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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불어 사는 사회…기부는 특권이자 행복한 책임…”
[연중기획 With me] 부자의 자격-新리세스 오블리주 <2> 나눔멘토 3인의 기부스토리
최신원 SKC 회장
언제까지 나눔 펼칠거냐고?
언제까지 밥먹을지 물어달라

류시문 한맥도시개발 상임고문
더 가지고 더 행복한 사람이
가난한 이웃 품어야 ‘현대판 부자’

송경애 BT&I 대표
그냥 즐거우니까 행복하니까
사연이 필요없는 나를 위한 실천







기온이 하루 만에 10도 이상 뚝 떨어진 지난 7일. 우리시대의 나눔영웅이자 나눔멘토 3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원 이상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인 최신원(60) SKC 회장, 류시문(64) 한맥도시개발 상임고문(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 송경애(51) BT&I 대표. 류 회장은 아너소사이어티 2호, 최 회장은 6호, 송 대표는 22호 주인공이다.

이들은 서울 중구 사랑의열매빌딩에서 헤럴드경제가 연중기획으로 진행하는 ‘부자의 자격-신리세스 오블리주’ 좌담회를 가졌다. 바깥 날씨는 차가웠지만 나눔이야기를 시작하자 금세 ‘온기(溫氣)’가 피어났다. 나눔의 따뜻함은 겨울 날씨마저 뜨겁게 변하게 하는 마법을 지녔을까.

이 시대 큰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이들은 자신만의 나눔철학과 스토리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최 회장은 “(사회든 주변이든) 신세를 지면 반드시 갚아야 하며, 되돌리는 것이 중요하고 이런 생각이 바이러스처럼 사회에 전파돼야 한다”고 했다.

류 고문은 “궁핍한 사람을 지구 저 편으로 밀어내지 않는 한 그들은 여전히 우리 이웃”이라고 했다.

송 대표는 “기부에는 사연이 없는 것이며 그냥 일상에서 즐거운(Fun) 기부, 행복한(Happy) 기부를 남이 아니라 나를 위해 하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장애라는 편견을 벗고 당당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류 고문은 어렸을 때 동생이 자신에게 중학교 진학을 양보하고, 결국 서울로 뛰쳐나와 고생하다가 교통사고로 1급 장애인이 됐다는 가슴 아픈 사연을 소개하면서 “그때 누군가의 나눔이 있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에 지금 나눔을 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동생에게 속죄하고 있다”며 눈물을 보여 좌중을 숙연케 만들었다.

최신원 SKC 회장=묵묵히 사회공헌활동에 힘쓰고 있는 대표 기업인이다. 고 최종건 SK그룹 창업주로부터 기부정신을 물려받아 기부활동에 힘쓰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고액기부자 모임인‘아너소사이어티’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지난해부터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5대 회장으로 취임해 지역사회 모금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류시문 고문=날씨가 매우 춥습니다. 건강하신지요.

▶최신원 회장=이 정도 날씨쯤이야. 옛날에는 배고파서 그런지 더 추웠던 것 같아요. 류 고문도 송 대표도 좋은 일 하신다고 얘기 들었는데, 반갑습니다. 저는 만보기를 차고 틈만 나면 걷는데, 걷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송경애 대표=날씨가 더 추워지니까 나눔이 새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 회장=맞습니다. 저는 가끔 ‘언제까지 나눔을 펼칠 생각인가’라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이는 마치 제게 밥을 언제까지 먹을 것이냐고 묻는 것과 같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 나눔은 제게 일상이고 습관이며 천행(天行)과도 같습니다.

▶송 대표=나눔은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약속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마무리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어렵고 힘든 사람을 도우며 아름다운 삶을 살다간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소망이 있어요. 전 오드리 헵번을 좋아하는데요. 젊었을 때는 할리우드 배우로 화려하게 살았지만, 인생 후반부에는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면서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고 살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예쁜 배우보다는 정열적인 구호활동을 펼치다가 떠나간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 같아요.

▶류 고문=우리 주변에 기부를 권유하면 아들 딸 결혼시키고 노후 준비를 안전하고 완벽하게 해놓은 다음 (기부)하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이 사람들은 한평생 기부 못할 사람들입니다. 기부는 일상적인 여유와 지혜의 연속선에서 이루어지는 고결한 인격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송경애 BT&I 대표 = 국내 대표 B2B 여행사인 BT&I를 키워낸 국내 대표 여성 CEO다. 송 대표는 여성 CEO로는 처음으로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다양한 기부활동과 함께 여행사의 특성을 살려 소년소녀가장 등에게 여행을 기부하는‘기부여행’프로그램 등을 적극 운영하고 있다.


