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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석의 상상력사전> 가족
결혼해 아들 딸 낳고 살고 있는 중년의 3남매가 조카들을 대동하고 모여 앉아 밥을 먹는다. 구성원은 맏딸, 둘째딸, 막내남동생이다. 겉으로는 단란한 가족 식사 풍경이다. 둘째누이가 막내남동생의 어린 조카들에게 말한다. “너희들은 공부잘해라.” 누가 들어도 덕담이지만 그 말끝에 붙는 소리에 가시가 돋았다. “니네 아빠가 중졸인 거 속이고 장가갔잖아. 그거 니네 엄마가 알까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데…. 그러니까 니네는 잘해.” 남편이 아이들 앞에서 대놓고 무시당하자 눈꼬리를 치켜뜬 막내동서. “뭐 형님도 중졸이시잖아요?”. 그러자 둘째누이의 대꾸. “나는 대졸이지.” “방통고와 방통대시면서 뭘?”

신경전은 계속된다. 둘째누이가 미용사인 딸자랑을 한다. “너, 지난번에 탔던 (미용대회) 상이 뭐라고 했지?” 그러자 동서가 또 말을 가로막는다. 조카를 두고 “그래, 네가 공부는 좀 못했지만 손재주는 좋았다”고 받는다. 분위기가 점점 싸늘해지고 험악해진다. 막내동서는 누이의 뒤통수에 대고 확인사살에 나선다. “어머, 형님, 뒤통수 봐봐, 머리가 다 빠지셨네! 사위는 뭘해? 장모님이 이렇게 됐는데 약 한 첩도 안 해드리고?” 늘 그렇듯 누이와 부인의 신경전 사이에서 남자란 존재는 한없이 무능하고 무력하다.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해 남동생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한마디. “밥 먹자”.

영화 ‘밍크코트’에 나오는 가족의 풍경이다. 간드러지는 목소리, 서로 위해주는 듯한 표정, 환하게 웃는 얼굴을 하고 은근 슬쩍, 그러나 날선 비수를 서로의 등과 가슴에 마구 꽂는다. 이 영화 속 가족들은 뇌사상태에 빠져 연명 치료 중인 어머니의 존엄사 결정 여부를 두고 마침내 갈등을 폭발시킨다. 서로가 꼭꼭 숨겼던 상처가 드러난다.

이제 설이 코앞이다. 다시 또 모여서 얼굴을 맞댈 가족이란 존재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자녀를 좋은 학교, 직장에 보내기 위한 유일무이한 목적을 위해 어머니의 정보력과 아버지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이 필요한 ‘프로젝트 공동체’(나임윤경 연세대 문화협동과정 교수, ‘그대 아직도 부자를 꿈꾸는가’ 중)일까. 단지 DNA로 묶이고 서로에게 의무뿐인 관계일까. 애정과 정서, 운명의 공동체일까. 가족이란 핏줄을 벗어나면 이룰 수 없는 것일까. 영화는 수많은 질문을 던져왔다.

미국의 거장 테렌스 멀렉 감독의 ‘트리 오브 라이프’는 거창하게도 빅뱅과 세포의 분열, 바닷동물에서 육지로의 진화, 인간의 탄생, 선사시대 등 경이로운 우주의 역사, 그 끝에서야 한 아버지와 아들 세대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가족이라는 운명이 수천년, 수만년간 얼마나 많은 우연과 필연이 집적돼 이루어진 결과물인지를 말하는 듯하다. 그렇게 소중한 사람들을 다시 만나서 할 말이 “누구는 어디로 이사갔다더라, 누구는 장학금을 받았다더라, 누구는 연봉이 얼마라더라” 혹은 “취직은 했니, 공부는 잘하니, 결혼해야지, 애인은 있니, 살 좀 빼야지” 같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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