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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우 “사랑, 이제 주기만 하지 않을 거예요”(인터뷰)
여기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사람이 있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하는,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 홀연히 사라지기까지 하는 ‘기둥’같은 남자.

전역 후 드라마 ‘꽃미남 라면가게’를 통해 복귀한 배우 이기우의 작품 속 캐릭터다. 그는 사랑하는 이에게 한 없이 베풀기만 하다 다른 남자에게 보내주고, 또 무한히 주기만 하다 앞날의 행복을 빌어주며 사라진다.

‘키다리 아저씨’, ‘아낌없이 주는 나무’, ‘해바라기’, ‘기둥’ 등등. 이정도면 이기우의 캐릭터 성격은 충분히 설명 될 듯 하다. 이처럼 그는 작품 속에서 줄곧 “사랑을 주기만”했다.

최근 끝마친 ‘꽃미남 라면가게’의 강혁 역시 그랬다. 은비(이청아 분)를 사랑하지만, 치수(정일우 분)와의 인연을 위해 둘의 행복을 바라며 떠난다. 드라마 ‘이 죽일 놈의 사랑’(2005)의 준성도 거칠게 사랑을 쟁취하려 하지만 결국은 보내주고 말았고, ‘스타의 연인’(2008)의 우진도 바라만 보다가 끝냈다.




# 이제는 ‘나쁜남자’

이기우는 이제 ‘아낌없이 주는 캐릭터’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런 이미지를 고집하는 건 절대로 아니에요. 연출자나 대중들에게 그렇게 이미지가 각인된 것 같아요. 이제는 깨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바라만 보지 않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박력 있게 다가가 마음을 사로잡느냐, 그건 또 아니다. “실제로도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편”이라는 그는 “그러고 보니 짝사랑이 잦기도 하네요”라고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하지만 이내 단호하다.

“이제는 나이도 있고 더 이상 지켜보는 사랑은 힘들어요. 실컷 좋아하다가 떠나보내는 것들이 연기적인 것 외에 개인적으로도 힘든 것 같아요. 주기만 하고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 극중 역할이니 받아들이면 되지만 매번 그러는 것이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다음 작품은 듬뿍 사랑받고 싶어요”

그의 말대로라면 다음 작품에서는 이기우의 “제대로 나쁜 남자”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경우 골칫덩어리 남자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그러나 마음만은 진실한?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웃음)”



# 백지상태의 ‘클래식’

그를 연기자의 길로 들어서게 한 영화 ‘클래식’(2003). 현재는 이름만 들어도 ‘우와’ 할만한 조인성, 조승우, 손예진 등 쟁쟁한 배우들 속에 섞여야 했다. 조연이었지만 관객들에게 확실히 각인 될 수 있는 인상 깊은 역할 태수였다. 게다가 데뷔작으로는 꽤나 큰 작품.

당시를 떠올리던 그는 고개를 살짝 내젓는다.

“백지상태인 이기우를 그려주시고 입혀주시고, 만들어 주신거예요. 그렇게 백지 상태로 작품을 끝내놓고서 큰 스크린에 제가 나오니 당황스럽더라고요. 덜컥 겁이 났어요. 클래식 후에 섭외요청이 있었지만, 할 수가 없었죠. 더 이상 보여줄 게 없었거든요. 그래서 1년 동안 꾸준히 연기수업을 받으며 기본적인 기술을 익혔죠”

이후 그는 1년 동안의 연기수업으로 배우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습득했다.

“1년 동안의 수업 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했어요. 연기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배울 수 있는 곳이 현장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현장이 최고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이어갔던 겁니다”



# 위험 요소를 안은 ‘대책남’

그를 배우의 길로 인도한 것은 영화 ‘초록 물고기’(1997)였다.

“중학교 때부터 활발했고 다른 사람 앞에 서는 걸 좋아했어요. 예술고등학교 시험을 봤지만 막연히 연예인 되고 싶었기 때문에 당연히 떨어졌죠. 그러던 어느 날 명절이었는데, 부모님이 집을 비우셔서 혼자 ‘초록물고기’를 보게 됐거든요. 굉장히 큰 감명을 받았죠. 많이 울기도 했고요. 한석규 선배님의 연기를 보고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때부터 확실히 연기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박힌 것 같아요”

이기우는 배우라는 또렷한 꿈이 있었지만 연기를 전공하지는 않았다.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작품을 보고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여린 감수성을 가졌으나 동시에 매우 현실적이기도 했다.

“관심은 있지만 확신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진로가 보장이 돼 있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미래를 생각한거예요. 평범한 직장에 취직을 할 수도 있으니 경영학과에 지원한거죠”

매우 현실적이다 말했더니 단지 “겁이 많아서 그렇다”고 또 한 번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다.

“깊이 상처를 받거나 손해볼만한 위험 부담이 있을 경우 어느 정도의 대책을 마련해 놓죠. 대책 있는 남자라니까요(웃음)”


# 영원한 우상 ‘홍상수 감독’

전 작품의 여운, 캐릭터의 잔상이 그리 오래가는 편은 아니라는 이기우는 가장 아쉬움이 남는 작품으로 홍상수 감독과 작업한 영화 ‘극장전’(2005)을 꼽았다. “좀 더 오래 찍고 싶었는데 빨리 끝냈다”는 약간은 특별한 아쉬움.

“홍상수 감독님을 굉장히 좋아하고 또 감독님이 많이 예뻐해 주셨어요. 군대에 있을 때도 주변분들께 ‘기우 보고싶다’고 하셨대요. 저 역시도 군복무 중 감독님의 영화 시사회에 맞춰 휴가를 나가기도 했어요”

그에게 홍 감독의 촬영 현장은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당일 받는 대본,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기대, 어느덧 완성된 영화. 이 모든 것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이기우는 이 영화로 칸 영화제까지 참석했다.

“홍감독님 덕분에 칸 영화제도 가봤어요. 으레 주연배분들만 가기 마련인데, 감독님이 직접 요구해 저도 갈 수 있었죠. 꿈만 같았어요. 물론 칸을 다녀온다고 달라질 건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기회는 흔하지 않으니 모든 것을 눈에 담으려고 했어요”

지금도 홍상수 감독의 영화라면 두말 않고 찍을 의향이 있다는 이기우다.

“짧은 촬영기간이 참 아쉬워요. 오랜 시간 작품을 같이 하고 싶었거든요. 홍상수 감독님과 작업하는 시간은 정말 행복해요”

이기우는 ‘꽃미남 라면가게’를 통해 성공적인 복귀로 한 해를 마무리 하게 됐다. “남은 연말은 좀 쉴 생각”인 그는 “가까운 곳으로의 여행”, 또 “스키장을 갈 것”이라는 신나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작품에 대한 스스로의 기대감 역시.

“다음 작품에서도 이기우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빨리 대중들을 만나길 바랍니다. 이기우에게 한 번 더 관심을 가져주시면 조만간 즐거운 모습을 보여드리려 노력 많이 할 것이니 기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욕심 내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스스로의 길을 가고 있는 배우 이기우. 여태껏 “주기만 한” 사랑을 고스란히 되찾을 다음 작품 속 그의 행복한 미소가 그려진다.

김하진 이슈팀기자 hajin@heraldcorp.com / 사진 김효범 작가 hyobeom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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