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파키스탄의 갈등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아프가니스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이 26일(현지시간) 파키스탄군 초소를 공격해 28명의 병사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파키스탄이 강경 대응에 나서면서다.
파키스탄은 아프간 주둔 나토군의 주요 보급로로 이용되는 국경을 즉각 폐쇄한 데 이어 미국이 이용하는 파키스탄 내 공군기지에서 미국의 철수를 요구했다. 더 나아가 미국과 나토와의 동맹관계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까지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나토의 이번 공격은 26일 새벽 2시 파키스탄 국경 내 모흐만드 지구 바이자이 마을에서 벌어졌다. 모흐만드는 탈레반 무장세력이 수시로 파키스탄 군경과 정부 관리를 공격하는 부족 지역이다.
파키스탄은 나토 헬리콥터와 전투기가 아무런 이유없이 파키스탄군 초소 2곳을 공격해 잠자고 있던 병사 28명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나토가 이끄는 국제안보지원군(ISAF) 대변인도 “아프간 군대와 함께 일하는 외국군 병사들이 국경 근처에서 작전을 수행하다 공중 지원을 요청했다”며 “지상군의 요청에 의한 공중지원이 사망자를 냈을 가능성이 크다”고 인정했다.
현재로서는 나토군이 작전을 수행하다 파키스탄군을 탈레반 무장세력으로 오인해 공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아프간과 파키스탄 국경은 경계가 불분명한 데다 이번에 공격을 당한 군 초소는 아프간 국경과 불과 2.5㎞ 떨어진 지역이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해 9월에도 아프간 주둔 나토군 헬기가 국경 너머 파키스탄군 초소를 폭격해 병사 2명이 숨졌으며, 파키스탄은 당시에도 나토군 보급로를 폐쇄했다가 미국이 공식 사과하자 다시 개방한 바 있다.
파키스탄은 이번에는 특히 많은 희생자가 나온 만큼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더구나 이날 공격은 존 알렌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이 아슈파크 파르베즈 카야니 파키스탄 육군 참모 총장을 만나 상호 협력을 논의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발생한 것이다.
파키스탄 정부는 캐머런 문터 파키스탄 주재 미 대사를 소환해 나토의 공격이 국제법 위반이며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강력하게 항의했다. 또 13만 명의 병력이 주둔한 아프간 나토군의 주요 보급로를 봉쇄했다.
파키스탄과 미국은 지난 1월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이 파키스탄에서 현지인 2명을 살해하면서 외교적 갈등을 겪었으며 5월에는 미 특수부대가 예고 없이 파키스탄에 은신해있던 알 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살해하면서 갈등은 더욱 고조됐다.
9월에는 미국이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발생한 미 대사관 공격의 배후로 파키스탄 테러조직 하카니를 지목하고, 파키스탄 정보부가 하카니를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양국 관계는 꼬여갔다.
가장 최근에는 친미(親美) 성향의 주미 파키스탄 대사가 이른바 ‘메모 게이트’로 사임한 가운데 이번 사건이 발생해 양국 관계의 갈등은 더욱 악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김영화 기자/bettykim@heraldcorp.com