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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러진 화살’에 이어 ‘범죄와의 전쟁’까지…사법권력, 한국영화의 영원한 ‘안타고니스트’인가
“여기는 내가 얘기했던 우리 집안사람 최익현씨다” “반갑습니다. 최주동 (검사)입니다.” “어, 그래 반갑네, 최검사”

“익현씨는 니랑 촌수로 따지면 한 10촌 정도 되고, 그니까 느그 아버지, 우리 형의…할아버지의 9촌동생의 손자가 바로 익현씨다”

오는 2일 개봉하는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 등장인물 둘이 종친 어른이라는 사람의 소개로 처음 만나 나누는 대화다. 주인공 최익현(최민식 분)은 1980년대 말~1990년대초 부산의 최대 계파 조폭 보스로 지역 내 유흥업소 운영과 건설관련 각종 잇권에 개입한 인물이고 최검사는 부산지검의 중견 검사다. 최익현이 종친회를 통해 멀고 먼 혈연을 찾아내고 검찰 내에 있다는 ‘집안사람’을 소개받는 자리. 물론 ‘로비’를 위한 것이다. 최검사는 이 인연으로 최익현의 폭행, 범죄조직결성, 이권개입 혐의가 불거질 때마다 법조계 내 인맥을 동원해 압력을 넣고 ‘뒷배’를 봐준다. 


이어지는 신에서 부장검사까지 대동하고 최검사가 최익현과 만나 ‘요정’에서 향응을 받고 금두꺼비를 뇌물로 수수하는 장면도 있다. 심지어 사건 수사 중 형사피의자인 최익현을 담당한 검사마저 술자리에 불러내 함께 향응을 즐긴다. 담당검사인 조범석이라는 인물은 1990년대 노태우 정부가 선포했던 ‘범죄와의 전쟁’을 최전선에서 이끌던 강성, 열혈검사임에도 불구하고 부장검사와 선후배까지 동원된 압력에 기세가 주춤한다. ‘범죄와의 전쟁’에서 사법부는 조폭과 이룬 범죄ㆍ비리 커넥션의 중심에 있다. 마치 지난 2010년 4월 부산ㆍ경남지역의 한 건설사 대표가 폭로해 파문을 일으킨 ‘검사와 스폰서’편과 판박이다. 영화 속에선 검찰 수사로 위기에 몰린 최익현이 로비명단이 적힌 수첩을 흔들며 사법부가 자신은 건드릴 수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는 대목도 있다. 



과연 사법권력은 한국사회의 영원한 ‘안타고니스트’(악역, 적대자)일까. 사법권력이 한국영화로부터 난타당하고 있다. ‘도가니’에 이어 일명 석궁사건을 다룬 ‘부러진 화살’이 전사회적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가운데 ‘범죄와의 전쟁’서도 사법권력은 비리의 온상, 부패의 백화점으로 묘사돼 사법권을 향한 국민적 불신에 기름을 부었다. 



개봉 13일만에 관객 200만명을 돌파하며 흥행기세를 높이고 있는 ‘부러진 화살’은 상영 전후부터 뜨거운 논란에 휩싸였다. 대법원은 이례적으로 ‘부러진 화살’에 대해 “흥행을 염두에 둔 예술적 허구”라고 규정하면서도 “1심에서 이뤄진 각종 증거조사 결과를 의도적으로 외면한 채 항소심의 특정 국면만을 부각시켜 전체적으로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한 데 이어 양승태 대법원장은 지난 30일 “사법부의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부러진 화살’은 지난 31일 MBC 100분 토론의 의제로도 설정돼 “영화의 진실과 핵심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의 반영”이라는 논지의 의견과 “실화 바탕의 영화임에도 사실을 왜곡했다”는 견해가 팽팽히 맞섰다. 실제사건의 당사자인 김명호 교수가 케이블TV의 토론프로그램에 초청되는가하면 사법부는 급기야 서울중앙지방법원(이진성 법원장) 주최로 오는 6일 국민과 대화하는 행사를 마련했다. 



여기에 더해 ‘범죄와의 전쟁’까지 더해지면서 사법부의 상황은 더욱 곤혹스러워지게 됐다. 이 작품은 1990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윤종빈 감독은 사법부의 각종 비리상을 묘사한 근거에 대해 “80%가 취재결과”라고 밝혔다. 윤 감독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특정 사건이 모티브가 된 것은 아니지만 현 정부 들어서 정치적인 분위기가 폭압적으로 흘러가는 걸 보면서 죽은 아버지의 시대가 되돌아오고 있다는 느낌을 크게 받았다, 굳이 따지자면 지금의 한국 현실이 영화의 동기가 됐다”고 밝혔다. 극중 최민식이 종친회의 연줄로 검찰에 로비를 벌이는 대목에 대해서는 “제 아버지가 당시 부산지역 경찰 간부였는데 사돈의 팔촌까지 청탁전화 받는 게 일이었다”고 말했다. 윤 감독은 최근 한국영화가 사법부를 비판적으로 그리는데 대해 “세상에 대해 가진 사람들의 불만이 경찰, 검찰, 사법, 언론 등 모든 권력집단에 대한 불신으로 향하고 있다”며 “그래서 대중들이 그같은 영화에 (열광적으로) 반응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부당거래’에서 ‘도가니’ ‘부러진 화살’ ‘범죄와의 전쟁’까지 영화 속 사법권력은 사학, 기업, 범죄조직, 정치권력과 결탁됐고, 각종 향응과 뇌물로 부패돼 공정한 수사와 재판이란 아예 불가능한 세력이다. 과연 ‘영화가 호도하고 왜곡한 현실’일까, ‘사회적 현상과 국민적 감정의 반영’일까. 이들 영화의 잇따른 흥행이 말해주는 진실은 무엇일까.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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