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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곳니’가 흔들리고 빠질때…
세상과 단절된 채‘사육’되는 아이들·왕이 되려는 아버지…독재에 관한 기괴하고 통렬한 블랙코미디
“오늘 배울 단어는 ‘바다’입니다. 바다는 침실의 팔걸이 의자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그렇게 서 있지 말고, 바다에 앉아서 얘기하자’와 같이 쓸 수 있습니다.”

“엄마, ‘병신’이란 말은 무슨 뜻이죠?” “병신은 큰 램프라는 뜻이다. ‘병신을 끄면 집이 어두워진다’처럼 사용할 수 있다.”

‘고속도로’는 정원에 부는 강풍, ‘좀비’는 ‘뜰에 핀 노란 꽃’이라고 배우는 아들 딸들이 있다. 아버지는 영어로 된 재즈곡 ‘플라이 미 투 더 문’을 틀어놓고 “아빠는 우리를 사랑해, 엄마도 우리를 사랑해, 우리도 아빠 엄마를 사랑해…, 아름다운 우리집, 난 우리집을 좋아해”라는 엉뚱한 가사로 번역해준다. 기괴하고 통렬한 그리스의 블랙 코미디 영화 ‘송곳니’에 나오는 가족의 풍경이다.

이 영화는 겉으로는 완벽한 중상류층에 아름답고 단란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한 가족을 보여준다. 차를 탄 채 철문을 열고 들어서면 넓은 뜰과 수영장이 딸린 근사한 저택. 큰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중년의 가장과 순종적인 부인. 20대쯤의 큰딸과 10대의 아들, 딸로 이루어진 세 남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가족들의 ‘스위트 홈’에서 일어나는 일상은 이상하기 짝이 없다. 아버지는 성인기에 진입한 아들을 위해 외부로부터 여자를 데려와 침실에 넣어 준다. 들고양이를 비롯한 외부세계의 어떤 존재도 가족들의 세계로 들어설 수 없다. 마땅히 응징해야 하는 ‘외부의 침입자’다. 세 남매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태어난 이후 줄곧 세 남매는 외부 세계와 철저하게 격리되고 차단된 채 양육됐다. 아니 ‘사육’이다. 바깥을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가장뿐이다. 


이 집의 지배자는 아버지이자 남편인 가장이다. 그는 아내와 자식들을 완벽하게 지휘하고 통제하며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어낸다. 이 작은 왕국에서 가장의 존재는 가족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고 육체의 욕망을 풀어주며 바깥세상의 온갖 위험을 막아내는 존재다. 그는 자비와 은혜, 보호와 구속, 응징과 공포의 신이자 창조주이며 가족들은 그의 피조물이다. 그러나 그가 아들의 성욕 해소를 위해 데리고 온 회사 여직원이 자식들과 말을 섞고 모종의 거래를 하게 되면서 완벽한 화음을 이루던 왕국에는 조금씩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가장 성장한 큰딸은 바깥세상에 대해 궁금증을 갖기 시작하고, 집안에서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영화는 충격적인 결말을 향해 나간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아이들이 떠날 시기는 송곳니가 흔들리고 결국 빠질 때”라고. 큰딸은 바깥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파국적인 결단을 내린다. 권력과 지배가 인간의 본능이라면 반란과 자유 또한 유기체의 DNA 속에 각인된 본연의 욕망이다.

두 번째 영화에서 날카로운 송곳니 같은 감각을 보여준 그리스의 신예 감독 지오르고스 란디모스는 “이 작품은 지도자들과 거대 미디어가 어떻게 진실로부터 국민들을 고립시키면서 단편적인 지식만을 주입시키는가에 대한 비평이며, 그 억압의 체제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 영화는 지난 2009년 제 62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봉준호 감독의 ‘마더’를 제치고 대상을 차지했다. 노출과 성적 묘사 수위가 상당히 높다. 5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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