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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행어’는 거울이다
양공주·땡전뉴스·종결자…민초들의 말놀이엔 시대정신이 숨쉬고 있다
최근 인터넷 사용이 본격화한 1999년 이후 유행어를 몇몇 네티즌이 정리해 올림으로써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유행어를 접한 네티즌은 “그땐 그랬지”하면서 공감을 표했다.

최근 10년간 유행어는 인터넷이, 1980~90년대엔 TV가, 1950~70년대엔 정치인과 신문이 유행어를 생산하고 실어날랐다. 정치인과 개그맨, 드라마 작가는 인기 유지를 위해 유행어 만들기에 골몰한다. 하지만 유행어가 되는 말은 따로 있다. 전문가는 대체로 유행어의 조건으로 시대상을 잘 반영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재미있어야 하며, 기억하기 쉬워야 한다는 점을 꼽는다. 아울러 친숙한 음감ㆍ운율로 중독성이 있고, 무격식ㆍ탈권위 등 어감으로 민초에게 통쾌함을 유발해야 한다고 한다.

‘미국 놈 믿지 말고, 소련 놈에 속지 말자’라는 말은 저잣거리 아이들의 속요가 될 정도로 최고의 히트작이었다. 이는 60여년 패러디되면서 최근 “영일대군에 속지말고 은평대군 믿지마라”는 패러디까지 낳았다. 건국 직후엔 시민 사이에서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상대방의 특성에 따라 ‘친일파’ ‘빨갱이’ ‘코쟁이’로 불렀다.


▶1950년대= 한국전쟁이 끝나자 ‘양공주’ ‘롱타임’ 등 미군 기지촌을 둘러싼 얘기가 자주권을 잃은 국민의 한탄처럼 흘러다녔다. 집안을 먹여살리려 공장에 다니던 소녀가장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도 이 같은 사회기류의 희생양이 됐다. 이들은 1917년 인천 동구 금곡동 지역에 세워진 공장 종업원으로, 구로공단 수출역군의 선배다.

1956년 영화 ‘자유부인’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귀부인-꽃미남 미팅, 또는 고관대작-젊은여성 만남을 주선하던 ‘마담뚜’라는 신조어는 필부필부의 맞선이나 대학가 소개팅 주선자에게도 붙여졌다. 그 해 대통령선거 때 신익히-장면 정ㆍ부통령 입후보자가 이승만 정권에 도전하면서 내세운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시대정신으로 등장했고, 이승만은 ‘구관이 명관’으로 응수했다.

1957년 대통령 아들 사칭범 강병성은 법정진술을 통해 ‘사바사바’라는 정체불명의 단어를 일약 유행어 반열에 올렸다. 그는 “내가 대통령 아들이라 했더니 온갖 아첨을 하더라. 돈만 있으면 언제라도 ‘사바사바’해서 뭐든 할 수 있는 게 오늘의 세태가 아니냐”고 말해 죄를 짓고도 박수를 받았다.

 ▶1960~70년대= 1961년 박정희 쿠데타 세력의 공약사항인 ‘민생고 해결’은 끼니를 채웠느냐를 묻는 대중언어가 됐다. 한ㆍ일 국교정상화 협상 때엔 ‘저자세’라는 지적이 일상언어 수준의 유행어가 됐다. 1970년 3월 17일 밤 권력층과의 숱한 소문 속에 피살된 정인숙 사건이 터지자 ‘세상에 믿을 놈 없다’는 의미를 담은 ‘오빠조심’이 민초 사이에 널리 퍼져 나갔다.

자유를 억압하는 개발독재가 계속되면서 ‘쨍하고 해뜰날’을 부른 송대관은 선풍적인 인기를 모아 그 해 가수왕에 올랐다. 학교에 촌지를 갖다 바치는 학부모 모습을 풍자한 ‘치맛바람’, 1978년 공화당 성모 의원의 여고생 추행사건을 계기로 등장한 ‘영계’, 1977년 강남아파트 대단지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활보하던 ‘복부인’ 역시 서민 사이에 크게 회자됐다.

▶1980년대= 신군부의 정치활동 금지 조치,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등의 과정에서 나온 ‘싹쓸이’는 슬픈 아픔을 묻은 채 냉소적인 어휘로 서민 사이에 쓰여졌고, 좋은 패를 멋대로 가져가는 ‘전두환식 고스톱’이 나올 정도로 ‘오야(주인) 맘대로’라는 말도 신군부에 대한 반감과 맞물려 시민 사이에 널리 퍼져 나갔다. 이런 와중에 신군부에 대한 저항의식은 ‘민중’이라는 단어를 널리 확산시켰다.

1980년대엔 매년 73만~75만명으로 대입 응시생이 사상 최고를 경신하면서 교훈처럼 나온 말 ‘3당4락(3시간 자면 붙고 4시간 자면 떨어진다)’, 뭔가 깔끔하지 못할 때 쓰는 ‘찝찝하다’, 노태우 대통령 후보가 육사 동기인 전두환의 실정을 딛고 대통령이 되기 위해 호소했던 “나 이사람 믿어주세요’ 등이 유행어 반열에 올랐다.

1988년 탈주범 지강헌이 인질극 와중에서 내뱉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세기의 명언으로 자리잡았다. 고 최진실을 일약 스타 반열에 올린 CF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 고두심의 ‘잘났어 정말’(KBS2 드라마 사랑의 굴레)은 남성을 쥐락펴락하는 여풍당당의 서막이었다.

▶1990년대= 지금의 40대가 취업난, 스펙 경쟁, 어학연수 등 고난의 길로 접어든 1990년대 들어 배낭족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다. 1990년에는 유행어가 봇물처럼 나왔다. 최고를 뜻하는 CF카피 ‘따봉’,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등장한 ‘뻥이야’ ‘영양가 없는 소리’ ‘됐네 이사람아’, 그리고 변진섭이 부른 ‘희망사항’ 등이 쏟아졌다.

1992년 김영삼 후보가 ‘갱제를 살리자’고 강조했고, 이듬해 이건희 삼성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보자’며 기업 체질 개선을 강조했다. 1993년 ‘오렌지족’ ‘야타족’이 등장할 무렵, 민주계에서 밀려난 박준규 국회의장이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남긴 채 정치권을 떠났다.

IMF 구제금융기가 시작된 1998년에는 ‘방 빼’ ‘책상 빼’라는 주인집 아저씨와 사장님의 말이 서민의 일상생활에까지 깊이 파고들었고, 실직과 관련된 사오정(사십대와 오십대는 정년퇴임할 나이), 이태백(이십대 태반은 백수), 삼팔선(38세가 되면 퇴출 걱정), 오륙도(50~60대까지 회사 다니면 도둑놈), 조기(조기퇴직), 명태(명예퇴직), 황태(황당퇴직), 알밴명태(퇴직금 두둑한 명퇴자), 생태(회사 압박에도 버티는 사람) 등 우울한 유행어가 등장했다.

고달픈 와중에도 가수 이정현 히트곡 ‘바꿔’는 1999년 최고의 유행어로 자리매김했고, 인터넷의 보급으로 ‘아녀셔여’ ‘어솨여’ ‘ㅋㅋㅋ’ 등 ‘명랑 유행어’가 민초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달랬다.

함영훈 선임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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