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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학에게 면박 당한 법정 "사람들이 불쑥 들이닥치는 탓에..."
“여보게 진명, 정진을 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스님 계십니까’하고 불쑥불쑥 불일암에 들이닥치며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도무지 참기 어렵네 그려...” (법정 스님)

“스님, 그게 싫으시면 글 쓰지 마세요! 글을 쓴다는 건 사람을 부르는 일입니다. 그 사람들도 많은 고민 끝에 어렵사리 찾아오는 건데 그렇게 예의 없는 사람 취급하면 어떻게 해요? 저도 그 가운데 하나인데...” (진명 스님)
“그래, 진명이 말이 맞다” (법정 스님).

법정 스님이 생전에 후학(後學) 진명 스님에게서 여지없이 면박을 당하던 일화다. 일평생 무소유를 설파하고, 이를 실천했던 법정 스님이 입적(2010년 3월)한지 2년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법정, 나를 물들이다’(도서출판 불광)라는 책이 출간됐다.

책의 저자는 스님에게서 ’지광(智光)‘이라는 법명을 받으며 스님을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변택주 씨. 변 씨는 이 책에서 법정 스님과 30여년간 교유했던 전(前) 천주교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를 비롯해, 성철 스님 시봉일기로 유명한 원택 스님 등 19명의 목소리를 자세히 담았다. 그는 “스승이 홀로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펄펄 살아 숨쉬던 어른이었음을 알리고 싶어 책을 냈다"고 밝혔다.


이 책에는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일체의 형식을 버리고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한 조각가 최종태, 아름다운 찻잔으로 스님과 인연을 이어간 도예가 김기철, 침잠하는 화풍으로 소년소녀를 신비롭게 그리는 박항률, 따뜻한 추상화로 한국과 프랑스에서 이름이 높은 화가 방혜자, 농사꾼으로 변신한 방송인 이계진 씨 등이 그들이다.

또 스님의 어머니를 모신 사촌동생 박성직, 스님의 조카인 현장 스님,법정 스님과 종교의 벽을 허물고 영성을 나눈 장익 주교, 전세계를 돌며 고통받는 이들의 어머니 노릇을 하고 있는 원불교 박청수 교무, 종교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노일경 목사, 첼리스트와 결혼해 세상 속에서 부처님이 갔던 길을 따르는 돈연 스님 같는 종교인도 있다.

스님이 믿고 의지했지만 스님께 부담이 될까봐 스스로 행동을 조심하던 강정옥, 괭이 한 자루 들고 등산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파 내려오던 백지현, 스님이 왜 길상사에서 딱 하루만 묵으셨는지 사연을 들려주는 홍기은 씨 같은 평범한 이들과의 일화도 책에 수록됐다.



저자는 열아홉 명의 인물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이 어떤 식으로 법정 스님에게 물들어갔는지,법정 스님 또한 그 이들에게 어떻게 물들어 갔는지를 차분히 들려준다. 이 책은 법정 스님과 관련한 여러 저서 중 보다 내밀한 이야기를 전해준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도예가 김기철 씨는 스님에게 책과 영화를 종종 권하게 된 계기를 소개했다.김 씨는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전기 ‘첼리스트 카잘스,나의 기쁨과 슬픔’을 소개 해드렸어요. 그랬더니 그 이야기를 글로 쓰셨더라고요.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란 헬렌 켈러 자서전을 보내드렸더니 신문 칼럼에 쓰셨고요. 영화는 ’죽은 시인의 사회‘를 특히 좋아하셨지요.”라고 전했다.

이 책에는 법정 스님이 불가에 묻혀 있던 성철 스님의 책 ’선문정로‘ 등을 서점에 팔게 한 사연(원택 스님 편) 등 최초로 밝혀지는 이야기들이 다채롭게 수록돼 관심을 모은다. 352쪽. 1만5000원.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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