시 돌아올 친구니까 잘해주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가해자들은 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학교에서는 출교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피해자는 여전히 자신이 당한 범죄 처리에 소극적이었던 집단 안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다.

성폭력 피해자가 사건 이후에도 사건이 일어났던 공동체 안에서 여전히 살아야하지만, 이 들을 배려할만한 마땅한 제도적 장치가 없어 피해자들이 2차, 3차 피해에 노출될 상황에 놓여 있다.

작년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발표한 2010년 상담통계분석에 따르면, 총 상담건수 1312건 중 84.8%인 1112건이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여수 성폭력상담소와 속초 성폭력상담소가 발표한 2011년 상담현황분석은 각각 74.1%, 67.6%가 지인에 의한 성폭력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여수 성폭력상담소 김미진 상담원은 성폭력의 상당수가 지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이유에 대해 “성폭력 범죄는 아는 사이 내에 형성돼 있는 위계라던지 권력 관계가 작동해서 이루어지는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 2010년 발표한 상담통계분석 역시 “성폭력이 성별ㆍ나이ㆍ지위ㆍ계급ㆍ경제력 차에 따라 발생한다”며 “동등한 관계가 아닌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관계일 때 성폭력이 쉽게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 이런 권력 관계에서 약자인 피해자는 그 공동체에 속해 생활하는 동안 계속해서 피해 위협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마을에서, 가정에서 일어나는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는 그저 참거나 떠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문제는 이런 일상적이고도 지속적인 피해 상황을 해결할만한 마땅한 직접적 대책이 없다는 것.

이소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심정적으로는 가해자 편에 있는 사람들을 격리하고 싶겠지만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물리적인 폭력이 아닌 정신적인 피해이기 때문이다. 법원에 민사상 손해배상 등의 조치를 청구할 수는 있겠지만 사후적인 조치이기 때문에 그다지 실효성은 없다”고 말했다.

이선미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상근활동가는 “제도적 장치보다는 해당 성폭행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내에 어떠한 논의가 오갔고, 어떻게 책임을 물었냐는 것이 중요하다”며 “구성원들의 의식이 변하지 않으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김성훈 기자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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