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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찰나의 태양…영겁의 시간이 너울댄다
숨은 명소 고성 옵바위 뜨거운 일출에 가슴 속 간절한 소망 붉게 영글고…갯바위 아련한 온기 지친 마음 적시네
몰아치는 인파에 미뤄둔 해돋이

뒤늦게 갖는 나만의 새해 의식…


송지호 철새들 더불어 날 반기고

산책로 따라 만나는 왕곡마을

어릴적 추억이 뛰노는 듯 포근



연초 출사객들로 북적거리는 일출 명소들에 가보면, 쉴 새 없는 카메라 셔터 소리에 고즈넉한 시간을 가지기 어렵다. 해돋이를 감상하며 소원을 빌고 싶던 마음이 사라진다. 새해가 시작되고 보름이 다 돼 가지만 아직 새 바람들이 마음에 그려지지 않는다면, 숙연한 해돋이 여행을 떠나자. 추암, 정동진 등 일출명소와 견줘 손색없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강원도 고성이다. 60년 만에 돌아온 ‘흑룡’ 의 해. 뜨겁게 빌고, 간절히 바라자. 올 한 해도 ‘소원 성취’다.

▶바다ㆍ철새ㆍ일출 ‘3박자’가 딱=해가 뜨기 전부터 앞바다엔 고깃배들이 뜬다. 새벽 일찍 나선 배들이 검붉은 바다 위를 고즈넉하게 가로지르고, ‘끼룩’거리는 갈매기들의 신호와 함께 해가 뜨기 시작한다.

공현진 방파제와 나란히 붙은 옵바위의 소담스런 공간 사이로 해가 뜬다. 옵바위 일출이 그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 사뿐히 얼굴을 내밀던 태양이 급작스럽게 바위 틈으로 힘차게 떠오른다. 가장 깊고 은밀한 곳에서 소원을 끄집어낸다. 나지막이 읊조리는 순간, 바람은 더욱 간절해진다.

옵바위가 토해낸 듯 태양은 순식간에 온 바다를 물들인다. 때마침 송지호에서 날아오른 철새 무리가 붉은 하늘을 채운다.

이윽고 공현진 해변에 출사객들이 찾아든다. 숙소를 해변가에 잡으면, 방 안으로 밀려드는 붉은 기운을 창가에 서서 그대로 취할 수도 있다.

해가 떠오른 뒤 공현진 방파제로 나선다. 방파제 뒤편으로 오가는 길이 뚫려 있다. 덩그러니 솟아 있는 갯바위에는 아직도 붉은 기운이 아련하다.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송지호에선 철새, 왕곡마을선 초가 구경=옵바위 뜨거운 일출에 없던 소원이 생긴다. 아직 하늘에 바라는 게 더 있어도 걸음을 옮기자. 송지호와 왕곡마을이다.

송지호에선 큰고니, 청둥오리, 민물가마우지 등 아름다운 철새들이, 왕곡마을에선 아랫목 뜨끈한 전통가옥이 기다린다. 옵바위 일출을 보고 하루 쉬어 갈 수도 있고, 전날 왕곡마을에서 잠을 청한 뒤 일출 구경에 나설 수도 있다. 옵바위, 송지호, 왕곡마을 모두 승용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송지호 호수 한편에는 철개 관망타워가 솟아 있고, 울창한 송림과 함께 청명한 물빛이 철새 구경을 더욱 낭만적으로 만든다. 호수에는 도미, 전어 등 바닷고기와 숭어, 황어 등의 민물고기가 함께 서식하며, 호수 한가운데는 송호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운치를 더한다.

호숫가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걷다 보면 전통 한옥마을인 왕곡마을을 만난다. 왕곡마을은 양근 함씨, 강릉 최씨, 용궁 김씨의 집성촌으로 19세기를 전후해 건축된 북방식 전통가옥들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마을 입구엔 하얗게 눈 쌓인 초가지붕이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수십여 채의 전통가옥 사이로 흐르는 실개천 앞에 서면 마치 과거로 회귀한 듯한 착각. 마냥 노근해지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훈훈한 어촌풍경 지나, 사찰서 마음 추스르기=공현진항에서 7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향한다. 고성 나들이가 더욱 옹골차지는 순간. 복작복작 작은 어촌마을, 거진항이다. 공현진과 맞닿은 거진항은 규모는 작지만 아침의 어촌 풍경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곳. 고깃배에서 막 쏟아진 도루묵과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들의 손길이 시끌시끌하면서도 신명난다.

최근 명태 잡이가 뜸해져 옛 명성은 사라졌지만 항구 상가에 널린 창난젓, 명란젓만 봐도 군침이 돈다. 거진항 뒤편으로는 화진포까지 해안 드라이브길이 시원하게 뚫려 있다. 거진등대에서 잠시 멈춰 항구와 바다를 내려다보는 것도 묘미.

돌아오는 길엔 진부령길에 위치한 건봉사에 들른다. 금강산 줄기에 소담스럽게 담긴 사찰은 고성팔경 중 1경에 속한다. 또한 전국 4대 사찰 중 하나로, 전 세계 두 개뿐이라는 석가모니 진신치아사리가 봉안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겨울 바다의 숨막히는 일출에 감동해 두서 없이 쏟아내던 바람들을 눈 덮인 산사를 거닐며 추스르자. 비워낼수록 차곡차곡 ‘진짜’ 소원이 쌓인다.

박동미 기자/pd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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