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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제 발레리노 김기완, 김기민 “운명처럼 다가온 발레, 첫 눈에 반해 아직도 사랑”
일년 365일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아 땅에 발붙이고 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중력의 힘처럼, 강력한 이끌림으로 한결같이 나를 잡아당기는 것. 발레리노 김기완, 김기민 형제에게는 ‘발레’가 그런 존재다.

발레리노, 그것도 국내에서 보기 드문 형제 발레리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최근 국립발레단 ‘호두까기 인형’에서 호두 왕자로 첫 데뷔 무대를 가진 발레리노 김기완(22)과 서울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동양인 최초로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해 현재 러시아에 머물고 있는 발레리노 김기민(19)과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근황을 들었다. ‘그냥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 했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발레가 이유없이 마냥 좋다는 이들의 말에는 ‘순수함’과 ‘열정’이 가득했다.

▶ “형은 나의 ‘멘토’나 다름없죠”

“형 어땠어요? 공연은 무사히 끝났나요? 사실 어제 잠이 안 오더라고요. 형이 데뷔 무대를 갖는다고 생각하니까 제가 막 떨렸어요.” 김기민과 전화인터뷰를 한 날은 그의 형 김기완이 ‘호두까기 인형’을 통해 데뷔 무대를 갖는 날이었다. 동생은 그렇게 가장 먼저 형의 소식을 물었다. 형이 부상 없이 무사히 공연을 마쳤는지, 공연은 어땠는지 많이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관객의 반응이 뜨거웠다고 전하자 데뷔 무대에 오른 형의 소감을 꼭 듣고 싶다고 했다.

2009년 12월 10일. 김기민은 열일곱의 나이에 최연소로 ‘백조의 호수’를 통해 데뷔 무대를 가졌다. 하지만 이날 그의 형 김기완은 ‘호두까기 인형’ 리허설 도중 부상을 당해 수술을 받았고 그로부터 2년간 무대에 설 수 없었다.

“보통 데뷔 무대에 서면 떨릴만도 한데, 형이 다쳤다는 소식에 형 생각만 나서 긴장감을 느낄 새도 없었죠. 그래서 그날 떨지 않고 데뷔 무대를 잘 마칠 수 있었어요. 부모님은 그러시더라고요. 형이 너한테 준 선물이라 생각하라고….” 동생 김기민은 형에 대해 자신의 멘토이자 친구이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말했다.

▶ “동생은 나의 ‘거울’과 같은 존재죠”

“뭔가 영화 속 이야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부상을 당한 날 동생이 데뷔 무대를 가졌던 것부터, 2년 후 정확히 같은 날 제가 다시 무대에 오른 것까지….” .

2011년 12월 10일. 김기완은 부상에서 회복돼 대전에서 ‘호두까기 인형’ 무대에 올랐다. 이어 지난 19일, 예술의 전당에서 ‘호두까기 인형’을 통해 공식적인 데뷔 무대를 가졌다. 그리고 제일 먼저 동생 생각이 났다고 말했다.

“예술의 전당은 꿈의 무대였어요. 그곳에서 호두 왕자로 무대에 선다고 생각하니 많이 떨렸어요. 공연 끝나자마자 제일 먼저 기민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아! 동생도 이런 느낌을 가졌겠구나’ 하고요. 둘이서 나눌 수 있는 공감대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죠.”

형 김기완은 동생에 대해 ‘자신의 거울’이라고 표현했다. 발레를 시작한 후 늘 함께했고 누구보다도 날카로운 비평가이자 진심어린 조언자로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제가 평소에 눈물이 정말 없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동생이 러시아로 떠나던 날 눈물이 막 나더라고요.”

▶첫 눈에 반한 ‘발레’, 그리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발레 사랑

“엄마가 작곡을 전공하셔서 예술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어느 날 발레 잡지를 보시고는 운동 겸 발레를 배우게 하셨는데 우리 둘 다 반해버렸죠.” 12살, 9살의 어린 형제는 우연히 접하게 된 발레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됐다. 발레를 시작한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냐고 묻자 “한 번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의 대화는 주로 발레에 대한 이야기고, 영화도 ‘빌리 엘리어트’나 ‘백야’처럼 발레와 관련된 것을 좋아한다. “커튼콜 무대에 서서 박수 받을 때, 핀 라이트가 저를 비출 때, 그 느낌은 연습할 때 힘들었던 것을 다 잊게 할 만큼 짜릿해요.” 하나같이 발레를 하게 된 것이 운명같다고 말했다. 김기민은 세계 최고의 무용수들이 거쳐간 마린스키 발레단에 오디션을 보고 입단하게 된 것에 대해서도 “사실 위험하기도 하고 추위나 음식 등 어려운 부분도 많지만 발레 하나만 생각했고 선택했어요”라며 발레 생각뿐이라고 했다. 김기완도 발레와 함께 할 미래를 그려보며 눈을 반짝였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가까운 목표로는 당장 다음 무대를 더 잘해내는 것이고 나중에는 볼쇼이 시어터 주역이 돼보고 싶어요.” 김기완과 김기민은 한국과 러시아에서 각각 떨어져 생활하지만 하루에 두 번씩 통화하며 리허설이 어땠는지 등 ‘발레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의 발레 사랑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빼 놓을 수 없는 스승, “이원국 선생님이 없었다면…”

“이원국 선생님이 없었다면 발레를 그만 뒀을 수도 있어요. 재능이 없다며 ‘발레 그만두라’는 말도 많이 들었는데 딱 한 분만이 재능이 많다며 계속 하라고 하셨거든요. 바로 이원국 선생님이세요.” 김기민은 이원국 발레단을 통해 이원국 선생님을 만난 것이 발레리노로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김기완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원국 선생님은 우리나라 발레리노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이죠. 제가 멘토로 여길 만큼 존경하는 분이기도 하고요.” 특히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학 중,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한 김기민은 더 넓은 무대로 자신을 인도한 스승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Vladimir Kim, 선생님과 Margarita Kullik 선생님은 제가 마린스키 발레단 생활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에요. 어려운 점이 있을 때 선생님들이 중간 역할을 많이 해주셔서 힘이 되기도 하고요.”

▶함께 걷는 길…발레의 대중화에 한몫 하고 싶어

“기민이는 전 세계적으로 보기 힘든 테크닉을 구사해요.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죠.” 김기완은 동생의 강점에 대해 뿌듯해 하며 말했다. 김기민은 “형은, 어릴 때부터 한 번 본 동작을 캐치하는 능력이 저보다 탁월했어요. 무대 위에 섰을 때 형만이 낼 수 있는 아우라, 분위기 같은 게 있어요. 무대 위에 처음 등장할 때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형만의 에너지가 있죠.” 이들은 자신의 장점에 대해서는 “제 입으로 제 장점을 말하기가…”라며 머리를 긁적였지만 상대방의 강점을 묻자 단번에 대답했다. 이어 경쟁을 하기보다 좋은 점을 배운다는 마음으로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며 함께 해 온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기완, 김기민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딱 한마디가 떠올랐다. ‘애틋함’. 서로에게 ‘존재’ 자체로 힘이 되는 형재애부터 발레가 ‘그냥 좋다’고 이야기하는 발레 사랑까지 모두 애틋함이 배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자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대답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발레를 보고 좋아하게 됐으면 좋겠어요.”

<황유진기자@hyjsound> /hyjgo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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