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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석의 상상력사전> 동물
배우들이 즐겨 인용하는 말이 있다. 배우(俳優)라는 말을 한자로 보면 ‘광대 배’는 ‘사람 인(人)’에 ‘아닐 비(非)’자가 합쳐진 글자로, 배우란 “인간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배우가 연기하는 것은 사람이 아닌 역할 혹은 가짜 사람이라는 뜻도 되겠거니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거짓 인생을 보여주는 광대란 무릇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면 영화에 출연하는 동물이야말로 진짜 배우가 아닐까. 실제로 영화 속에서 동물은 인기배우이자 최고의 흥행파워를 갖춘 스타로 존재해왔다.

할리우드 영화 중에선 가장 인기 있는 동물이 물론 개다. 미국 흥행집계회사 박스오피스모조는 역대 가족영화 중 실제 동물이 주ㆍ조연급으로 등장하는 작품(실사영화)만을 모아 순위를 매겨놓았는데, 상위 20편의 작품 중 무려 8편이 견공의 출연작이다. 고래나 돌고래가 의외로 많아서 3편이나 되고, 펭귄이 2편이다. 말도 2편. 그럼 가장 돈을 많이 번 동물영화는 무엇일까.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 실제 동물이 출연한 작품 중에선 역시 개가 등장한 ‘스쿠비 두’가 으뜸으로 미국에서만 1억5329만달러(약 1713억원)를 벌어들였다.

애니메이션을 포함하자면 수치는 훌쩍 올라간다. 인간이었다면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했을 동물은 사자다. ‘라이언 킹’이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 중 가장 높은 4억2278만달러의 수입을 거둬들였다.

동물 인기는 최근 국내 극장가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다. 춤 추고 노래 부르는 펭귄(‘해피 피트2’)도 있고 서부극의 주인공 같은 고양이(‘장화신은 고양이’), 흰털로 덮인 변종 코알라(‘코알라키드’)도 있다. 16일 개봉하는 ‘빅 미라클’은 북극 얼음에 갇힌 고래 구출작전을 다뤘고, 유하 감독의 ‘하울링’은 늑대와 개의 교배종인 늑대개가 소재다.

미국의 명장 스티븐 스필버그도 이번엔 외계인이 아닌 동물을 주인공으로 했다. 말을 내세운 ‘워 호스’다. 말도 개 못지않은 무비스타여서 1980년대 이후 미국의 말영화는 최소 27편. 어림잡아 매해 1편꼴로는 나왔다. 그중에서 가장 돈을 잘 번 말은 경주마 ‘시비스킷’이고, 그다음이 스필버그 감독의 군마 ‘워 호스’다. 최근 국내에서 경마산업이 인기를 끌면서 한국영화에서도 말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 잇따라 ‘각설탕’과 ‘그랑프리’ ‘챔프’ 등이 마사회의 적극적인 투자와 제작 지원을 업고 만들어졌다.

1차대전의 격전지를 누빈 스필버그의 군마에 이어 오는 23일엔 철학자 니체의 말이 찾아온다. 1889년 토리노에서 발광한 말년의 니체가 부여잡고 울었다던 말과 마부는 그 후 어떻게 됐을까. 헝가리의 거장 벨라 타르의 잠언이자 묵시록인 예술영화 ‘토리노의 말’이다. 스필버그의 말이 질주하고 교감하는 말이라면 ‘토리노의 말’은 신이 죽은 시대, 생명과 파멸, 차이와 반복의 삶을 사색하는 말이다. 어쨌거나 스크린은 언제나 동물천하였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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