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이어 횡령 의혹과 동생인 최재원 SK수석 부회장과의 공모 여부 등을 묻는 질문에 “의혹과 오해가 있는 걸로 생각되는데 검찰에서 성실히 설명드리겠습니다”라며 차분히 대답했다. 8년만에 검찰에 소환된 심경을 묻자 황급히 SK그룹 측 인사가 기자들을 막고 최 회장을 조사실로 안내했다.
전반적으로 담담한 모습의 최 회장이었지만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와 질문 공세에 잠시 눈을 감는 모습에선 17년간 네 차례나 이어진 검찰과의 악연이 고스란히 읽혔다.
최 회장은 17년 전인 1994년 외화 밀반출 혐의로 조사를 받으면서 처음 검찰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1년 만에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과 연루돼 두 번째 발걸음을 했다. 형사처벌은 면했던 앞선 소환과 달리 세번째 소환에선 법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2003년 최 회장은 1조5000억원대 분식회계 혐의 등으로 구속돼 대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8.15특별사면으로 지난 과오를 털고 기업경영에 매진하던 최 회장을 다시 검찰로 불러들인 건 무리한 선물투자였다. 최 회장은 SK해운 고문 출신인 김원홍(해외체류) 씨를 통해 5000억원대 선물투자를 했다 3000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 따르면 SK계열사 18곳이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투자한 2800억원 중 일부가 베넥스 전 대표 김준홍(구속기소) 씨를 거쳐 김원홍 씨에게 흘러들어갔다. 검찰은 김준홍 씨를 구속기소하면서 최 부회장이 김준홍 씨와 공모해 SK계열사 투자금 497억원을 횡령하고 저축은행에서 768억원의 불법 대출을 받는데 관여했다고 밝혔다. 또 김준홍 씨가 차명으로 보유한 비상장 주식을 200억원이나 비싼 값에 사들인 사실도 밝혀냈다. 검찰은 앞선 두 차례 최 부회장 소환 조사 당시 투자금이 빼돌려진 경위와 그 과정에 최 회장이 개입했는지 등을 강도 높게 조사했다.
검찰은 이날 최 회장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최 회장의 개입 정도를 캐물었다. 최 회장은 검찰이 제기한 각종 의혹에 대해 혐의를 전면 부인할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조사 결과 최 회장의 가담 정도가 단순 묵인이나 보고를 받은 정도가 아니라 투자금 횡령을 주도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최 회장은 형사처벌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 회장에 대한 뚜렷한 혐의점이 드러나지 않거나, 검찰이 총수 형제를 모두 구속하는데 부담을 느껴 최 회장을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할 수도 높다.
지난 오리온 그룹 비자금 수사 때도 검찰은 담철곤 회장은 구속하면서 부인인 이화경 사장은 입건유예로 마무리짓는 등 피의자들이 가족인 경우 한 사람에게만 구속영장을 청구해온 전례가 있다. 여기에 경영공백이나 해외 신인도 등 수사 외적인 요소를 검찰이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을 것이란 관측도 최 회장 불구속 가능성을 높여준다.
김우영 기자/kw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