▶최 회장=류 고문은 나눔에 입문(?)한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서요.

▶류 고문=중학교 진학을 할 무렵 아버지께서 ‘너는 다리 절고 귀가 안 들리니까 군대를 갈 수가 없다. 요즘에는 군대 안 가면 취직도 못하고 출세도 못하는데, 그냥 나를 따라 농사나 짓자’고 하셨습니다. 눈덮인 뒷산 계곡에서 서럽게 울면서 ‘저주 받은 장애’를 한탄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중학교 보내달라고. 용기를 얻어 그날 저녁 아버님께 애원해 승낙을 얻고 다음날 그 계곡에 가보니 저 멀리 소백산맥 자락에 무지개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 무지개에 ‘나는 커서 장애인으로서 남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새겨 넣었습니다. 그로부터 50년 세월이 흘러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되었죠.

▶송 대표=저는 부모님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어요. 워싱턴DC에서 자랐는데, 아버지와 함께 자선파티에 많이 참석했어요. 미국에선 파티 후 자선행사가 당연히 뒤따릅니다. 흥겹게 파티는 하지만, 나중엔 꼭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나눔을 보고 배우며 자랐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의 기부와 나눔은 자연스럽게 습득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거창한 나눔, 꼭 이유있는 나눔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있는 만큼 그대로 나누는 것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최 회장=저 역시 선친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습니다. 아버님은 폐허의 땅에서 맨손으로 기업을 창업하고 국내 최고의 섬유회사로 키워낸 창조적 기업인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기업의 생존과 발전이 가장 큰 핵심가치였지만 항상 주변 이웃을 보살피는 것에도 소홀하지 않으셨죠. 아버님은 제게 나눔의 의무를 특권이자 행복한 책임으로 인식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돈에 대한 가치와 기부에 대한 제 철학은 모두 선친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송 대표=우리가 왜 나눠야 하는지 얘기를 해볼까요. 저는 생활 속의 기부, 날마다 기부하는 나눔문화 패러다임에 맞춘 인식의 전환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나눔과 봉사는 그것을 생활화하고 기쁨을 나누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많은 금액이 아니더라도 기념할 만한 일에 기부하고 봉사하면 나누는 기쁨이 커집니다. 우리 회사엔 ‘엔젤스’라고 사내 봉사동아리가 있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월 1회 이상 봉사를 하고 있어요.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옆에 있으니 저는 매우 기쁘고 즐겁거든요.

▶최 회장=세상은 더불어 사는 곳입니다. 지금같이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안 좋은 때일수록 주변을 더 돌아보고 돌봐야 합니다. 내 이웃과 나누는 행동만으로도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높아질 것입니다. 나눔은 모두가 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모두를 행복하게끔 해주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것을 조금씩이라는 나누는 문화가 바이러스처럼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고 확산됐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에 조건이나 자격같은 것은 필요가 없지요. 다만 조금이라도 더 갖고 있는 사람이 솔선수범해 나눔을 먼저 실천하고 전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2003년부터 을지로 최신원이라는 이름으로 남모르게 기부를 꾸준히 해왔는데요. 원치 않았지만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되면서 알려지게 됐습니다. 그동안 십시일반 기부한 것이 13억원 정도 됩니다. 제 할아버님은 물론 선친이신 고 최종건 회장께서는 어려운 이웃을 보면 항상 도와주고 더불어 살아가는 어른이셨습니다. 이를 보고 자라다보니 자연스럽게 기부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나눔을 행하면 자연스럽게 자녀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나누는 부모 밑에서 자라면 요즘 문제인 학교폭력이나 왕따가 있을 수 있겠어요.

▶류 고문=맞는 말씀입니다. 시대적인 상황도 그렇습니다. 가난한 다수에 대해 배려가 없이는 부유한 소수도 결코 안전할 수가 없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우리사회는 서로가 더 채우려고 경쟁을 합니다. 채우기만 하고 베품에는 인색합니다. 저는 자신을 적절하게 관리하고 이웃의 가난을 보고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 ‘현대판 부자’라고 생각합니다. 기부는 더 가진 자가, 더 행복한 사람이 더 가난한 이가 겪고 있는 아픔을 나눠갖는 것입니다.

류시문 한맥도시개발 상임고문 = 최근까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초대원장으로 활동하며 사회적 기업을 발굴, 육성하는 데 힘쓴 사회공헌가다.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사회복지시설, 학교, 문화예술기관 등에 지속적으로 기부하며 기부문화 전파에 힘쓰고 있다. 아들 류원정 씨 역시 아너소사이어티회원에 가입해 첫 부자(父子) 회원으로 등록됐다.


