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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푸줏간 앞에 선 재벌과 정치권
소비자가 외면한 상품 퇴출

정치권도 시장 원리와 비슷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

유권자의 칼은 어디로…

소비자의 요구를 맞추지 못하는 상품은 바로 퇴출되는 게 시장의 원리다. 정치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소비자의 선택이 4년 또는 5년에 한 번씩 일어나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 선택주기가 길기 때문에 불만이 폭발하면 활화산이 된다. 

예고된 대재앙에 직면한 정치권의 재벌개혁론이 거세다. 선거 때마다 단골 메뉴지만 이번엔 강도가 다르다. 전세계적인 분위기와 맥이 닿아 있다. 고장난 자본주의, 중산층의 몰락, 1% 대 99%라는 선동적 수사가 딱 어울릴 만큼 양극화는 심각하다. 1대99의 분노는 동심원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미국 월가에서 1대99의 점령시위가 시작됐을 때 안목 있는 경제계 인사들은 미국에서는 금융권에 불똥이 튀었는데, 한국에서는 재벌로 불똥이 튈 것이라고 예견했다. 여야 모두 헌법 119조를 들어 경제민주화를 공약했다. 경제민주화는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합의 쟁점이 됐다. 경제민주화로 포장됐지만 결국은 재벌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과 이익을 규제하거나 빼앗는 것이다. 어느 정도로, 어떻게 등 구체적인 방법만을 남겨두고 있는 셈이다.

전쟁 치르듯 일전불사를 각오하는 정치권에 재벌은 밀리는 분위기다. 그러면서 개미한테 조금씩 뜯기는 식으로 앞으로 대기업은 뼈만 남게 된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대기업집단이 경제성장에 얼마나 공헌했는지를 하루아침에 망각하고 있다고 울분을 토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대 정권 중 가장 친기업ㆍ친시장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대기업에 대한 불만은 분노에 가깝다. “재벌 3세는 기업가정신이 없다. 쉽게 돈만 벌려고 한다” “대기업의 프랜차이즈는 일종의 다단계 한탕주의다. 한번에 매장을 확 늘려 돈을 챙기고 그 브랜드가 어떻게 되든 상관 안 하는 구조”라고 했다. “아주 놀부보다도 못하다”는 원색적인 비난도 터지고 있다.

빵집, 커피전문점, 순대, 떡볶이 같은 서민형 업종까지 건드린 건 자승자박(自繩自縛)이 분명하다. 18세기 봉건적 경제질서와 정치체제를 송두리째 ‘이기적인 타산’이란 차디찬 얼음물 속에 집어넣은 산업자본주의가 한국에서는 따뜻한 자본주의로 진화하지 못한 것이다. “경주 최부자는 흉년에 땅을 사지 않았다”는 대통령의 진노에 골목상권에서 철수했지만 ‘반(反)대기업ㆍ반(反)재벌총수’의 성난 여론을 해소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대기업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경련의 선제적 대응과 반성이 아쉽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한다. 이미 공룡처럼 거대해진 경제권력도 마찬가지다. 비자금을 조성하고 편법으로 재산을 상속하던 대기업 오너들에게 유난히 관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구속되면 나라 경제가 곧 망할 것”이라는 위협에 정권도 검찰도 여론도 번번이 고개를 숙였다. 앞치마 두르고 잠깐 사회봉사 하면서 징역을 대신했고, 크리스마스ㆍ삼일절ㆍ광복절 때 수시로 사면을 통해 면제부를 받았다.

인간의 욕망을 ‘푸줏간 앞의 개’라고 한 니체의 적나라한 표현이 새삼스럽지 않다. 고깃덩어리는 포기하지 못하고 푸줏간 주인의 시퍼런 칼이 두려운, ‘욕망과 (나약한) 용기’ 사이에서 우물쭈물하는 존재이긴 인간 역시 똑같다. ‘욕망은 용기를 통하여 자유를 얻고, 용기는 욕망을 통하여 풍요를 얻는다’고 했지만 격동의 21세기는 절제된 욕망의 시대다. 욕망이 상식의 선을 넘으면 칼을 맞게 된다. 재벌의 탐욕이 정치의 칼을 맞을지, 먹고사는 문제를 표로 인식해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정치가 유권자의 칼을 맞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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