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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석의 상상력사전> 인종
지난달 29일 열린 미국 배우조합상 시상식에서 3관왕을 차지한 ‘헬프’는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엄존했던 1960년대 미시시피를 배경으로 흑인 가정부의 신산한 삶을 그린 휴먼드라마다. 백인 상류층으로부터 모멸과 냉대를 당하면서도 그들의 아이를 키우고, 온갖 뒷바라지를 다했던 흑인 여성의 이야기가 한 젊은 백인 여성의 펜 끝을 통해 책으로 세상에 알려지기까지의 과정을 따뜻하고 유쾌하게 담아내 호평을 받았다. 배우조합은 이 영화에서 가정부로 호연했던 흑인 여배우 바이올라 데이비스와 옥타비아 스펜서에게 각각 여우 주ㆍ조연상을 안겼다.

미국 영화의 초창기이자 현대 영화의 태동기 걸작으로 꼽히는 1914년 영화 ‘국가의 탄생’이 영화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이자 최악의 인종차별적 영화로 꼽히는 것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만한 수상 결과였다. ‘국가의 탄생’에선 백인우월주의단체인 KKK단이 영웅시되고, 흑인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감이 공공연히 드러난다.

미국은 1960년대까지도 인종차별이 공공연히 존재했다. 특히 ‘헬프’의 배경이 되는 미시시피 주가 심했다. 이곳은 전통적으로 목화 경작이 유명한 지역이며, 미국에서도 흑인인구 비중이 높아 인종차별을 소재로 한 할리우드 영화의 단골무대가 돼 왔다. 실제 ‘따로 그러나 평등하게(seperate but equal)’로 요약되는 흑백분리정책 및 인종차별법은 1950~60년대 흑인민권운동으로 인해 미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철폐됐으나 마지막까지 잔존해 있던 지역이기도 했다. 1960년대 흑인민권운동가나 흑인을 대상으로 한 백인우월주의자의 테러가 많이 일어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 ‘미시시피 버닝’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미시시피 버닝’에서는 “야구 좋아하세요?” “예, 물론이죠. 당신도 아다시피 야구를 할 때만은 흑인이 백인을 상대로 방망이를 휘둘러도 폭동이 일어나지 않거든요”라는 대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백인 부부가 거리의 흑인 소년을 입양해 프로풋볼 선수로 성장시킨다는 내용의 샌드라 블록 주연 ‘블라인드 사이드’의 배경 역시 미시시피다.

미국 아카데미상 연기 부문에서 첫 흑인 수상자는 1940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해티 맥대니얼이고, 첫 남우주연상 수상자는 시드니 포이티에(1963), 여우주연상 수상자는 할 베리(2001), 남우조연상 수상자는 루이스 고세트 주니어(1982)다. 지난해까지 83년 역사의 아카데미상에서 흑인이 가져간 남녀 주ㆍ조연상 트로피는 13개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혹시 아부다드, 에네스 카야, 수딥 바느지, 마붑 알엄 펄럽, 칸 모하마드 아사두즈만 나자루딘, 홀먼 피터 로널드, 에숀쿠로브 팔비스 등 배우들의 이름은 아는지? 이자스민은?

‘초능력자’ ‘방가? 방가!’ ‘반두비’ 등 한국영화에 출연했던 외국인 배우들. 이자스민은 ‘완득이 엄마’다. 이제 한국은 다인종 사회에 들어섰고 영화는 이를 뚜렷히 보여준다. 하긴 지구촌에는 그냥 60억명의 인구, 60억개의 인종이 있는 게 아닐까.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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