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좋은 노랫말을 기대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곡을 얘기할 때 작곡가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노래가 주는 감동은 물론이고 역사적 위상을 좌우하는 게 노랫말임을 전제하면 작사자의 비중은 그 못지않다. 저작권료도 작곡과 작사는 똑같은 비율로 적용돼 받는다. 노랫말 쓰기는 실로 곡 만들기와 등권(等權)이다.
빼어난 가사를 써낸 사람은 당연히 최고의 뮤지션이 되는 자격을 얻고 역사에 남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명가사가 명곡이 되는 셈이다. 가요에도 명품 가사는 얼마든지 있다. 멜로디에 실린 절묘한 가사에 우리는 기꺼이 이성을 상실한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에…/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나이 서른을 맞는 사람들은 모두가 이 노랫말에 공감하다 못해 허탈감에 연일 소주를 들이켠다.
포크송은 아예 가사가 생명이자 전부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어머니 코 고는 소리 조그맣게 들리네’(김창완의 ‘어머니와 고등어’) 지금은 평범할지 몰라도 1980년대 사람들은 틀에 묶이지 않은 재기에 찬 자유 언어전개에 다들 나가떨어졌다.
김국환의 ‘타타타’,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그 겨울의 찻집’, 이선희의 ‘알고 싶어요’를 쓴 양인자는 노랫말의 전설이다.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타타타’),
최성수의 노랫말 감성도 가히 특급이다. 한 시인은 “직업 시인보다 최성수의 노랫말이 더 시적!”이라고 했을 정도니까.
‘어느새 바람 불어와 옷깃을 여미어 봐도/ 그래도 슬픈 마음은 그대로인걸/ 그대를 사랑하고도 가슴을 비워놓고도/ 이별의 예감 때문에 노을 진 우리의 만남’(‘해후’)
따지고 보면 대중을 사로잡고 시대를 가른 가수들은 한결같이 노랫말 짓기의 달인이었다. 서태지도 랩이니 하드코어니 해서 획기적 사운드를 평가받지만 가사 감각도 남다르다. ‘시간은 그대를 위해 멈추어 기다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대의 머리 위로 뛰어다니고/ 그대는 방 한구석에 앉아 쉽게 인생을 얘기하려 한다.’(‘환상 속의 그대’)
‘그렇듯 더디던 시간이 우리를 스쳐 지난 지금/ 너는 두 아이의 엄마라며 엷은 미소를 지었지/ 나의 생활을 물었을 때 나는 허탈한 어깨 짓으로/ 어딘가 있을 무언가를 아직 찾고 있다 했지’ (동물원, ‘시청앞 지하철역에서’)
음악 팬들은 왜 요즘은 이런 노랫말이 나오지 않느냐고 불평한다. K팝이 글로벌로 뻗어가는 것은 자랑스러우나 가사는 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비판이 내외에서 일고 있다. 사실 ‘롤리 폴리’ ‘링딩동’ 등 뜻 모를 감각의 가사가 넘쳐난다.
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새로운 세대의 스타일이라고 변명할지 모르지만 한두 달만 지나고 싹 잊히고 마는 게 요즘 노래들이다. 노랫말의 감각만큼이나 감동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감동이 없어도 너무 없다. 2012년은 빼어난 노랫말의 해가 됐으면 한다. K팝은 노랫말에 바짝 신경 써야 한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