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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통채널 많아졌는데 제약은 더 심해져”
장 편소설‘ 반인간선언’ 펴낸 소설가 주원규
스스로가 무언가에 성난 듯

사흘 만에 840장 원고 탈고

토막난 ‘저주의 성배’통해

인간의 왜곡된 욕망 고발

보이지 않는 증오 실체찾기

성서의 메타포 곳곳 차용



“몸을 파괴함으로써 현재 우리 정신의 마비를 환기하고 싶었습니다.”

소설 ‘열외인종잔혹사’ ‘망루’ 등 사회적 이슈를 소설의 공간으로 끌어들여 작업해온 소설가 주원규(37)가 이번에 예의 또 다른 사회 리얼리즘 소설 ‘반인간선언’(자음과모음)을 펴냈다.

작가는 840장에 이르는 소설을 불과 사흘 만에 탈고했다. 홍대 앞 24시간 커피전문점에서 빵과 커피로 끼니를 때우며 무엇엔가 성난 듯 그렇게 순식간에 완성했다.

‘반인간선언’은 작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담긴 셈이다. 이번 작품은 전작 ‘망루’의 연장선상에 놓인다. 철거민과 대필작가의 소극적 저항을 그린 ‘망루’에서 한 발짝 더 현실에 다가가 모순을 심화하고 현실을 보다 체감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

소설은 어느날 광화문광장 한복판에서 잘린 손이 발견되는 엽기적 사건으로 시작된다. 강력계 형사 민서는 직감적으로 연쇄살인사건으로 규정, 사건을 떠맡아 범인을 추적해 나간다.

범인을 쫓는 또 다른 이는 현역 여성 국회의원 서희. 손의 주인은 그녀의 전 남편 대기업 CS화학의 연구원 정상훈이다. 아버지의 타계로 떠밀리듯 지역구 해능시에서 여당 의원이 된 서희는 3년 전 이혼한 남편의 소식을 그렇게 맞닥뜨리게 된다. 해능시는 우성조선이 지역경제의 버팀목이 돼온 곳이지만 직장 폐쇄 결정이 내려지면서 농성 중이다. 폐쇄 결정의 이유로 국가기반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신재생에너지사업의 민간사업자로 CS기업이 내정됐다는 얘기가 들린다.

서희는 사회적 유명인사인 정영문 신부의 양아들이었던 남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자괴감 속에 정상훈의 행적을 쫓는다. 민서 역시 범인을 좁혀가다 재미동포 외과의사 길승호에 닿는다. 미국에 입양됐다 파양된 뒤 정영문의 입적에 오른 길승호의 호텔 룸에서 서희와 민서가 발견한 것은 정상훈의 훼손된 시체.

소설은 스릴러 형식으로 빠르게 읽히지만 소설이 거느리고 나아가는 흐름은 폭이 넓고 깊다. 작가는 종교화ㆍ신성화해가는 세속의 권력에 주목한다. 사회구조는 오히려 소통채널이 많아지고 열렸지만 위로부터의 억압, 제약은 견고해지는 게 아닌가 밝혀내고 싶었다고 했다.

3년이 채 못 되는 기간에 일곱 편의 장편소설을 써내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소설가 주원규는 최근 ‘반인간선언’을 펴내며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오늘의 문학이 리얼리즘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작가의 ‘반인간선언’은 하나의 물음에서 시작됐다.

“ ‘과연 우리는 인간으로 살고 있는가’란 물음이었고, 지금의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고 선언한 거죠. 과연 지금 현실은 인간이 살 수 있는 프레임인가 근본적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고 대안교회 목회자이기도 한 작가의 이번 소설에는 성서적 메타포가 여럿 들어있다.

스스로 몸을 상해함으로써 고통스러운 정신을 보여주는 장치로 성서의 자해의 메타포를 끌어왔다. 또 손과 발, 귀와 입 등 7군데 신체 훼손은 성서 외전에 전하는 카인의 신체 훼손에서 따왔다.

작가는 문학의 힘, 효능을 옹호하는 리얼리즘 작가로 자신을 내세우지만 현실 속에서 문학은 무력하다는 인식이다. 서희가 농성 중인 크레인에 오르는 마지막 장면은 작가의 호소에 다름아니다. 이제는 사회지도층이 뭔가 감당해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다.

작가는 ‘문학은 현실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란 물음에서 멀어진 문학, 물음 자체가 진부해진 시대에 문학의 화두를 다시 불러오고 싶었다고 했다.

‘반인간선언’은 3부작으로 2권을 준비 중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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