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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대 재벌가 ‘탐욕의 퍼즐’ 끝엔…
스웨덴 소설 원작의 스릴러‘밀레니엄’…기업 권력에 상처받은 기자와 천재 해커의 섬뜩한 복수극
어둡고 음산하며 음울하고 무거운 록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고딕 인더스트리얼풍의 이미지가 흐르는 한 편의 뮤직비디오인 오프닝 타이틀부터 이 영화의 방향은 명확하다. 유럽 100년사 속 어둠의 망령, 나치즘과 여성혐오, 연쇄살인으로 얼룩진 스웨덴 한 재벌가의 방대한 역사를 담은 스티그 라르손의 추리소설을 훨씬 더 빠르고 리드미컬하며 화려하고 스타일리시한 영상으로 스크린에 옮기겠다는 야심인 것이다.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감독은 ‘세븐’ ‘파이트클럽’ ‘소셜 네트워크’의 데이빗 핀처. 음악 감독은 나인 인치 네일스의 트렌트 레즈너와 아티큐스 로스다. 트렌트 레즈너는 ‘소셜 네트워크’에서 데이빗 핀처 감독과 호흡을 맞췄으며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다.

영화의 얼개와 극의 진행, 핵심적인 대사와 장면은 원작소설에 충실하다. 하지만 복잡한 관계의 인물은 과감하게 줄이고, 극중 방대한 과거사는 단호하게 뛰어넘어간다. 원작 소설을 보지 않고 영화를 접한 관객들은 초반 몇 십분간이 혼란스러울 수 있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158분이다.

기업 비리와 부패 재벌 폭로를 전문으로 해온 신념 강한 경제 기자 미카엘(대니얼 크레이그)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밀레니엄’이라는 비판적 경제전문지의 공동주인 그는 비리 기업주 베네스트룀을 고발한 기사를 쓰지만 명예훼손소송에 시달리다 결국 증거 부족으로 패소한다. 기자로서의 불명예와 경제적 파산 위험까지 안게 된 그는 어느 날 또 다른 거대 가족기업인 방예르사의 은퇴한 수장 헨리크 방예르(크리스토퍼 플러머)로부터 40여년 전 손녀가 살해된 의문의 사건을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물론 거액과 더불어 미카엘 자신을 패소시킨 비리 기업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매력적인 제안이 조건으로 붙었다. 미카엘은 조사 중 마주친 괴짜 천재 해커인 젊은 여성 리스베트(루니 마라)와 함께 방예르 가문을 둘러싼 수수께끼의 퍼즐을 하나씩 맞춰나가게 된다. 그들이 마주한 방예르의 가계는 탐욕과 나치즘, 여성학대로 얼룩져 있었다. 


미카엘은 기자로서의 신념과 정의감뿐만 아니라 중년의 권태, 이혼한 독신의 고민까지 안고 있으며 냉소와 자유분방함이 섞여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하지만 소설 속에선 풍부하게 묘사된 그의 성격과 과거 경력이 스크린으로 넘어오면서 상당 부분 생략되거나 압축된다. 그래서인지 대니얼 크레이그는 매력적이고 연기 잘하는 스타지만 이번 영화 속에서만큼은 표정이 애매하고 몸짓은 굳어있다. 반면 바싹 마른 온 몸을 피어싱과 문신으로 감싸고 있으며 가족 재킷에 모터사이클을 애용하고 다른 사람들과는 제대로 눈도 못 마주치는 ‘사회성 제로’의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이번 작품에서 단연 돋보이는 캐릭터다. 비교적 낯선 여배우 루니 마라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인해 정신병력과 범죄경력이 있고 충동적이고 괴팍하며 대인관계에 큰 문제를 갖고 있지만 뛰어난 정보수집 능력을 발휘하는 이 20대 천재 해커 역할을 빼어나게 해냈다. 자신을 강간한 후견인을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으로 복수하는 장면을 섬뜩할 만큼 극적으로 그려냈다.

총 3부로 이어진 스티그 라르손의 원작소설은 스웨덴판으로는 3부가 모두 영화로 제작됐으며 이중 1부가 지난 5일 한국에서도 개봉했다. 할리우드판 역시 1부의 리메이크작이다. 소설과 두 편의 영화는 모두 같은 골격과 DNA를 갖고 있지만 맛은 서로 다르다. 원작인 소설은 당연히 풍성하고 디테일한 맛이 최고이고, 스웨덴 버전은 캐릭터 구현과 짜임새에 있어 할리우드 버전에 앞선다. 반면 화려한 맛과 빠른 리듬감, 분위기 잡는 솜씨는 역시 할리우드 영화가 최고다.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에서 흐르는 곡은 트렌트 레즈너가 연주하고 한국계 여성로커 캐런 오가 부르는, 레드 제플린 원곡의 ‘이미그란트 송’이다. 12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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