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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젠 뭘해도 ‘되는’ 이 남자, 정성화
개그맨서 뮤지컬 톱스타로…스크린서도 종횡무진
8년前 뮤지컬 데뷔 개그맨 편견 깨

2010년엔‘ 영웅’안중근役 최고 자리

영화‘ 댄싱퀸’진중한 국회의원 연기


“공부안하면 도태”…개그맨 실패 교훈

내달 영국연수 발성·가창레슨 계획

지난 1994년 SBS의 3기 개그맨 공채 시험에서 꼭 10명이 그 어렵다는 관문을 뚫었다. 18년이 지난 지금 그 중 대부분이 TV에서 사라졌고, 시청자들의 뇌리에서 지워졌다. 가수와 배우보다 더 수명이 짧고 오라는 데는 적은 게 개그맨이다“. 한 달 전만 해도 전 국민이 다 아는 개그프로그램의 스타였지만 코너가 없어지면 한 달 후엔 어디서 뭐하는지도 모르는 게 개그맨의 운명”이라는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정성화(37)의 말이다. 그도 역시 잊혀진 이름이 될 뻔했기 때문에 그 냉혹한 생리를 잘 알고 있다. 첫 도전에서 SBS 3기 개그맨으로 합격하며 보란 듯 출발했고 적지 않은 유명세도 누렸지만 인생의 빨간불은 느닷없이 켜졌다. “나이트클럽에서 즉석만남을 해도 여자들이 내 옆에만 앉으려고 하는, 보잘 것 없는 인기에도 취해 있었던 때”, 지난 2001년이었다. 갑자기 오락프로그램과 TV 드라마 섭외가 뚝 끊겼다. 명절 때마다 일해야 한다며 불평을 했던 게 어제였는데, 하루아침에 우두커니 전화통만 부여잡고 앉아있어야 하는 한심한 신세가 됐다. 집에 틀어박혀 우는 궁상도 떨어봤다. 어쨌든 20대 청춘이 놀 수만은 없어 일산에서 바를 운영하는 지인에게 “여기서 좀 일하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 


그러던 중이었던 지난 2004년 뮤지컬 제작자인 설도윤 대표의 전화 한통이 모든 걸 바꿔놓았다. 뮤지컬 ‘아이 러브 유’에 캐스팅된 것이다. 선배였던 표인봉과 김경식이 기획하고 제작한 2인극 ‘아일랜드’에 출연했던 정성화를 설대표가 눈여겨봤던 것이다.

“내 인생이 뮤지컬에 있게 될 거라고는 한 번도,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개그맨이었죠. 개그맨 시험에 합격했을 때만 해도 운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알아보기 시작할 때는 그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그런데 실력을 키우는 것,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죠. 그러다보니 도태되는 게 당연했어요.”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성화는 ‘아이러브유’의 첫 공연이 배우로서의 삶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개그맨이 뮤지컬한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두세 배 노력했죠. 첫 무대에서 공연을 끝내고 받은 중저음의 박수소리를 잊을 수가 없어요. 정성화가 잘생겨서, 키가 커서 박수를 받았겠습니까? 오로지 ‘너 잘했다, 그게 네 길이다’는 의미였죠. 도박에 중독될 때 나온다는 ‘도파민(뇌에서 분비되는 보상 호르몬)’이 느껴질 정도였어요. 그 박수가 지금까지 저를 있게 했습니다.”

당시 같이 공연했던 뮤지컬 선배 남경주가 “치약회사 사장이 치약에 대해서 얼마나 공부를 많이 하겠느냐, 너는 연기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느냐”며 던진 말이 약이 됐다. 정성화는 정식 성악공부나 가창훈련을 받지 않았음에도 바리톤의 음성에서 나오는 노래와 개그와 무대에서 다져진 연기력, 정확한 대사발성 등으로 뮤지컬에서 승승장구했다. ‘맨 오브 라만차’의 주연을 맡으며 뮤지컬계에서 입지를 다졌고, 지난 2010년 ‘영웅’의 안중근 역으로 마침내 뮤지컬의 최고 스타( ‘더 뮤지컬 어워드’ 남우주연상)로 섰다.

뮤지컬은 이제 운명이 됐지만 정성화의 새로운 도전 무대는 스크린이다. ‘위험한 상견례’에 이어 ‘댄싱퀸’에 출연해 황정민을 서울시장 후보로 만드는 국회의원을 연기했다. 유권자들의 외면을 받는 당에서 조용히 개혁을 시도하는 인물로, 정성화는 개인기로 가벼이 웃기는 캐릭터가 아니라 진중한 정극 연기에 빼어난 능력을 보여준다. 주조연급으로 출연한 ‘창수’와 특별출연한 ‘500만불의 사나이’ ‘내 아내의 모든 것’ 등도 잇따를 예정이다. 새 뮤지컬 작품은 오는 7월 예정이다.

정성화는 오랜만에 얻은 여유를 이용해 오는 3월 한 달 예정으로 영국으로 연수를 떠난다. 웨스트엔드의 뮤지컬도 보고 현지 뮤지컬 전문가로부터 발성과 가창 레슨을 받을 예정이다. 공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쓰디쓴 진실을 깨닫고 나서야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연기론’과 우타하겐의 ‘산 연기’, 리 스트라스버그의 ‘연기의 방법론을 찾아서’ 등을 찾아 탐독했던 열정이야말로 앞으로도 지켜야 될 것이라고 정성화는 다짐했다.

그는 가장 어려웠던 시절, 일하던 바에서 만난 당시 스물 세 살의 아르바이트생과 7~8년여의 연애 끝에 지난 2010년 결혼했다. 올해 또 다른 소망이 있다면 “딸이면 아내 닮고, 아들이면 부인 닮은 2세”를 얻는 것이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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