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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해학생이 가해학생 역할…맺힌 응어리 풀며 상처 회복
‘모험상담’으로 학교폭력 치유나선 방승호 센터장
이달 초 서울 신월동 강서교육지원청. 방승호 강서Wee센터장(강서교육청 중등지원과장)에게 학교폭력으로 피해를 입은 은희(가명)가 찾아왔다.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은희는 지난해 교내 동아리활동을 하다 ‘왕따(집단 따돌림)’를 당해, 수시로 친구들에게 맞기까지 했다. 상담 당시 충격이 컸던 은희는 가해학생의 영문 이니셜조차 종이에 적지 못했다. 그런 은희에게 방 센터장이 제안한 것은 ‘역할극’이었다.

가해 학생들의 이니셜에 동그라미를 칠 때마다 해당 학생과 역할을 바꾸는 것이었다. 처음에 주저하던 은희는 나중에 정말 가해 학생이 됐다. “야, 이 X야. 어디 한 번 맞아볼래?” 역할극 내내 거침없이 욕설을 던졌던 은희는 극(劇)이 끝난 후 눈물을 흘렸다.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풀렸다”고 했다. 개학 후 은희는 달라졌다. 가해 학생들에게 농담을 던지는 등 당당해졌다. 지난주 말에는 충남 천안시에서 올라온 같은 처지의 여중생을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까지 했다.

학생들과 게임을 하며 모험상담을 하고 있는 방승호 서울 강서Wee센터장(가운데). 그는 “역할극, 보드게임 등 각종 게임을 통해 웃고 떠들고 땀 흘리며 소통하는 것이 모험상담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최근 학교폭력이 이슈가 되면서 담임이나 생활지도 보직을 기피하는 교사가 늘고 있다지만 모든 교사가 그런 것은 아니다. 방 센터장도 그 ‘예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교사 때인 2002년부터 일선 학교에서 ‘모험기반 상담(모험상담)’이라는 집단 상담 프로그램을 실시하며 학교폭력에 대처하고 있다.

방 센터장은 주중에는 은희처럼 강서교육청을 찾아온 학생들을 개별상담하고, 주말에는 부정기적으로 공부방과 대안학교 등을 돌아다니며 학생들을 집단상담한다.

‘모험상담’은 상담 과정에 야외 모험활동을 가미함으로써 상담 대상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려는 목적으로 1971년 미국에서 고안된 상담기법이다. 학생들은 역할극, 보드게임 등 각종 게임을 하며 학교폭력으로 닫힌 마음을 열어간다.

방 센터장은 “1998년 연수차 미국에 갔다가 마약 중독자들이 모험상담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고 이 프로그램을 한국에 들여왔다”며 “대화 일변도로 이뤄지는 일반적인 집단상담과 달리, 모험상담은 상담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서로 웃고 떠들며 소통하게 돼 상담자의 참여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교단에 ‘입소문’이 퍼지면서 방 센터장에 동참하는 교사들이 늘었다. 모험상담을 벌이는 교사들을 중심으로 한국모험상담교육연구소가 발족됐고, 현재 그가 소장이다.

방 센터장의 이 같은 노력은 결실을 맺고 있다. 2008년에는 위기 학생 14명을 대상으로 집단 심리치료를 해 학교에 안전하게 돌려보내기도 했다. 또 지난해에는 아현정보산업학교 교감 시절 모험상담 도중 제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가수로 데뷔, 앨범을 내기도 했다.

그는 학교폭력 해법에 대해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사 사이의 ‘주파수’를 맞추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며 “그러면 서로 소통하고 관심을 갖게 되고 다른 학생을 아끼는 마음이 생기면 자연히 폭력을 휘두르는 일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신상윤 기자/k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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