▶최 회장=그러고 보니 우리는 모두 기업인이기도 한데요. 경영과 나눔도 빼놓을 수 없는 화제지요. 예전에는 나눔은 경영활동의 영역이 아닌 별개의 영역으로 선을 그었지만, 지금은 나눔이 적극적인 경영활동 중 하나입니다. 기업이 제품이나 서비스만 잘 제공한다고 해서 발전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소비자는 제품 및 서비스는 기본이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되고 결국에는 기업의 가치가 더 올라가게 됩니다. 경영의 목적 달성에만 집중한 나머지 나눔에 대해 소홀히 한다면 결코 조직은 성장하지 못합니다. 저는 경영을 하면서 이것을 염두에 둡니다.

▶류 고문=저는 제가 창업한 한맥도시개발을 개인의 이윤 추구보다는 나눔이라는 공익적 가치를 실현하는 사회적 기업형태로 전환하려고 합니다. 물론 모든 기업이 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는 할 수는 없습니다. 기업이 기업 나름대로 본래의 목적을 추구할 때 더 훌륭한 사회적 공헌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송 대표=저 역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는 고객에게 의미있는 서비스와 제품을 제공하기에 가능합니다. 기업이 존재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것은 그 서비스와 제품을 이용해주는 고객 덕분입니다. 우리가 좋은 서비스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고객이 없으면 소용이 없는 것이지요. 고객에게 받았으니 우리는 그 이익의 일부를 다시 사회에 환원해 상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빚진 관계가 아닐까요.

▶최 회장=나눔은 주변을 위한 일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나를 위한 것 같습니다. 나누다 보면 보람이 있는 일도 많지요.

▶송 대표=그렇습니다. 이번에 어린이재단을 통해 우리 회사는 ‘재능기부’ 형태의 기부여행을 진행하려 합니다. 총 20여명의 학생과 여행을 떠나는데요. 해외여행을 통해 학생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히고 새로운 시각을 가질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쁩니다. 복지관에서 심사숙고해 추천한 20여명 학생의 사연을 읽어보고는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했습니다. 

▶류 고문=우리 문화가 서울에 집중돼 있는 게 사실 아닙니까.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지방도시 문화활동 활성화를 위해 대구 로얄오페라단을 지원한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공연할 때마다 장애인, 다문화가정, 고령자, 기초생활수급자에게 무료 관람을 시켜드렸는데 나눔의 확대가 한 차원 높은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최 회장=선경최종건장학재단에서 지원하는 중ㆍ고등학교 어린 학생이 손글씨로 직접 쓴 감사의 편지를 보내올 때 보람을 느낍니다. 재단에서 받은 지원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나중에 커서 사회에 환원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공부도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글을 읽을 때마다 ‘아, 내가 참 잘한 일이구나. 더 많이 해주지 못해 미안하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학생들의 편지를 돌아가신 선친께서 보시면 얼마나 흐뭇해하실까 하는 생각도 해보곤 합니다. 그러고 보면 나눔은 전염성이 강해서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사람이 동참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일부 재벌이나 기업인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을 일시적인 ‘선행’으로 행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사회가 나눔을 지향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고, 사회지도층의 나눔과 상생에 대한 이해도가 커지고 있는 만큼 혜택받은 사람이 다양한 나눔 실천에 동참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류 고문=앞서도 언급했듯이 ‘여유가 생기면 나누겠다’는 것은 나눔에 대한 편견입니다. 나눔은 현재 있는 만큼 있는 그대로 나누는 것입니다. 이 같은 오해가 없어지면 보다 많은 사람이 일상적인 나눔에 발을 들여놓을 것입니다.

▶송 대표=기부와 나눔이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때 느끼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한번 경험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꼭 거액을 나눌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나눈다든가, 기념일에 자녀들의 이름으로 소액이라도 기부하는 것은 참다운 의미가 있어요.

▶최 회장=많은 말씀 감사합니다. 우리가 나눔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선진국에선 나눔 의미를 특권이자 책임인 동시에 행복으로 여깁니다. 돈에 대한 가치와 기부문화 등에 대한 국민적 인식 수준이 올바르게 잡혀 있는 거죠. 우리도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행복한 나눔이 바이러스로 무한대로 퍼져 나가길 기대합니다. 그게 우리가 여기 모인 이유 아닙니까.


<정리=김영상ㆍ김상수 기자> / ysk@heraldcorp.com

<사진=안훈 기자> /rosedal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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