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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색다른‘가족’의 유쾌한 해체
다인종 시대 컬러풀한 가족 영화‘파파’…전형적‘착한 이야기로’로 풀어낸 따뜻한 코미디
지난 1월 10일 저녁 서울의 한 극장. 팝콘과 음료수를 든 관객이 입장권의 좌석번호를 확인하며 자리를 찾아가고, 어른은 어린아이를 부산스레 객석에 앉히는 등 떠들썩한 풍경은 영화가 시작되기 전 여느 상영관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피부색만큼이나 다양한 억양의 한국어와 그 틈을 비집고 영어와 중국어, 태국어 등 국적을 짐작하기 어렵게 각양각색인 외국어가 섞여드는 분위기는 여기가 어딘가 싶게 사뭇 달랐다. 영화 ‘파파’의 다문화가정 초청 시사회 현장이었다. 한국에서 다문화가족을 이룬 중국인이라고 소개하며 능숙한 한국어 구사능력을 보여준 20대 한 여성 관객은 상영시간 내내 옆자리에 앉은 지인에게 나즈막한 목소리로 어려운 대사를 중국어로 설명해줬다. 영화가 계속되는 동안 객석에선 표현이 각각인 짧은 외국어 감탄사가 튀어나왔고, 인종과 피부색은 달라도 소리는 똑같은 웃음도 터져 나왔다.

‘파파’(감독 한지승)는 미국을 배경으로 했지만 이미 국내에도 찾아온 다문화 시대의 새로운 가족상을 유쾌하게 보여주는 코미디다. 혈연 없이 ‘법적’으로만 얽힌 한국인 아빠와 한국계 미국인 맏딸, 아랍계 둘째딸, 흑인 아들, 백인 쌍둥이소년, 스페인계 막내딸이 벌이는 소동을 담았다.

한국의 연예계에서 제법 잘나갔던 매니저 춘섭(박용우)은 자신이 데리고 있던 톱스타가 미국으로 도망치는 바람에 바다를 건너 애틀랜타를 찾는다. 하지만 쫓는 상대의 종적은 묘연하고 자신은 불법체류자 신세가 돼 강제출국 당할 위기에 처하자 춘섭은 거액을 주고 밤무대 가수(심혜진)와 위장결혼을 한다. 하지만 결혼 직후 신부가 교통사고로 즉사하면서 그녀가 생전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면서 남긴 6명의 아이들을 맡게 된다.


졸지에 어머니를 잃은 맏딸 준(고아라)은 아버지도 다 다르고 인종과 피부색도 다 각자인 5명의 동생을 정성으로 보살펴왔지만 법적 보호자 없이는 보육원으로 뿔뿔이 보내야 할 상황. 동생들과 헤어지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춘섭을 법적이나마 ‘아빠’로 들이기로 한다. 춘섭은 이들과 기묘한 동거를 시작했지만 이름뿐이나마 자식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도망간 연예인만 찾으면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가 재기할 기회만 호시탐탐 노린다.

그러던 중 춘섭에게 돈을 투자한 한국 연예계의 ‘큰 손’이자 흉포하기 이를 데 없는 고사장(손병호)이 미국으로 건너와 춘섭은 사면초가의 상황에 처한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춘섭의 눈에 띈 것은 준의 뛰어난 춤과 노래실력. 밤무대 가수였던 어머니의 끼를 물려받은 준은 춘섭의 제안대로 동생들을 위해 거액의 상금이 걸린 미국의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하기로 한다.

‘착한 영화’의 전형적인 이야기를 고수하는 ‘파파’는 아빠 역할에는 도통 관심이 없던 춘섭과 어머니의 평탄치 못한 삶 때문에 마음 깊이 상처를 안고 세상에 마음을 열지 못하던 준이 동생들과 함께 점차 한가족이 돼 가는 과정을 담았다. 미국 이민국 담당요원 앞에서 생면부지의 아빠와 자식이 ‘가족인 척’ 연기하는 에피소드나 ‘다인종가족’의 구성원이 저마다의 개성과 특징을 드러내는 일화는 적잖은 웃음을 준다. 다만 줄기를 잇는 매듭은 다소 허술하거나 작위적인 것이 아쉬운데, 그 틈은 배우의 호연이 메운다. 박용우는 나쁜 듯 착한 듯 어설픈 듯한 캐릭터로 코미디를 소화해 어느 역을 맡아도 제 몫을 해주는 배우라는 것을 입증했다. 뛰어난 춤과 노래솜씨를 보여주는 고아라는 영어 연기에서도 마치 할리우드 영화 속 아시아계 배우처럼 능란하게 감정과 대사를 소화했다. 주연으로 내세울만한 20대 초반의 스타급 여배우가 드문 한국 영화계에서 단연 기대주로 꼽힐 만하다. 2일 개봉. 12세 관람가.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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