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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새 연비규제 비웃는 신차들…연비 높이려 사전인증 '봇물'
정부가 새로 마련한 자동차 신(新)연비규정이 자동차 업체들의 ‘꼼수’로 오히려 소비자들의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올해 1월부터 출시되는 모든 신차들은 새 규정에 따라 연비를 측정해야 한다. 새 연비규정은 동일한 차량일 경우 옛 규정에 비해 평균 24%가량 연비효율이 낮아진다. 때문에 업체들은 구 연비규정을 선호한다.

31일 지식경제부 산하 에너지관리공단에 따르면 지난 12월에 연비 인증절차를 마친 차종은 36종에 달한다. 

지난해 전체 연비 인증절차를 받은 차종이 317대인 것을 감안하면 12월에 연비 인증을 받은 차량이 유독 많다. 모두 연비에서 유리한 혜택을 받기위해서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렇게 지난해 연비규정으로 인증을 받은 차량들이 올해 1월이나 늦게는 2월 혹은 심지어 3월까지 늦춰져 출시된다.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올해 신 연비규정으로 인증을 받고 출시된 경쟁업체 차량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연비 차량으로 보이기 위한 눈속임 전략이다. 소비자들은 당연히 헛갈릴 수밖에 없다.

▶BMW도, 르노삼성도 모두 나꼼수= 실제로 지난 2일 르노삼성자동차는 자사 대표 차종인 SM5 모델의 연비 개선형 모델인 ‘SM5 에코 인프레션’을 출시했다. 트랜스미션(변속기) 부분을 개선해 기존 리터당 12.5㎞였던 연비를 리터당 14.1㎞로 약 13%나 끌어올린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상에는 이런 변화에 의문을 제기하는 소비자들로 넘쳐나고 있다. 르노삼성 측이 2012년부터 경쟁사 신차들의 경우 신 연비규정에 따라 기존 규정보다 불리한 조건에서 인증을 받게 될 것을 감안한 ‘착시 유도 전략’이라는 것이다.

한 네티즌은 “구 연비규정이 적용되는 시기에 미리 변속기만 바꿔달은 차로 연비를 끌어올려서 신 연비규정이 적용되는 해에 내놓는 것은 지나친 눈속임”이라고 비판했다.

즉, SM5 에코 임프레션 차량의 경우 아무리 변속기를 바꿔달았다고 해도 신 연비규정에 따랐다면 기존 SM5 연비(리터당 12.5㎞)만큼도 나오기 힘들었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차를 이용해 연비 꼼수를 부린 차는 SM5만이 아니다. 에너지관리공단에 따르면, 지난 10일 출시한 BMW 미니 디젤(리터당 20.5㎞)이나 18일 출시한 도요타의 뉴캠리 하이브리드(리터당 23.6㎞) 등은 새 연비규정이 적용되는 2012년에 출시됐지만 과거의 연비를 표기하고 있다.

심지어 아직 출시되지 않은 현대차 쏘나타 2.0 가솔린ISG나(2월 15일 출시 예정), 한국GM 말리부2.0 LPG(3월 5일 예정)도 미리 지난해 12월에 연비 인증을 받아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말 들으면 ‘바보’?=이와는 대조적으로 수입차 업체인 크라이슬러코리아는 올 1월 출시할 300C의 디젤 모델을 12월에 새 제도로 연비인증을 받았다. 구 연비규정으로 보다 유리한 조건을 적용받을 수 있었지만 자진해서 신 연비규정을 따랐다.

지난 25일 출시된 재규어의 고성능 스포츠카 XKR 5.0SC나 9일 출시된 크라이슬러 300C 디젤도 신연비규정을 따랐고, 오는 2월 6일 출시가 예정된 폴크스바겐의 시로코R라인도 신연비규정을 따른다.

같은 시기에 출시되는 차량들이지만 서로 다른 규정으로 측정된 연비표를 달고 있어 형평성 논란도 일고 있다.

정부가 마련한 신 연비규정은 기존에 비해 보다 실제 운전상황과 비슷한 조건을 만들어 현실화했다는 평가가 많다. 실제로 지난해 에너지관리공단이 자체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운전자의 69.4%가 표시연비와 체감연비 사이에 괴리가 크다고 말하고 있었다.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신 연비규정으로 차량 구매 시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러나 자동차 업체들은 신 규정과 구 규정이 혼재하는 틈을 자사에 보다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전략을 낸 것이다.

지식경제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 12월에 지난해 기준으로 연비 인증을 받은 업체들에 올해 3월까지는 해당 차량을 모두 출시하라고 통보해놓은 상황”이라며 “만일 이 기한을 넘어갈 경우 다시 신연비규정으로 측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3월 안에 출시된 차량이 올 한 해 계속 구 연비에 따른 인증 수치로 마케킹을 펼칠 수 있게 돼 혼란을 막을 수는 없게 됐다.

일부 소비자들은 “지난해에 미리 연비를 측정해 올해 신모델로 연비강화 모델인 것처럼 새 출시하는 것은 사기나 다름없다”며 “성능향상 모델이 아닌 경우 정부가 유예기간 없이 강제로 신 연비규정을 따르도록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자동차왕국으로 불리는 미국도 지난 30여년 동안 정부와 자동차 업계가 연비 규제와 관련해 줄다리기를 해오고 있지만 결국 친환경 흐름에 따라 보다 강화된 연비 규제 적용이 단계적으로 시행되고 있다”며 “국내 자동차 업체들도 순간의 ‘꼼수’보다는 소비자들에게 정확한 정보 전달의 차원에서 마케팅을 펼치는 것이 장기적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정식 기자@happysik

yj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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