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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든 후배 영화인들에 어깨 내어주는 …아버지 같은 선배
‘도가니’ 제작자 엄용훈씨가 본 신영균
신영균 회장과 나의 첫 인연은 지난해 11월 13일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이 ‘영화인 자녀 장학증서 수여식’에서 큰 딸에게 장학증서를 줄 때 시작됐다. 그 몇 개월 전부터 한국영화제작가협회로부터 딸의 장학금 신청을 여러 차례 권유받았지만 고사했다.

세 아이를 둔 가장으로서 월세방 생활과 바닥이 드러난 마이너스 통장으로 근근이 살아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였지만, 명색이 한 영화사의 대표였던 터라 선뜻 응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일단 신청이라도 해보라는 권유에 못 이기는 척 신청을 했다. 사실 속내는 매우 절실하던 때였다.

한참을 잊고 지내던 중 가뭄에 만난 단비처럼 장학생으로 선정됐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같은 시기에 내가 제작한 영화 ‘도가니’가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면서 성공적인 흥행 결과도 나오고 있었다.

장학증서 수여식을 마치고 간단한 회식자리에서 처음 직접 인사를 나누게 된 신 회장은 나의 손을 잡아끌며 사모께 “여보, 이 사람이 이번에 영화 도가니를 만든 사람이잖아. 영화로 아주 훌륭한 일을 해냈지. 아 얼마나 자랑스러워”라며 날 소개해주었다. 그때의 느낌은 내게 아주 잊지 못할 특별한 느낌이었다. 


내 손을 잡고 있는 분은 유소년 시절부터 영화에서만 볼 수 있었던 대스타이며, 청년 시절에는 SBS프로덕션 대표이사와 국회의원으로 나와는 도저히 그 간극을 좁힐 수 없는 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던 영화계의 대선배를 뵙는 듯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8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읜 탓에 아버지의 손길을 잊고 산 지 오래됐기에 더욱 그런 것일까. 마치 오랫동안 철없이 사고만 치던 막내아들이 처음으로 대견한 일을 해냈다며 칭찬해주는 노부모의 따스함 같은 느낌이랄까. 마침 신 회장은 내 부친과 같은 황해도가 고향이라는 인연도 신기했다.

나에겐 아빠라는 단어조차 사라진 지 오래지만, 나는 세 아이를 둔 아빠다. 영화일을 하면서 ‘폼’나는 아빠로 살기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그래도 많은 관객의 성원에 힘입어 앞으로 얼마간은 새 작품을 만들 여력을 확보할 것이라 생각하고, 우리가 받은 장학금과 한 아이가 더 받을 수 있는 금액을 보태 재단에 기부했다. 몰래 하려던 일이 언론에 공개돼 당혹스럽기는 했지만, 그 덕에 재단 연말 행사에서 감사패를 받는 영광을 누렸다.

순수하게 꿈을 꾸며 살아가는 영화인에게는 노고하는 사람을 보살피는 것을 우리의 의무로 봐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고, 한 사람의 인재를 발굴하고 키우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 필요하며, 함께 전진하기 위해 어깨를 내어주는 좋은 선배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영화계의 신영균 선배는 아이들에게 아빠의 역할을 대신해주고, 인재를 발굴해내고, 노고한 사람에게 치하해주는 좋은 선례를 남겨주었으며 나에게 큰 귀감이 되어주고 있다. 부디 나를 포함한 우리 후배가 그 모습을 오랜 시간 배우고 실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장수를 기원한다.

삼거리픽쳐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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